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인물]성룡이 존경한 한국인,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중)
[김두호가 만난 인물]성룡이 존경한 한국인,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중)
  • 김두호
  • 승인 2018.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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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산업의 1970∼80년대를 견인한 '거목' 제작자 영화사 동아수출공사의 이우석 회장. 동아수출공사는 1967년에 창업된 충무로 토착자본의 영화사다. '이어도', '바람불어 좋은날', '만추',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등 동아수출공사가 제작한 영화가 85편에 이른다.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영화사 동아수출공사의 이우석(李于錫 1935∼ )회장은 한국영화산업의 1970∼80년대를 견인한 거목의 제작자 중 한 사람이다. 

서울 강남대로(도곡동)에 있는 동아수출공사는 1967년에 창업되어 반세기를 넘어 선 충무로 토착자본의 영화사다. 대기업 상업자본에 의해 영화산업이 좌지우지 되는 시대에 힘겹게 살아남아 순수 영화제작자의 열정과 전통을 대변해주는 인물이 동아수출공사의 이우석 회장이다. 

흥행에 성공하고 국내외 각종 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의 예술성에서도 평가받은 <이어도>(김기영 감독), <바람불어 좋은날>(이장호 감독), <세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김호선 감독), <만추>(김수용 감독), <적도의 꽃>과 <깊고 푸른밤>(배창호 감독), <장사의 꿈>(신승수 감독), <겨울나그네>(곽지균 감독), <칠수와 만수>와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 감독),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홍상수 감독) 등을 비롯해 동아수출공사가 2013년까지 제작한 영화가 85편에 이른다.

청년 문화의 기수 역할을 한 소설가 최인호도 영화감독이 되어 <걷지 말고 뛰어라>는 자작 시나리오 한편을 동아수출공사에서 만들었고, 일제 강점기 <임자 없는 나룻배>로 민족혼을 일깨운 이규환 감독의 마지막 작품 <남사당>도 동아수출공사가 제작했다.

김지미·안성기·이대근·윤정희·양정화·김혜자·강수연·이덕화·임예진·장미희·정윤희·유지인·김자옥·신일룡·황정리·최윤석·문성근·원미경·하재영·강석우·이미숙·박중훈·배종옥·나영희·박선희 등의 별들이 7080년대 '이우석 제작'의 스크린을 통해 눈부시게 떠올랐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이우석회장부터 시계방향으로 임권택 감독, 김수용감독. 맨 오른쪽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맨 뒷줄 고 김기덕 감독/사진=동아수출공사

한국영화사에서 멜로영화의 대표적인 흥행영화로 꼽히는 <미워도 다시한번>(정소영 감독,제작) 시리즈를 대만에 수출해 그곳에서도 빅 히트, 해외에 영화 한류의 첫 깃발을 올리게 한 주인공도 동아수출공사의 이우석 회장이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전설적인 홍콩배우 브루스리(李小龍)의 빈자리를 차지한 청룽(成龍(성룡), 영어명 재키 챈)은 이우석 회장이 무명시절부터 가족처럼 인연관계를 유지해 그의 출연영화를 독점하다시피 국내에 소개했고, 특급 외화 <클리프행어> <007 죽느냐 사느냐> <원초적 본능> <늑대와 춤을> 등을 수입하면서 서울 강남지역 여러 곳에 동아극장 등 복합상영관을 운영하던 전성기도 있었다.

이우석 회장과 홍콩배우 성룡,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사진=동아수출공사

충무로시대 영화인들에게 '이우석의 동아수출공사'는 정도(正道) 운영의 모범 영화사로 평가받았다. 허가된 20개 영화사만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던 시대에 연간 3편의 한국영화 의무제작 편수도 외주 대명 제작으로 대체하던 영화사가 많았지만 그는 고지식할 정도로 자체제작 원칙을 고수했다.

감독과 작가, 배우를 비롯한 영화 제작종사자들의 대우문제에서도 서운한 소리를 듣지 않은 '신사의 인품'으로 신뢰를 받은 제작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영화에 바치고 팔순을 저만치 넘어 선 노 제작자의 가슴에는 보람보다는 못다 이룬 회한과 공허감이 더 깊이 피어오로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의 화려한 영화인생이 예전 같을 수가 없다.

인터뷰 도중 말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며 긴 호흡을 반복하는 그의 표정은 잠깐 동안에 영화와 함께 한 반세기의 내력을 함축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거목(巨木)' 제작자,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의 영화 반세기(상)이어서


◆무명시절의 청룽과 맺은 따뜻한 인연

-골든하베스트는 브루스리와 청룽(성룡)을 빅스타로 만든 홍콩의 대표적인 영화사다. 동아수출공사의 이 회장과 레이먼드 초우 골든하베스트 회장이 서울과 홍콩에서 회동하는 모습이 가끔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청룽도 무명시절부터 한국에 오면 이 회장을 찾아오는 인연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청룽과는 어느 정도, 어떤 관계였나?

나는 일찍부터 홍콩 영화업계를 잘 알고 있는 중국교포 출신의 영화중개업자인 고인화 사장의 도움으로 대만을 비롯한 홍콩 등 해외시장의 영화업자와 영화인들을 폭 넓게 접촉하고 교류관계를 유지했다. 그 밖에 왕사상(작고) 왕리군 팽장기 씨 등 동아수출의 대외적인 업무를 지원한 중국교포들이 많다. 그들을 통해 무명시절의 청룽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따뜻하게 맞이했고 그도 나를 가족처럼 생각했다. 그가 브루스리의 대를 잇는 큰 배우가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서로 좋아하는 인간관계를 유지해 그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가 소속된 골든하베스트와도 사업 파트너로 안정적인 교류를 유지했다.

