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미래를 향한 사유의 몸부림...뮤지컬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 배우'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 2022년 국립정동극장 창작 신작, 개인의 삶과 회복을 그린 블랙코미디 뮤지컬

2022-05-09     주하영
전구가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사유를 “나와 자아 사이의 소리 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유는 상황에 반응적으로 대응하는 ‘행태’로부터 ‘행위’를 해방시키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그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자극한다”고 말했다.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말과 행위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성하지만 그 의미는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관찰자, 즉 이야기꾼”을 통해서만 완전히 드러날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현재’에 관한 우화를 인용한 아렌트는 삶에서 기억할만한 행위는 이야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야기하기를 통해 그 의미를 드러낼 수 있으며, 이야기가 종료된 후 비로소 ‘현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인다.

기억을 통해 행위를 판단하고 그 의미를 고찰하는 것, 과거를 재현함으로써 현재의 위치를 인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정하는 것, 아렌트에게 ‘사유’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시간이자 ‘삶’ 그 자체이다.

그녀가 말하는 사유는 “관찰자의 역할을 하는 자아”를 설정하고 이야기의 대상으로 ‘나’를 가져다 놓는 일이다. 이야기의 대상이 서 있는 지점은 삶의 지속적인 ‘투쟁’, 즉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저항이 존재하는 시간 속의 틈새”라고 할 수 있다.

사유를 한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틈새에 놓여 있는 ‘현재의 나’를 “중재자, 판단자, 심판”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행위의 의미를 발견하고 “인간 실존이라는 수수께끼”에 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존재는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지 않은 “몽유병자”와 다름없으며 사유의 중단은 “살아있는 죽음의 상태”라 할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아렌트가 깨달은 것은 악의 근원이 “우매함이 아닌 사유하지 않음”에 놓여있다는 것이었다. 무감각한 상태에 놓여 있는 정신, 판단하려는 의지를 상실한 자아, 질문하지 않는 인간은 언제든 끔찍한 ‘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의 개념은 아이히만의 재판이 아렌트에게 남긴 충격적인 교훈이었다.

뮤지컬

국립정동극장에서는 2022년 창작 신작 뮤지컬인 ‘쇼맨_어느 독재자의 네 번째 대역배우’의 공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뮤지컬 ‘쇼맨’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한 독재자의 대역배우로의 삶을 살았던 노인이 죽기 전 화보 촬영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평가받고자 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다.

파라디수스 공화국이라는 ‘가상의 국가’를 설정하고, 그 가상 국가의 독재자 ‘미토스’의 네 번째 대역배우로서 특정 역할을 했던 ‘네불라’라는 인물의 삶은 화보 촬영이 이루어지는 동안 관객들에게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2020년 미국 뉴저지 주에 위치한 한 도시의 ‘굿데이 마트’에서 일하는 한국계 입양아 ‘수아’는 우연히 네불라와 마주치게 되고, 그녀를 사진작가로 오해한 네불라에게 촬영 의뢰를 받게 된다.

마트에서 상한 과일들을 골라내는 일을 하며 사진을 찍어 증거로 남기던 수아는 공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의뢰를 수락하고, 네불라가 준비한 극장에서 소품과 의상을 걸치고 어린 시절부터 과거를 펼쳐내는 노인 네불라의 이야기를 듣는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은 네불라의 삶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한바탕 ‘쇼’로 펼쳐내는 당사자인 네불라를 통해 직접 듣고 보고 있지만 뮤지컬 ‘쇼맨’의 전체 이야기는 수아가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뮤지컬

무대가 진행되는 가운데 마치 관객들을 향해 자신에 대해 설명을 하듯 또는 네불라와의 만남에 대해 머릿속으로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듯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음성 목소리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마침내 동생에게 쓰는 편지였다는 점을 드러내게 된다.

암전 속에서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로 시작된 무대는 나이 많은 한 남자가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파도는 계속 쉼 없이 밀려오는데,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제 자리 서서 뛰어 오른다”라고 노래하며 한없이 계속 뛰어오르기를 반복하는 노인의 모습은 울부짖음과 외침에 가깝다.

울면서, 웃으면서, 끝없이 밀려오는 물살 위로 숨을 쉬기 위해, 조금 더 오래 떠 있기 위해 발을 구르며 높이 도약하려는 노인의 모습은 안타깝고 슬프며 숭고하다.

무대는 곧바로 “뉴저지 최고의 할인마트, 굿데이 마트”라는 로고송과 함께 관객들이 진열대에 놓인 과일이라도 되는 양 사진을 찍고 있는 한 젊은 직원의 모습으로 옮겨간다.

