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하얀 눈, 얼음으로 뒤덮인 ‘윈터링’의 시간...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 영국 극작가 태티 헤네시의 모노극 국내 초연, 2018년 볼트 오리진 어워드 최고 신작상

2022-04-19     주하영
연극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그린란드, 캐나다, 알래스카, 시베리아와 같은 북극해 연안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인 ‘이누이트(Inuit)’에게 북극곰은 전통적으로 매우 중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북극곰은 추위와 얼음으로 뒤덮인 척박한 땅에서 인간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사냥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사람처럼 두 발로 서고 걷기도 하는 강인하고 인내심이 강한 영적인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누이트인들은 죽은 사람이 북극곰으로 환생한다고 믿거나 북극곰이 다음 삶의 목적지까지 영혼들을 이끌어 준다고 여겼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흰색 털로 무장한 채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있는 북극곰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습성과 인내심, 회복탄력성의 특징으로 인해 삶에서 극적인 변화의 순간에 놓인 사람들을 이끄는 안내자이자 신성, 샤먼으로 존중되었다.

10년간 33번의 북극 현지 조사를 수행한 경험을 엮은 책 ‘북극 이야기, 얼음 빼고’에 따르면, 인류는 북극 원주민의 존재를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북쪽 세상을 “인간이 아닌 곰의 세상”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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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전문가 김종덕은 북극이라는 영어 단어 ‘아크틱(Arctic)’의 어원이 “큰 곰의 땅”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르크티코스(Arktikos)’에서 유래했다는 점과 모든 뱃사람이 방위의 기준으로 삼는 북극성이 ‘작은곰자리’라는 별자리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라는 점을 예로 들면서 북방의 민족들이 곰을 숭배하는 토템 신앙을 갖고 있었고, 북극 바다의 가장 강력한 포식자는 ‘북극곰’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21세기 현재 북극은 기후 변화, 환경오염, 멸종위기에 놓인 북극곰으로 인해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극지방의 북극곰 사냥이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과열되고 북극에 각종 유해 물질이 쌓이기 시작한 것은 원주민이 아닌 ‘이주민’ 때문이었다. 18세기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탐험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고, 19세기 말에 이르러 로알 아문센, 프리드쇼프 난센, 로버트 피어리와 같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탐험가들의 업적이 주목되면서 북극으로의 이주자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북극 이야기, 얼음 빼고’에서 김종덕은 동물의 가죽, 황금과 보석, 석유와 가스를 찾아 떠난 이주자들의 움직임은 북유럽에서 시베리아로, 북아메리카로, 그린란드로 뻗어나갔고, 때마침 시작된 기후 변화는 이주민의 확산과 개척시대를 훨씬 더 재촉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2008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북극곰은 엄청난 속도로 녹아내리고 있는 빙하와 길어지는 북극의 여름으로 인해 먹이를 찾을 수 없어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고, 현재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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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국의 극작가 태티 헤네시는 10대 소녀 ‘로리’를 중심으로 기후 변화와 상실의 슬픔, 성장과 극복의 여정을 펼쳐낸 1인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로 볼트 오리진 어워드 최우수 신작상을 수상했다.

2019년 3월, 웨스트엔드 트래펄가 스튜디오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헤네시는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극지방 탐험가들의 이야기에 집착하며 영웅주의를 탐닉해왔다는 헤네시는 어느 날 문득 역사 속 탐험가들이 모두 남성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매우 다른 영웅을 내세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헤네시는 전통적으로 ‘탐험’이라는 남성적 환경의 주인공으로 좀처럼 채택되지 않던 15세 소녀를 이야기의 중심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기존의 시스템에 도전하고, “감정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극단”을 의미하는 ‘북극’으로의 여정을 통해 욕망과 사유,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음을 토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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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작품의 주인공인 ‘로리’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혼자 북극으로 향하게 된 이유와 북극에 아버지의 유해를 뿌리게 되는 전체의 과정을 모놀로그(독백)로 들려줌으로써 극지방 탐험의 역사와 여성으로서의 성장,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여정을 관객들과 함께 한다.

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에서 로리가 관객들을 향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매우 담담하고 가볍게 스며들며 북극에 관한 많은 지식과 깊은 사유를 담은 질문들을 던진다. 십대의 발랄함과 예측불허, 호기심과 용기, 저항과 유머를 갖춘 로리의 대사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과 슬픔, 사유와 감동 사이를 오가면서 북극과 탐험, 삶과 죽음, 존재와 자연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의 한국 초연이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진행 중이다. 국내 공연의 경우, 헤네시가 강조하고 싶었던 기후 문제에 대한 인식과 역사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기존의 시스템에 저항하는 로리의 도전보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른 아버지의 유해를 북극으로 가져가는 속에서 성장을 이루고 애도를 극복하는데 더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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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시의 원작에서 생략된 부분들은 로리가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와 사실의 괴리를 인식하는 비판적 사고라든가 탐험가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을 겁탈하고 정복하고자 했던 욕망에 대한 인식, 북극과 북극곰으로 대변되는 자연을 훼손시키면서 생명과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와 같은 맥락들이다.

