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두번 세번…기사로 읽던 ‘그 장면’을 눈으로 보는 우울함 ‘도가니’
한번 두번 세번…기사로 읽던 ‘그 장면’을 눈으로 보는 우울함 ‘도가니’
  • 김다인
  • 승인 201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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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김다인】많은 영화를 오랜 시간 동안 봐왔지만, 이 영화만큼 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우울하긴 처음이다. 이미 300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봤다 하니, 거리에는 무거운 발걸음들이 저벅거릴 것이다.

광주 인화학교 장애아들 성폭행 사건이라는 실화를 다룬 이 영화의 파괴력은 원작인 공지영의 동명소설이 발간됐을 때보다 엄청나게 크다. 며칠전 인화학원의 설립 허가가 취소됐고 당시 사건을 맡았던 형사가 심정을 토로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철도에서 자살하는 소년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 소년의 형인 민수가 동생의 가해자와 함께 숨지는 것으로 매듭을 짓는 동안 광주시의 한 청각장애아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무진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김승옥의 저 유명한 소설 ‘무진기행’에서 따왔을 수도 있고 광주의 옛이름이 무진이라는 것에서 착안한 지명일 수도 있겠다.

학교 발전기금 5천만원을 내고 이 학교에 부임한 미술교사 인호를 통해 밝혀지는 지난 5년 동안의 장애아 성폭행 사건은 리포트 수준으로 나열된다. 재판이 열리는 과정에서 세 명의 아이들이 교장과 선생에게 어떻게 당했는지를 보여주고, 주위의 어른들은 이를 은폐하려는 측과 밝히려는 측으로 나뉘어 대결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속성이 가늠된다. 이 영화는 가해자로서의 어른과 피해자로서의 아이들에 대한 보고서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성폭행을 당했는가에 주목하고 있는 영화이고,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 사회는 이 영화 속 사건들을 거의 매일 쏟아낸다. 어느 마을에서 장애인 모녀를 마을사람들이 번갈아 성폭행한 이야기, 어린 아이를 노인이 성추행한 이야기 등등. 이 영화는 그 현장을 필름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을 글로만 봤을 때의 무심함은 적나라한 화면 묘사를 보면서 분노로 팽창된다. 몇 년 전 소설이 발표됐을 때보다 이번에 영화가 개봉됐을 때 사회적 반응이 훨씬 더 큰 이유다.

영화는 피해자 아이들의 순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해자 어른들의 악마성을 극대화하는 쪽을 택했다. 교장과 행정실장을 쌍둥이로 만들어 이같은 사건의 가해자가 무궁무진하게 복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켰고, 교장의 애인은 아이 머리를 세탁기에 집어넣고 돌리는 잔인함, 교장의 아내는 서유진의 머리채를 쥐어흔들고 강인호에게 침을 뱉는 파렴치함을 가미했다. 영화 초반 교무실에서 민수를 때리는 박보현 선생의 폭력은 무자비하고 민우 형제를 성폭행하는 그의 손길은 추악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에 비한다면 강인호나 서유진의 존재감은 다소 미미하다. 영화가 재판과정으로 넘어가 마지막으로 치달을 즈음에는 아이가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이들이다.

이러한 구성과 전개로 보자면 에필로그는 무의미해 보인다. 영화는 1년 후 크리스마스 케익을 사들고 가는 인호 모습에 덧붙여지는 아이들의 소식에 이어 무진을 선정하는 커다란 광고판 앞에 선 인호의 모습으로 끝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차라리 물대포를 맞으며 경찰에게 제압당하는 인호 얼굴에서 마무리를 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것이 개인적 소견이다.

이 영화는 소재의 강렬함에 더해 성폭행 묘사의 디테일함으로 우려의 시선을 낳기도 했다, 아무리 영화 속 장면이지만 어린 배우들이 성폭행 장면을 촬영하며 심리적인 문제를 겪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 우려의 핵심이다. 제작사 측이 어린 배우들이 어떤 심리적 문제도 겪지 않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내놓았을 정도다. 사실, 한번 두 번 세 번에 걸친 자세한 성폭행 장면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 정도까지 해야 만족했었나를 감독에게 묻고 싶기도 했다.

사회적 파장과 관계없이 이 영화의 구성에 있어 문제점은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재판과정의 구성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옷 벗은 지 얼마 안되는 변호사, 곧 옷을 벗을 검사 그리고 이들과 선후배 관계로 엮어져 있는 판사 등의 관계를 고려한다 해도, 성폭행 장면 되풀이 하는 것 외의 재판과정은 치열하게 엮어지지 못했다. 연두가 쌍둥이 가운데 자신을 성폭행 한 교장을 가려내는 것, 교장실 카메라에 찍혀진 증거물이 인멸됐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 수위나 산부인과 의사의 증언의 핵심이 명확하게 강조되지 않는 것 등이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힘에 의해 그리 될 수밖에 없다고 이해는 하지만 그러기에는 영화 내적 설득력이 상당히 부족하다.

영화 ‘도가니’는 어떤 면에서는 영화적 금기를 깨뜨리는 첫 시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유소년이나 십대들이 연루된 폭력영화는 많이 등장했으나 성폭력이 전면에 내세워진 영화는 없었다. 이제 ‘도가니’로 그 금기는 깨지게 될 것이다, ‘19금(禁)’의 딱지를 달고 말이다.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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