“여전히 과일을 좋아해?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는 과일들을 잔뜩 보는 거야”로 시작한 음성이 무대를 채운다. 아침마다 시들거나 썩은 과일이 없는지를 살피고 문제가 있는 상품을 새 상품으로 교체하는 일을 한다는 여자의 음성은 똑같이 되풀이 되는 일상 속에서 “다르지 않다는 게 안심이 됐어”라는 실제 배우의 대사로 전환이 되며 ‘수아’라는 인물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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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를 밀면서 등장한 마트 직원들 사이에서 수아는 변수가 생길 염려 없이 예상된 하루를 쌓아갈 수 있는 반복적인 시스템 속에 안도를 느낀다. “흠 잡힐게 없다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수아는 타인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빈틈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아는 잠깐 머물다가 떠나는 이방인들이 가득한 유원지에서 카메라를 들고 관광객인양 시간을 보내는 취미를 갖고 있다.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갖고 현재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균일한 일상의 반복에 집착하던 수아는 커다란 원숭이 인형 탈을 쓴 할아버지의 사진을 자신도 모르게 찍게 된다.

사진을 찍은 대가로 팁을 달라고 할까봐 전문 사진작가라고 둘러댄 수아는 이메일로 5달러에 사진을 보내주거나 아니면 삭제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사례를 충분히 할 테니 시간을 내서 정식 화보 촬영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얼떨결에 높은 보수를 요구하고 촬영 일을 맡게 된 수아는 매주 화요일 저녁 대여된 극장에서 콘셉트 하나에 100컷씩 할아버지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계약서까지 만들어서 서명을 받고 추가비용까지 계산해 지불하는 할아버지는 수아에게 처음에는 “호구”처럼 보이지만 점차 수아의 사유를 자극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향을 발휘하게 된다.

‘나와 나 자신 사이의 소리 없는 대화’는 할아버지 ‘네불라’가 펼쳐 보이는 이야기 속에 담겨 그의 이야기를 듣고 관찰하는 수아의 판단과 평가를 요청하게 되고, 더불어 수아 자신의 ‘소리 없는 대화’를 이끌어내게 된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네불라라는 이름은 “보잘 것 없는 사람, 허풍쟁이”라는 뜻의 ‘네불로(nebulo)’와 “안개 낀, 희미한”을 뜻하는 ‘네불로수스(nebulosus)’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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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신부의 책 ‘라틴어 수업’에서 소개된 “봄날의 네불라”라는 말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이는 이름은 “공부한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이라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

1948년생으로 ‘낙원’이라는 뜻을 가진 가상의 국가 파라디수스 공화국에서 태어난 네불라는 이베리아반도 주변에 위치한 “올리브와 포도주가 가득하고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대서양에 인접해 있으며 대한민국의 절반보다 작은 땅에 다인종으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파라디수스는 1974년 군부와 가톨릭 우익 세력이 결탁한 혁명으로 인해 제1공화국 체제가 붕괴되고 미토스라는 대통령이 선출되면서 제 2공화국 체제로 들어가게 된다. 미토스의 10년에 이르는 독재는 1984년 내전과 혁명으로 인해 끝에 이르게 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민과 망명을 하게 되면서 국가는 해체되고 만다.

2020년 현재 72세인 할아버지 네불라는 “나를 자세히 알아야 진짜 나를 찍을 수 있다”면서 9살 때 농장 일로 바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가족들의 흉내를 내며 ‘웃음’을 선물하던 기억부터 시작해 삶의 변곡점이 되었던 생애의 모든 순간들을 연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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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실패하는 작물농사와 이민자들의 시위, 경제 시장의 악화로 근심이 가득하던 부모에게 누군가를 따라하고 희화화함으로써 ‘웃음’을 선물할 수 있었던 일은 네불라의 삶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모두가 자신을 보며 웃던 시절, 스스로가 ‘주인공’이라고 느꼈던 때의 기억은 축제 때 유명 연예인을 모창하고 배우가 되어보라는 주변인의 권고에 따라 극단에 들어가는 행보로 이어진다. 하지만 곧 네불라는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의 차이에 직면하게 된다.

자신을 완전히 지우고 그 빈자리에 역할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선배의 생각과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활용해 역할을 표현해야 한다는 또 다른 선배의 충돌은 네불라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선택하지 못해 이리저리 휩쓸리는 혼란을 가져온다.

1973년 극단 내에서 단 한 번도 주인공 역할을 해보지 못한 유일한 배우인 네불라는 오디션 준비를 하며 동료 여배우에게 연습을 맞춰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고서는 연기를 할 수 없는 네불라는 자신만의 독창성,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과 창의력을 갖지 못한 자신을 인식하게 될 뿐이다. 그 순간 TV 화면을 가득 채운 미토스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가리키며 동료 여배우가 말한다.

“너도 저 사람처럼 너만의 뭔가가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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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 자신의 길에 대해 확신에 찬 태도, 사람들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고 맞설 것을 외치는 미토스의 신화적 모습은 네불라로 하여금 아무리 애를 써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절망’과 ‘체념’에 휩싸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배우를 그만 둔 30대의 네불라 앞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기회가 찾아온다. 정부에서 제작하는 영화의 오디션에서 네불라는 가장 자신 있는 연기를 해보라는 관계자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신화적 모습으로 등장했던 미토스의 모습을 흉내 낸다.