원작의 로리는 보다 반항적이고 냉소적인 측면을 갖고 있고 탐험가들의 도전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아문센과 난센과 같은 탐험가들이 이누이트 원주민들로부터 생존에 필요한 기술과 지혜들을 배웠으면서도 그들을 ‘미개인(savages)’으로 불렀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연극을 통해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헤네시는 ‘우리가 왜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이 “청소년기의 탐험이자 슬픔의 탐험이고, 기후 변화의 영향에 관한 탐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녀는 기후 상황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은 우리 자신보다 크고 멀게 느껴지는 일들이기 때문에 신경을 쓰고 관심을 가지는 일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로리가 마주하게 된 아버지의 죽음과 북극곰의 죽음, 빙하가 녹아내리고 극심한 온도 변화를 겪고 있는 자연의 ‘상실’은 “되돌릴 수 없는 엄청난 것”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헤네시는 이러한 상실이 한 개인의 이야기에 담기게 될 때 사람들은 ‘개념’이 아닌 ‘감정’을 통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은 행동의 뿌리”가 될 수 있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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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영문학 수업이 사전학”이었다는 헤네시는 사전 편찬의 과정에서 단어를 선택하고 주요 의미를 결정하며 정의의 쓰임에 순서를 정하는 사람들이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모든 생각의 기반을 흔들어놓았음을 피력한다.

중요하지 않은 의미들을 배제하고 포켓용 사전에 필요한 단어들을 선별하는데 누군가의 결정이 작용한다는 사실은 “객관성”에 대한 의심을 제기한다. 헤네시는 현재의 세상이 합리성이나 객관성으로 바라보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렀고 인간은 합리적이기도 하지만 감정적이기도 한 존재이기 때문에 ‘감성을 바탕으로 한 지적인 판단’을 통해서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녀는 좋은 이야기는 시스템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로 하여금 생각할 기회를 남겨주며, 누가 혜택을 받고 누가 상실에 이르렀는지, 다른 지점에서 다른 견해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일깨운다고 말한다.

헤네시에 따르면, 로리가 과거의 식민지 시대의 탐험가들의 모험을 우상화하고 인간이 북극이라는 혹독한 자연에 맞서 어떻게 싸워나갔는지를 감탄하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북극을 눈과 얼음만이 존재하는 텅 빈 곳, 무기력한 죽음이 기다리는 곳, 발견되고 정복되기를 기다리는 곳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그녀가 북극에 이르러 발견한 것은 “복잡하고 두렵지만 영광스러움이 함께하는 서로 연결된 아름다운 삶의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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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시는 관객들이 로리를 통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자연과 역사가 어떻게 맞물려 얽혀있는지를 인식하고, 모든 것의 출발이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랬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로리의 첫 대사는 “어떤 일의 끝에 이르고 나면 처음을 떠올리기가 힘들어진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모든 일의 첫 단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헬리콥터를 타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와 함께 북극 상공에서 아버지의 유해를 눈보라 속으로 날려 보내는 일의 출발은 단순히 비행기에 올라탄 결정이나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들은 충격의 순간, 혹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일기장을 발견한 때문이라고 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다음해에 딸과 함께 북극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로리가 죽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마치 ‘안네 프랑크의 일기’처럼 읽기로 결정했기 때문이고, 역사가 없었다면 일기장에 적힌 계획은 세워지지 않았을 테고, 인간이 세계 탐험에 나서는 일이 없었다면 세계 역사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가 빙하기에 접어들고 해빙이 되어 인류가 번성하는 일이 없었다면 탐험의 욕구는 생겨나지 않았을 테고,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떨어진 거리가 현재와 같지 않았다면, 아예 애초에 태양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북극을 향해 떠나는 일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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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사는 로리가 여정을 마치면서 말하는 “처음을 되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다른 길들이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문장으로 연결된다.

