[주하영 365칼럼] 연극이라는 예술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연극 '소프루'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 국립극장 해외초청작 포르투갈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 제작 작품 -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차기 예술감독 티아구 호드리게스 작·연출

2022-07-23     주하영
연극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연극이라는 예술이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연극의 기원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이론이 있지만 서구 문명에서는 보통 고대 그리스 시대를 출발점으로 여긴다. 기원전 6세기 디오니소스 신을 기리던 축제를 기점으로 본다면, 연극이라는 예술은 2500여년의 역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영문학자 스탠리 곤타스키는 영화와 TV,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와 같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과 함께 연극의 죽음을 떠올려온 시간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2007년 영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예술감독 피터 홀은 연극이라는 예술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연극의 종식을 언급해온 시간이 태곳적부터라고 할 만큼 오래되었고, 항상 격변에 시달려왔으며, 매번 사라짐에 대해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극의 죽음이 이토록 오랜 시간 예언되었음에도 여전히 우리가 극장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극만이 지닌 매력은 무엇이기에 관객들은 이동의 어려움이나 시간의 불편을 겪으면서도 극장이라는 공간을 찾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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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의 차기 예술감독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티아구 호드리게스(Tiago Rodrigues)는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은 “인간 조립의 장소”와 같으며 카페에서 만나듯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생각에 맞서고 시대를 공유하며 보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곳임을 강조한다.

프랑스 태양극단의 연출가 아리안 므누슈킨 역시 “극장에 들어서기 전보다 극장에서 나올 때 훨씬 더 인간적이 된다”는 점이 연극이라는 예술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라고 주목한다. 호드리게스는 “연극은 사람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무대를 채우는 대사들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통해 그 어떤 이미지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를 남긴다.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은 “허구의 공간이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곳”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말과 행동 사이”에서 고민한 후 판단을 통해 새로운 액션에 이르도록 할 수 있는 일종의 “행동의 대기실’이자 “삶의 대기실”이다.

그는 연극이 세상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덧없고 미미한 것일지 모르지만 수천 개의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여서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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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연극계를 대표하는 젊은 예술가이자 2015년부터 2021년까지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의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활약해 온 호드리게스는 지난 달 국립극장의 해외 초청작의 일환으로 연극 '소프루'의 짧은 공연을 선보였다.

리스본에 위치한 도나 마리아 2세 국립극장이 제작해 2017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연극 '소프루'는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로부터 “연극과 연극을 창조하는 이들에 대한 강렬한 헌사”라는 평가와 '르몽드'로부터 “아름다움과 지성을 선보이는 뛰어난 공연”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후 프랑스 파리가을축제, 빈 페스티벌, 아일랜드 더블린 페스티벌,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이탈리아 트리에날레 밀라노 극장 등 여러 국가에서 공연을 펼치며 현재까지 연극 무대를 지켜 온 수많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헌사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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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프루'는 무대 왼쪽과 오른쪽 구석, 중앙 앞 아래, 혹은 뒤쪽에서 배우들에게 대사나 동작을 작은 소리로 일러주는 '프롬프터(prompter)'라는 직업을 중심으로 다룬다. 국내의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전통을 따르고 있는 유럽 연극 무대나 오페라 극장들에서 아직까지 현존하는 '프롬프터'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거의 멸종위기에 처한 직업이라 할 수 있다.

프롬프터는 공연이 아무 문제없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세부사항과 동선, 사운드, 조명, 장면전환을 모두 꼼꼼하게 기록한 '프롬프트 북'을 손에 들고 검은 색 작은 프롬프트 박스 안에 들어가 관객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존재를 감춘다. 하지만 배우가 대사를 갑자기 잊어버리거나 타이밍을 혼동한 경우, 혹은 동작을 잊은 순간에 속삭임으로 빠르게 연극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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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드리게스는 포르투갈에 현존하는 마지막 프롬프터인 ‘크리스티나 비달(Cristina Vidal)’을 실제로 무대 위에 등장시켜 그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 제목에 ‘숨’이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소프루(sopro)'를 적용한다. 'sopro'는 속삭이듯 배우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대사를 말하는 프롬프터의 일을 의미함과 동시에 무대 위 인물이 갑자기 자신의 길을 잃고 멈추거나 죽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연극에 ‘숨’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연극 '소프루'는 현재까지 44년간 도나 마리아 2세 극장에서 프롬프터로서 일을 해 온 크리스티나가 어떻게 연극 무대에 올라 실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었는지를 현재 예술감독인 ‘나의 예술감독’이 등장하는 큰 틀을 바탕으로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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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드리게스를 의미하는 '나의 예술감독'은 자신의 존재를 감춰야만 존재의 의미가 생기는 프롬프터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일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빛이 드리워지지 않는 그림자 속에서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을 향한 '헌사'이자 '오마주'라는 점을 강조한다.