어디론가 끌려간 네불라는 이제는 독재 대통령이 된 미토스의 여러 대역 중 “네 번째 대역 배우”로서 차량 유세와 동상 제막식과 같은 “포즈”를 필요로 하는 곳에 투입된다. 문제는 네불라가 그 때의 자신을 가장 빛나던 때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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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역사의 범죄자인 미토스라는 독재자를 향한 찬양이 자신을 향한 것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누군가의 대역인 자신을 향해 웃는 대중의 환호를 “빛나는 쇼”라고 즐기는 네불라를 향해 수아는 “역겹다”고 말한다. 악인의 대역이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며 공범과 다름이 없다는 수아의 지적에 네불라가 말한다.

“수아씨는 그런 기억 없어요? 끝이 안 좋았어도, 나쁜 게 섞여 있어도, 그 순간만큼은 너무 소중해서 버릴 수 없는 기억.”

사실 네불라의 주체성 없는 태도와 감정 이입하기 어려운 상황은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부인했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한다. 지시받은 업무를 잘 처리했을 뿐 누군가를 직접 죽이라고 명령한 적도 없고 먹고 살기 위해 주어진 임무를 다했을 뿐이라는 아이히만의 주장은 뮤지컬 ‘쇼맨’에도 등장한다.

네불라에게 대역이라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게 했던 장교는 자신은 국가가 시키는 일을 하는 공무원일 뿐이라며 독재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네불라는 모든 것을 부인하는 장교의 재판에서 대역과 관련한 일을 증언하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제야 비로소 네불라는 자신이 어떤 엄청난 일에 동원되었던 것인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를 신문들을 통해 인지하기 시작한다.

뮤지컬 ‘쇼맨’은 감당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무책임, 모르는 게 더 편하기 때문에 알고자 하지 않는 무관심, 생존이라는 핑계에 숨어 고개를 돌려버리는 냉담함을 겨냥한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될 줄 몰랐다는 억울함과 알고 싶지도 않았다는 죄책감” 사이에서 방황하던 네불라는 매일 밤 스스로를 반복해서 죽일 수 있는 뮤직홀의 한 무대에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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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쉽게 이해하거나 동정할 수 없는 인물인 네불라는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 아이를 가진 미국인 양부모에게 9살 때 입양된 ‘수아’의 서사를 통해 반드시 소용돌이치는 역사적 맥락에 놓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대리적 사유를 하면서 ‘악인’의 길로 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트의 매니저 자리를 차지하고픈 수아는 미토스가 대중을 사로잡은 방식을 적용하고자 계획하지만 자신 역시 누군가의 ‘대역’일 뿐 나를 위한 자리, 나만의 위치를 점유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들의 환호와 웃음을 향해 존재의 자리를 찾던 네불라와 착한 아이라는 “굿 걸(good girl)”의 칭찬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던 수아는 하나로 연결된다. 수아는 자신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기억이자 외면한 그림자, 죄책감과 억울함의 고통을 관객들에게 토로하기 시작한다.

아렌트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 때에만 소통”할 수 있으며, 자신의 감정을 모두 드러내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함께 나눌 때에만 비로소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렌트는 상대의 입장에 서기 위한 ‘상상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과거의 경험을 재현하고 부재하는 대상을 직관에 의해 내 정신 속에 펼쳐내는 “정신의 확장”이자 “열린 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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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쇼맨’은 네불라의 관점을 수아라는 관찰자에게 “한바탕 쇼”로 펼쳐 보이며 설명하고, 그와 이어지는 수아의 내면을 관객들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전달하면서 관찰자인 관객들이 스스로를 빗대어 보도록 만든다.

주체로서 사유할 자유를 스스로 포기했던 것은 아닌지, 내 자리를 찾겠다는 욕망에 갇혀 스스로를 순응하는 객체로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 시스템에 속하기 위해 스스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대리 사유를 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뮤지컬 ‘쇼맨’은 네불라와 수아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이 ‘정신의 확장’과 ‘열린 마음’에 이르기를 바란다.

‘대리사회’의 저자 김민섭은 사회의 욕망이 우리 모두를 “대리인간”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사회가 구축한 시스템에 질문 없이 순응해 온 습관은 ‘나’를 피주체로 만들고, 나는 온전히 나로 존재하지 못한 채 “유령의 시간” 속에 스스로를 가둔다. 개인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대리된 것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사유하지 않는 인간으로, “순응하는 몸”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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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은 한 발 물러서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 그것은 주체들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행위”라고 말한다.

뮤지컬 ‘쇼맨’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일”을 통해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이 가능해지기를 기원한다. 타인의 삶이 남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될 때 그제야 비로소 예술이 그 역할을, 삶을 뒤바꾸는 ‘마술’을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사유의 시작과 끝은 인생의 시작과 끝과 일치한다.

스스로의 삶을 평가하는 일에 관찰자인 또 다른 ‘나’를 설정하는 사유는 과거와 미래의 ‘틈’ 속에서 분투하는 현재의 ‘나’를 발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예술은 그 ‘틈’을 환상의 쇼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무대로 선물한다.

미래를 향한 사유는 “내 키만큼 깊은 바다” 위로 솟아오르기 위한 몸부림과 고뇌가 되어 헤엄을 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때까지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다한다. 5월 15일까지 국립정동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