만약 로리가 평생 꿈꾸었던 북극조차 가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아버지를 위해 유골함이라도 가져가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로리가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와 함께 걸어오는 선택을 했더라면, 엄마와 아빠가 만나 로리가 태어나는 일이 아예 없었더라면, 아버지가 그토록 동경하던 난센이 탐험가가 아니라 택시 운전사였더라면, “모든 출발점을 이렇게 떠올리는 일은 삶의 취약성”과 우연성을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모든 여정을 마친 뒤 되돌아온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누군가의 발자취가 머물다 간 곳은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고 잊을 수 없는 기억과 경험으로 마음속 깊이 자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로리가 어디에 있든 북극은 영원히 로리와 어머니의 기억 속에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함께 존재할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얼음과 다섯 개로 분류되는 북극, 하늘로 솟아오르던 아버지의 재, 녹아내리는 빙하 속에 죽어가던 북극곰에 대한 꿈, 우연히 만나게 된 프리다를 통해 보게 된 자연의 법칙으로 빚어낸 아름다운 얼음 빙하의 모습들...

취약함과 연약함 속에 한계에 직면하면서도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노력은 아버지가 딸과 아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찍은 사진 뒤에 적어놓은 난센의 글귀로 요약된다.

“사랑은 삶 속에 내리는 눈과 같다. 투쟁으로 인해 입은 깊은 상처 위로 가장 부드럽고 가장 깊게 내려앉는 눈, 사랑은 그 눈보다도 더 하얗고 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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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캐서린 메이는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에서 “겨울은 인생의 휴한기”라고 말했다. 비자발적으로 닥쳐온 혹독한 추위로 인해 외롭고 극도로 고통스러운 시기를 이겨내는 것, 스스로를 백지화시키고 완전히 열어젖힌 후 텅 빈 공백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나’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메이는 “윈터링”이라고 부른다.

누구의 삶에나 윈터링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겨울나기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그녀는 윈터링이 “인간의 경험 중 가장 심오하고도 영감에 찬 순간을 경험하게 하고 겨울 안에 깃든 지혜를 가르쳐준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으로부터 침잠해 빈약한 자원을 최대로 활용하고 냉혹한 효율의 법칙을 따르면서 시야에서 사라지는 시기”인 겨울은 “변신의 출발점이자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화장이 결정되고 부엌 식탁 위에 유골함을 올려놓은 채로 이름과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집 안에 모여 “아름다운 장례식”이었다면서 위로의 말을 전하는 상황을 로리는 이해할 수 없다. 싸구려 마술쇼처럼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사라진 아버지의 관은 누군가의 재가 남아있을지도 모를 화장터에서 한 순간에 유골함으로 옮겨져 버렸다.

광활한 북극 탐험을 동경하던 아버지가 작은 유골함에 갇혀 있는 것을 좋아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은 서재에서 발견한 일기장과 북극 여행을 계획했던 아버지의 흔적으로 인해 로리가 ‘모험’을 떠나도록 만든다. 어릴 때 아버지와 캠핑을 갈 때면 늘 하던 대로 계획표를 짜고 짐을 챙긴 로리는 난센처럼 노르웨이를 통해 북극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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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신용카드를 몰래 훔친 뒤 공항으로 향한 로리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트롬쇠에 도착한다. 트롬쇠 북극 박물관과 새로운 노르웨이 친구들과의 파티, 일탈의 시간을 보낸 로리는 스발바르 제도의 롱이어비엔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로리는 프리다라는 60대의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땋은 현지 연구원의 옆자리에 앉게 되고 그녀가 일하는 빙하 기지로 함께 들어간다. 혼자 북극까지 온 십대 소녀를 염려한 프리다는 로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가방을 뒤져 유골함을 발견하고, 다음 날 경찰서로 로리를 데려가 어머니에게 연락을 취한다.

로리는 걱정과 두려움, 슬픔으로 지쳐버린 어머니를 마주한 순간 6년이나 죽은 남편을 찾아 헤맨 탐험가 존 프랭클린의 아내를 떠올린다. 로리는 말한다.

“엄마도 남편을 잃은 거였네요. 그렇게는 생각해보질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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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의 말처럼, 슬픔은 때로 미친 짓을 하도록 만들지만 슬픔이라는 외로움 속에 서로를 챙기고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으로 어둠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 사이의 틈 속에 빠져버린 듯한 혼란스러운 감정, 불안정함과 황량하고 공허한 느낌은 로리와 어머니 각자 자기 몫의 ‘윈터링’을 견뎌낼 것을 요구한다.

메이는 윈터링을 겪은 사람들이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최선을 다해 치유하고자 애쓰는 용기,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부터 잠시 물러나 다른 시선을 가지고자 노력하는 시간, 메이는 윈터링을 먼저 겪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선물 교환”과도 같다고 말한다.

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에서 로리는 자신의 경험을 관객들과 나눈다. 모놀로그로 펼쳐지는 로리의 북극 여정은 살포시 내려와 상처를 덮는 하얀 눈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치유의 이야기를 만든다. 5월 1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