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5형제’ 증후군에서 벗어나자
‘독수리5형제’ 증후군에서 벗어나자
  • 김세원
  • 승인 200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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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財)테크 보다 휴(休)테크에 신경쓸 때 / 김세원



“랄랄라 힘차게 나르는 / 우주소년 아톰 / 용감히 싸워라 / 과학의 힘 / 정의의 승리 / 우주소년 아톰”
“우렁찬 엔진소리 독수리 5형제 / 쳐부수자 알렉터. 우주의 악마를 / 태양이 빛나는 지구를 지켜라 / 정의의 특공대 독수리 5형제”
“지구는 작은 세계 / 우주를 누벼라 / 씩씩하게 잘도 나른다 / 짱가 짱가 우리들의 짱가”



[인터뷰365 김세원] 70,80년대는 TV만화영화 전성시대였다. ‘캔디’, ‘집 없는 아이’같은 순정만화도 있었건만 우주를 누비며 외계의 침략자와 맞서 지구를 지키는 우주소년 아톰과 짱가, 그리고 마징가Z와 로봇태권V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요즘 어린이들처럼 가야할 학원이 몇 개씩 있는 것도 아니고 게임기에 컴퓨터, 휴대전화가 놀 거리를 제공하지도 않았던 때라 학교에 다녀와서 후딱 숙제를 하고는 오후 6시 만화영화 상영시간이 될 때까지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당 선생이 생전에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필자 같은 386세대를 키운 것은 8할이 TV만화영화와 어린이잡지 만화부록이 아니었을까? 황금박쥐, 달려라009, 블랙슈퍼맨X,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요괴인간, 왕거미(스파이더맨)는 엄청난 초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평소에는 이를 숨기다가 절대 절명의 순간에 오로지 정의 실현과 인류 수호를 위해서만 초능력을 발휘한다.



독수리5형제 증후군


대학시절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386세대의 강박관념은 어쩌면 자나 깨나 ‘지구 방위’를 근심하는 만화영화 주인공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전이됐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이 강박관념에 ‘독수리 5형제 증후군'이란 이름을 붙여놓았다.



‘방위가 없으면 동사무소는 누가 지키나’란 패러디 유머까지 낳은 독수리5형제 증후군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386세대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만 해도 중고등학교 교가는 까맣게 잊었어도 만화영화 주제가 몇 곡쯤은 아직도 막힘없이 끝까지 부를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지구 방위까지는 몰라도 내가 아니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과대망상 속에 주말과 휴일에도 회사 근처를 맴도는가 하면 커피자판기 주변의 ‘사무실 사랑방’과 퇴근 후 술집의 식탁위에는 정치 사회적 이슈들이 단골 메뉴로 올라간다.



사실 요즘 세태를 보면 혀를 차고 공분해야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소수를 배려한다는 취지가 권력자가 숨겨놓은 비리투성이 측근에 감투를 씌워주기 위한 명분으로 전락한 비례대표가 특히 그렇다. 하지만 지난 신문 제목들을 훑어보면 어느 시대건 사회가 어지럽지 않은 적이 없고 경제가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다. 거창한 정치 담론과 사회비리 척결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가족들과 주말을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 것인지에는 무심한 것이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휴(休)테크의 지혜


몇해전 <21세기 여성CEO포럼>에서 주관하는 조찬 모임에 참석했다가 명지대 K교수의 휴(休)테크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됐다. 그는 주5일 근무제가 제대로 노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와 가정에 가져올 여파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 못지않게 잘 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태인이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각 분야에 세계적인 학자와 전문가를 배출할 수 있었던 비결도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강제로 쉬도록 한 유대교의 전통 때문이다. 7일마다 하루를 쉬는 안식일, 7년에 1년을 쉬는 안식년, 49년 마다 땅을 쉬고 빚을 탕감해 주는 희년제를 두어 철저한 휴식 속에서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고 창의력을 발휘해 탁월한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K교수는 창의력이란 ‘익숙한 것, 낡은 것을 전혀 다른 맥락에 가져다 놓고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재미야 말로 창의력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어른들에게 빗자루는 청소 도구일 뿐이지만 어린이에게는 마법사의 교통수단이자 예술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붓도 될 수 있다. 재미가 곧 삶의 목적인 어린이들은 사소한 것에서도 재미를 추구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호기심이 줄어들고 자극에 둔감해지면서 재미를 누리기가 어려워지고 창의성도 고갈된다.



K교수에 따르면 21세기의 리더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재미를 발견해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거나 사소한 것에도 감탄하고 감탄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요즘은 '웃찾사'나 '개그콘서트', ‘개그야’ 를 보며 얼마나 많이 웃을 수 있느냐에 따라 노화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 그만 ‘독수리5형제’(사실은 독수리5남매)그룹에서 탈퇴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과 ‘짱구는 못 말려’를 보며 실컷 웃고 싶은데 해야 할 일로 가득한 두뇌의 웃음 중추가 제대로 기능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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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원

동아일보 기사, 파리특파원,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현 카톡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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