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의 '멍에'는 사창가가 만든 희트곡.
김수희의 '멍에'는 사창가가 만든 희트곡.
  • 신일하
  • 승인 2008.03.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별을 쥔 남자, ‘박 웅’이 털어놓는 연예계 비화 / 신일하

[인터뷰365 신일하] 여의도 방송가에 ‘별을 쥔 남자’가 있다. 우리 가요계에 그처럼 여러 명의 스타를 손에 쥐고 놀았던(?) 경험을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멍에>의 김수희, <노래하며 춤추며>의 계은숙, <전우가 남긴 한마디>의 허성희, <나를 두고 가려므나>의 김동아, <립스티 짙게 바르고>의 임주리 등 대박 난 히트 앨범이 있고 혜은이의 <비가>, 최헌의 <우리 장모님> 등의 노래 제작 이외에 큰별 자매, 허인순, 유현주, 유연실. 전윤희 등 히트 가수들이 그에 의해 탄생 하였으니 ‘별을 쥔 남자’란 어울리는 지칭어다.


PD들이 그를 부르는 호칭은 ‘웅석기획의 박웅사장’. 우리 대중문화 제1세대 매니저 출신에다 PD 메이커 제1호이기도 한 박사장은 해방둥이 출신. 그래서인지 늘 허술한 차림으로 여의도에 나타나지만 그와 마주치는 디지털 시대의 젊은 매니저들은 정중하게 고개 숙여 최고참 대접을 해준다.


박사장은 김수희의 히트송 <멍에>를 프로듀싱하며 이색 체험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멍에>는 군사정권 시절의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제목이 불건전하다며 4번이나 심의 신청을 반려했던 노래다. 그런데다 취입 준비하던 방미가 지쳐 포기하는 바람에 김수희로 바뀌고 말았다. <어머나>로 신세대 트로트 여왕이 된 장윤정은 김수희처럼 운 좋은 스타로 알려졌다. 작곡가는 주현미를 위해 <어머나>를 만들었으나 그녀의 거절로 빛을 보지 못하다 장윤정이 불러 대박을 터뜨린 에피소드가 있어서다.


부산 텍사스촌의 한 가계를 통째로 빌려 노래연습을 시킨 김수희의 <멍에>


“수희를 취입시킨 다른 사연도 있어요. 아침 식탁에 고들빼기김치가 올라와 맛있게 먹었는데 어느 날 안보여요. 아내에게 어찌 된 건지 물으니 2달 동안 먹은 게 수희 어머니가 가져온 거래요. 광주에 살던 수희 어머니가 고들빼기를 담아 가지고 저희 집을 찾아와 딸(수희)이 3살 때 자신이 과부가 되어 어렵게 키웠다면서 부탁하고 간 걸 뒤늦게 안 거예요” 하지만 겨우 수희를 연습시켜 취입했지만 PR이 문제였다. 곰곰이 생각하던 박사장은 당시 부산에 텍사스촌으로 유명한 XX동을 찾았다. <멍에> 테이프를 가방에 잔뜩 넣고 간 그는 제일 큰 집을 골라 주인을 불러 놓고 자신이 찾아온 사연을 밝혔다. 여종업원을 모두 부르고 그 집을 통째로 빌린 박사장은 아가씨 70여명과 <멍에>를 열창하며 밤을 새웠단다. 그날 밤 푸짐하게 술 매상을 올려주고 후하게 팁도 뿌린 게 주효해 <멍에>가 그녀들 18번 노래로 된 것이다. 사창가 여종업원을 ‘노래 도우미’로 활용한다는 건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어 대구까지 공략했더니 <멍에>가 ‘텍사스촌 애창곡’으로 입선전이 되어 전국에 번져나갔다. 소문을 듣고 지방 방송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방송해줘 엄청난 대박을 터뜨리는 체험을 한 박사장은 “큰돈 만져본 건 그때가 내 평생 처음이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실은 김수희 만이 아니고 계은숙, 허성희. 김동아, 임주리 등을 키우며 겪은 사연이 숱하게 많죠. 70년대 유명 매니저는 무덤까지 가져갈 연예 비화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교통방송 PD가 묻혀 놓았던 사연을 방송에 나와 이야기해달라는 거예요.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지난해 추석 귀향길 특집 프로에 나가 4시간 동안 생방송을 했는데 반응이 엄청 나더군요” 아날로그 시대에 매니저들이 가수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동안의 숨겨진 비사와 자신이 걸어온 이색 삶을 털어놓았더니 피드백이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고 밝힌 박사장은 “모 방송작가의 연락이 왔어요. 출판사를 연결해 줄 테니 내 자서전을 낼 수 있느냐고요. 처음에는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하며 ‘별을 쥔 남자’의 탄생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연예계 비화, 책으로 낼 결심.


전남 순천이 고향인 그는 어릴 때 동춘서커스 단원의 시절을 보내다 가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 종로 세광음악학원을 나와 미8군에서 드럼과 기타를 연주하며 무대생활을 하다 노래를 취입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재능이 부족한 걸 깨달아 무명 가수생활을 접고 연예인의 야간업소 스케줄을 봐주다 허성희를 만나 정식 가수 매니저로 방향 전환하기 까지 뼈아픈 과거와 가슴에 한 맺힌 사건도 많았다. 가방끈이 짧은 매니저로 대학졸업의 최고 지성 집단인 방송국을 출입하다 보니 형언할 수 없는 여러 수모를 겪었다는 박사장의 고백을 듣고 있던 그 작가는 “어! 사장님 자서전 타이틀이 나왔네요. ‘별을 쥔 남자’ 어떤 가요”하는데 자신의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과정이 그전에는 콤플렉스였지만 지금은 별로 부끄럽지 않게 느껴져 털어놓는 거라는 박사장은 “생전에 부친이 자식들에게 가르쳐 준 게 있어요. 너희들 커서 무슨 일 하던지 내 상관하지 않겠으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죠”하면서 자신이 평생 한 우물을 파며 살아온 것과 성공한 인생 대열에 낀 게 아버지의 가훈 덕분이라고 했다. 고사성어를 인용하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적절할 거다.


비록 아날로그 사고방식에 젖은 박사장이지만 트로트 음악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 또 다시 돈방석에 올라설 기회를 잡았다. 최희준, 조영남에 이어 제3호 서울대생 트로트 가수 현자(본명 양미정 42)를 발굴, 전속하는 행운이 그에게 왔다. 84년 서울대 가정과에 합격, 대학생이 되었지만 아버지 사업실패로 졸지에 밤업소 가수로 전락했던 그녀는 웅서기획에 의해 픽업, 노래 ‘사랑을 몰랐네’를 취입하고 20여년 만에 복학도 이뤄져 신데렐라의 꿈을 실현하게 더된 것이다. K2TV 다큐미니시리즈 ‘인간극장’ 제작사와 계약, 요즘 다큐 촬영에 바쁜 현자의 스케줄을 조정하느라 즐거운 비명 속에 하루하루 일과를 보내는 '별을 쥔 남자‘ 박웅사장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다”며 그의 얼굴은 입이 찢어질 듯 싱글벙글 이다.




기사 뒷 이야기가 궁금하세요? 인터뷰365 편집실 블로그 에 방문하세요.


관심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