화려한 조명이 비춰지는 가운데 자신이 한 일이 드러나 모두에게 박수를 받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드러나지 않는 곳에 있지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을 하는 사회 속 곳곳의 사람들, '소프루'는 그런 사람들에게 바치는 찬사이자 감사이며, 그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필요를 강조하는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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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술감독’이 커피 9잔을 마시며 긴 시간 크리스티나를 설득하는 가운데 크리스티나는 5살 때 처음 고모의 손에 이끌려 무대 구석에 위치한 작은 프롬프터 박스 안에서 연극을 관람했던 과거를 말하기 시작한다.

연극은 크리스티나의 과거의 기억들을 중심으로 21세 때부터 프롬프터로서 극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공연 중에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나열한다. 프롬프터가 기억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옆모습이나 뒷모습, 엉덩이 등이 대부분이며, 무대 아래에 위치한 프롬프트 박스에서 두 개의 손가락만을 살짝 얹고 프롬프트를 했던 것 외에는 무대에 오른 적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무대 위가 낯설다.

객석도 무대도 아닌 경계에 있지만 공연이 위기에 처하는 순간, 연극이라는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끝까지 지속될 수 있도록 작은 목소리로 ‘숨’을 불어넣는 구원자! 하지만 프롬프터의 존재가 객석에 드러나게 되는 순간 공연은 ‘실패’이자 ‘재난’이 된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배우를 향해 반복적으로 대사를 속삭이던 크리스티나는 들리는 귀를 향해 대사를 전달하려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끝에 결국 관객들 모두에게 노출되고 만다. 객석은 웃음으로 채워지고 비평가는 그 날 공연의 가장 큰 수훈자로 ‘프롬프터’를 칭송하지만 크리스티나에게 그 기억은 끔찍한 좌절과 절망의 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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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무대 위에 등장하는 실제 크리스티나의 역할이 계속 배우들 뒤를 쫓아다니며 프롬프트를 하는 일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예술감독’이 크리스티나를 연극 창작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이야기라는 큰 틀 속에 펼쳐지는 프롬프트 과정의 에피소드들은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여러 고전 작품의 연극 장면으로 나열되는데, 현재 혹은 과거의 에피소드 속에 등장하는 크리스티나의 역할을 하는 배우들은 따로 존재한다.

크리스티나와 똑같이 검은 옷을 입은 2명의 배우들이 번갈아가며 크리스티나의 역할을 하고, 실제 프롬프터인 크리스티나는 그들 뿐 아니라 나의 예술감독, 이전 예술감독, 연극 장면에 등장하는 여러 배우들을 프롬프트하며 따라다닌다. 단지 그녀의 위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벗어나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에 서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로 인해 관객들은 연극 초반에 혼란을 느끼지만 실제 프롬프터인 크리스티나의 존재가 보이는 가운데 그녀가 속삭이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혹은 바람소리처럼 극장의 공간을 가득 채우기 때문에 그녀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인지한 채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즉, 무대는 허구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환상임과 동시에 실제이고, 관객들은 프롬프터가 하는 일을 목격하고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인식함과 동시에 크리스티나의 이야기라는 허구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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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프루'의 극작 및 연출을 맡은 호드리게스는 프롬프터인 크리스티나가 무대 위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역할을 하도록 하면서도 주인공으로서 충분히 각인되도록 만든다.

연극에서 가장 오래도록 잔상이 남는 부분은 시종일관 바람소리처럼 들리던 크리스티나의 ‘속삭임’이다. 사실 크리스티나가 2년간 거절해 온 연극 제안을 결국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녀가 우연과 운명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호드리게스의 생일이 1977년 2월 14일이고, 자신이 프롬프터로서 첫 리허설을 마친 날이 1976년 2월 14일이라는 ‘우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프롬프트 일을 하게 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 그가 태어났다는 게 마치 생명을 같이 시작한 듯 운명으로 느껴졌고,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일들은 사실 우연이 아니라고 믿기에 그녀는 너무 많은 커피를 마신 탓에 손을 떠는 ‘나의 예술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더불어 크리스티나의 손 역시 무대 위에 선다는 두려움으로 떨리기 시작한다.

