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자위역량 강화
인터뷰365 하정열 칼럼니스트 =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미국과 NATO, UN등에 의존하며,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했지만 국방력의 부족으로 키예프까지 밀리고 있다. 국민들의 국가수호의지가 예상보다 높아 속전속결로 우크라이나를 점령하겠다는 푸틴의 시나리오 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결국에는 러시아의 요구를 수용하며, 백기를 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위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안보’는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는 산소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보험료다. ‘힘’은 불안한 정세를 진정시키는 특효약이 될 수 있다. 민족의 영광은 때로는 싸워서 쟁취해야 할 때도 있다.
한반도의 역사는 우리에게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나라는 영원한 생명력이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생존은 오로지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힘에 의해서만 보장되기 때문이다.
조선의 16대 임금 인조는 병자호란이 발발 후 45일 만인 1637년 1월 30일에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삼배구고두’의 항복의 예를 올렸다. 청나라 태종이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하여 인조는 얼어붙은 땅에 머리를 사정없이 부딪쳐 이마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조선이 조공을 바치던 이민족 왕에게 머리를 조아린 굴욕의 순간이었다. 김훈은 역사소설 ‘남한산성’에서 이 처참한 광경을 적나라하게 기술하고 있다.
인조는 왜 이러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해야 했는가?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39년 전 조선은 이미 7년 동안이나 임진왜란의 국란을 겪었다. 임진왜란이 있기 10년 전 이율곡이 조정에 건의한 ‘10만 양병설’을 무시한 결과였다.
유성룡은 일본과 ‘7년 전쟁’을 겪고 난 후 다시는 우리 민족이 그런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징비록’을 썼다. 그러나 그 책이 나온 지 약 한 세대가 지난 39년 만에 여진에게 두 차례에 걸쳐 패배를 당하고, 굴욕적인 항복을 하며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전쟁 후 70여년이 지난 분단 경험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국민합의사항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 땅에서 전쟁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손자는 “전쟁은 국가의 존망과 생존이 달려 있음으로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였다. 국가가 부강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비록 천하가 태평해도 전쟁을 잊으면 국가는 위태로워진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모든 문제에 앞서는 선행조건이다. 대북 화해협력 정책과 포용정책 및 평화이니셔티브나 평화번영정책도 한반도의 전쟁억제와 평화보장을 대전제로 해서만 추진이 가능하다.
평화체제정착은 전쟁억제를 위한 강력한 군사대비태세가 뒷받침될 때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으며,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그저 희망에 불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스라엘이나 스위스처럼 총력안보체제를 굳건히 유지해야 한다. 즉 자위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자강의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국민들의 국가수호의지를 보면서 병자호란을 생각한다. 나는 그들이 러시아의 침략을 봉쇄하고, 국가주권을 수호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러시아의 요구를 수렴하면서 평화협상을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나라는 언젠가는 강대국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면서 평화통일을 이루어 일류국가를 건설하기 원한다면 먼저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국가수호의지와 자위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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