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김갑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이티>가 세계의 흥행가를 강타하며 한국에도 상륙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외국영화의 수입쿼터제도가 있던 당시 심의는 물론 외환사용 승인 등을 정부 당국에서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수입가의 문제로 <이티>의 수입이 차일피일 지연되고 있었다. 수입사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부시맨> 등을 수입한 현진필름이었다.
<이티>의 수입개봉이 지연되자 <이티>의 내용을 모방한 만화영화가 재빨리 제작되었고 그해 여름방학에 아이들을 타깃으로 극장 상영날짜가 잡혔다. <이티>는 개봉 이전 이미 아이들에게 책과 각종 장난감 등으로 잘 알려져 있었기에 방학일인 7월 20일부터 상영을 하면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을 만큼 흥행여건은 충족돼 있었다. 그러나 엄청난 수입비용을 들여 <이티>를 수입하려는 현진필름 입장에서는 만화영화가 나와 <이티>의 영화적 호기심과 흥행성을 갉아먹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고 불쾌했다.
<이티>를 모방한 만화영화는 <우주에서 온 외계인>과 <황금연필과 외계소년> 두 편이었는데 <우주에서 온 외계인>은 거의 <이티>와 유사했고 주인공의 모습도 <이티> 그대로였다. <황금연필과 외계소년>은 <이티>와는 전혀 내용이 달랐으나 주인공의 모습은 <이티>와 유사한 점이 있었다. 현진필름은 두 영화가 완성돼 검열을 신청하자 “영화 <이티>의 내용을 표절한 영화로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수입, 흥행하려는 <이티>에 심대한 타격을 주게 된다”는 이유를 들어 검열에 제동을 걸었다.
<우주에서 온 외계인>이나 <황금연필과 외계소년> 두 만화영화는 7월 20일부터 상영한다는 광고를 시작했고 방학을 앞둔 아이들은 그 만화영화들을 보러간다고 한창 들떠 있었다. 그러나 <우주에서 온 외계인>은 검열에서 주인공이 같고 내용도 <이티>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검열이 보류되었고 <황금연필과 외계소년>의 경우 <이티>와 전혀 무관하지만 앞서 <우주에서 온 외계인>의 검열보류 영향으로 개봉일인 7월 20일을 넘긴 26일경에 검열 합격증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극장에서 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고 <황금연필과 외계소년>이 사실상 상영될 수 있었던 때는 아이들이 부모들을 따라 바다로 산으로 피서를 떠난 8월 10일경이었다.
흔히 관록 있는 흥행사들은 영화를 생선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싱싱할 때 회를 쳐야 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티>도 그리고 <이티>를 모방한 만화영화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제때를 놓쳐 흥행에서 별재미를 못 본 물간 생선 꼴이 되었고, 영화에 따라 상영해야 할 시기가 있다는 진리를 절실하게 깨닫게 해준 실례를 남겼다. 요즘도 만들어 놓고 극장이 없어 상영하지 못하는 한국영화들을 보면 ‘영화는 생선과 같다’는 말이 떠올라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