크리스티나는 연극의 죽음, 극장의 죽음을 가정하는 ‘나의 예술감독’에게 묻는다.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왜 죽은 걸로 가정하는 거죠?”

예술감독이 답한다.

“그럼 죽지 않은 걸로 합시다. 유령과 같은 존재들로 하죠. 프롬프터가 유령들과 연극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일까? 호드리게스는 연극의 죽음 외에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추가한다. 이를 위해 그는 크리스티나의 ‘이전 예술감독’의 이야기라는 틀을 더한다. ‘이전 예술감독’은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와 라신의 '베레니케'의 장면과 연계되며 사랑과 삶, 죽음에 대한 단상들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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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몰리에르의 '수전노', 체홉의 '세 자매',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와 같은 작품의 장면들 가운데 죽음과 삶, 이별, 욕망과 관련된 여러 장면들이 연극 '소프루' 속에 파편처럼 흩어지며 전개된다.

‘이전 예술감독’은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폐암 선고를 받는다. ‘이전 예술감독’이 의사와 대면하는 장면은 연극의 리허설로 관객들에게 제시되는데, 대사의 톤과 연기 방식에 따라 상대 배우에게 여러 번 다른 표현을 요구하는 예술감독의 장면은 비극적 운명의 예언과 마주하는 고전극 영웅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이전 예술감독’은 준비하고 있는 공연을 당장 미룰 것을 조언하는 의사에게 하나의 공연을 무대에 선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지 아느냐고 묻는다.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공연을 취소할 수 없다는 예술감독과 동생의 죽음에 대한 비보를 접하고도 무대에 올라 언니와 함께 죽음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는 이즈메네의 역할을 해야 하는 배우의 이야기는 서로 연결된다. 연극이라는 예술을 지속하기 위해 삶을 희생해야 했던 사람들, 개인적인 감정이나 상황은 미뤄두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당면한 일들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곳에 존재하는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다.

삶 속에 그런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나를 희생해 무언가를 유지해야만 하는 순간들은 발생한다. ‘이전 예술감독’은 예정된 시즌이 끝난 뒤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렀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무대에 올라야 했던 배우는 처음으로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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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프루'에서 크리스티나는 “나는 세상을 연극을 보듯 바라본다”라고 말한다. 프롬프터로서 허구와 현실 사이에 드리워진 가는 경계에 서서 무대 위에 지속되는 환상을 조심스레 지켜보는 관찰자는 환상에 빠져드는 관객들과 연기에 몰입하는 배우들 사이에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기민함을 유지한다.

그녀가 ‘극장의 기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작업한 모든 작품의 대사와 움직임, 공연을 위한 세세한 관련사항들이 그녀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며, 사라져가는 프롬프터라는 직업이 연극이라는 예술의 위기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드리게스는 '버드맨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기억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며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실행”을 위한 과거, 오늘날 보다 유용하고 중요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과거의 중요성을 토로한다. 이 때문에 크리스티나가 연극 '소프루'의 결말을 위해 선택한 마지막 연극 장면의 대사는 공연의 모든 메시지를 압축한다. 프랑스의 극작가 장 라신의 '베레니케'의 마지막 7줄 대사가 속삭임이 아닌 크리스티나의 목소리를 타고 객석으로 전달될 때, 안티오쿠스의 탄식의 대사 “아, 아아, 아아!”는 여러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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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받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 고통과 절망에 휩싸여도 죽음이 아닌 삶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성, 한숨과 고뇌로 인해 불행의 본보기가 될지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간직해주기를 바라는 당부, 안티오쿠스의 마지막 탄식은 크리스티나가 관객들에게 전하는 당부이자 작별의 인사이기도 하다.

호드리게스는 프로그램북의 '계속 살아가기'라는 글을 통해 “죽지 않기, 계속 살아나가기”를 주장한다. 모든 일이 결국 잘 될 것이란 희망을 품고,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의심이 들 때조차 살아나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 호드리게스에게 그런 노력은 기억하는 일이며, 연극이라는 예술을 계속해나가는 일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주고, 시간 속에 서로를 연결하며, 죽음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맞서 싸워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계속 살아나가기”를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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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극작가이자 배우, 예술감독인 와즈디 무아와드는 극장은 “살아있는 장소, 배우와 관객 모두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말’을 듣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는 공간, 내게 말을 건네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고, 제시한 질문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곳, 공론화를 통해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곳, 무아와드는 이러한 자유는 오늘날 매우 근본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듣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에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오랜 인류의 문화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그로 인해 우리가 서로 다 같은 인간임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기 위해, 우리에게 연극이라는 예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