청룽이 한국 관객들에게 눈길을 받기 시작한 첫 작품 <취권>도 나의 소개로 연방영화사가 수입해 크게 히트했다. 그후 청룽의 많은 작품을 동아수출공사가 국내에 공개했고 청룽은 자신이 아끼는 자동차까지 나에게 선물로 전해 줄 만큼 친밀감을 표시했다. 청룽의 자동차는 제주도 신영영화박물관에 전시물로 기증했다.

해외시장의 영화업자와 영화인들과 교류해온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은 홍콩배우 성룡의 무명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성룡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 '취권'은 이우석 회장의 소개로 연방영화사가 수입해 국내에서 크게 히트쳤으며, 동아수출공사는 성룡의 많은 작품을 국내에 공개했다./사진=동아수출공사
스카라 극장 미라클 개봉과 성룡 방한으로 줄선 관객 사진 (1989년)
1989년 스카라 극장에서 홍콩영화 '미라클' 개봉에 맞춰 방한한 주연 배우 성룡을 보기 위해 줄선 관객들의 모습/사진=동아수출공사

◆<사망유희> 블루스리 대역 김태정 추천

-브루스리가 <사망유희> 출연 중 32살로 요절했을 때 못다 찍은 장면의 대역 주인공으로 브루스리를 닮은 한국의 무명 액션배우 김태정이 당룡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하게 된 것이 이 회장의 추천에서 비롯된 것으로 소문이 났었다. 당시의 뒷얘기가 궁금하다.

동아수출은 한 때 액션영화 연출 분야의 대표적인 감독 김시현·김정용·남기남 감독 등을 기용해 여러 편의 무협물을 만들었다. 1977년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사가 제작 중인 <사망유희>의 주역 브루스리(이소룡)가 촬영 중 사망해 그를 대신할 배우를 찾을 때 내가 김태정을 추천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 후 홍콩에서 성공한 황정리와 김태정을 캐스팅해 1980년 김정용 감독이 현지 로케이션으로 <사망탑>을 만들어 개봉하기도 했다.

-제작한 작품의 감독들을 보면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도 많다. <흑녀>(1973)의 정소영, <파계>(1974) <이어도>(1977) <흙>(1978) <반금련>(1981)의 김기영, <여기자 20년>(1977) <웃음소리>(1978) <사랑의 조건>(1979) <만추>(1981)의 김수용, <을화>(1979)의 변장호 감독을 비롯해 좀 특별한 이름도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남사당>(1974)의 이규환, <걷지 말고 뛰어라>(1976)의 최인호(소설가),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1976)의 박노식(배우) 감독 등이다.

특별한 이름으로 꼽은 감독들의 작품은 시선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임자 없는 나룻배>의 이규환 감독은 언론사에서 생존한 원로 거장에게 마지막 연출 기회를 주자는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 다른 영화사들이 다들 관심을 보이지 않아 동아수출공사가 기부투자형태로 <남사당>을 제작했다. 동아수출공사의 1980년대는 수많은 감독들과 데뷔를 준비하는 연출 지망생들의 시나리오가 밀려들어왔다. 간혹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고 한국영화사의 가치와 의미에 비중을 둔 작품도 과감하게 제작을 시도했다.

옛 기록을 살펴보는 동아수출공사의 이우석 회장. ⓒ인터뷰365

-제작 영화중 보람이나 크게 만족감을 느낀 작품이라면?

제작자의 모순은 흥행을 좇으면서 작품의 예술성에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데 있다. 많은 관객들이 몰려든 작품이 아주 좋은 영화로 찬사가 쏟아지고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상을 차지하면 그 이상 즐거울 수가 없다.

그러나 흥행영화에 치중하다보면 저급한 작품도 나오게 된다. 동아수출공사는 일단 좋은 작품에 비중을 두고 제작 결정을 하는 영화사로 알려져 덕분에 우수한 시나리오와 감독들이 찾아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기억에 남는 인물이 많지만 이장호 감독이 한동안 작품 활동을 못하고 있다가 안성기 배우에게도 연기활동 재개의 분기점이 된 <바람불어 좋은날> 같은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에서도 대종상을 휩쓸어 1980년을 기분 좋은 한 해로 마무리해 주었다.

이장호 연출팀에서 독립한 배창호 감독도 나와 많은 작품을 만들며 한 시대 충무로를 이끌었다. 그 중 미국 로케이션 영화 <깊고 푸른 밤>(최인호 원작, 안성기·장미희 주연)을 지금으로 보면 블록버스터급인데 흥행과 작품성에서 다같이 성공해 나를 즐겁게 했다.

내 영화인생은 감독들이 가장 소중한 동반자들이다. 많은 감독들이 눈을 반짝이며 열정을 영화에 쏟으며 제작자에게 성취감을 안겨주는 밝은 면도 있지만 동아수출에서 데뷔 시킨 <겨울 나그네>의 곽지균 감독은 가난하게 살다가 불행한 삶을 일찍 마감해 마음이 아팠다.

-동아수출공사의 제작 작품 중에 국내외 수상 기록을 보면 작품상과 감독상, 연기상 등 여러분야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개인적으로 받은 훈장도 있지 않은가?

2001년 보관문화훈장과 2011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내 방에 있는 저 많은 국내외 영화제에서 받은 트로피나 상패 중에 특별히 보람을 느끼게 하는 상패라면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젊은 제작자들의 단체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2015년에 준 '한국영화제작자 공로상' 상패와 그 이듬해 사단법인 한국언론인연합회에서 준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이다. 모두 현 세대의 젊은 후진들이 아주 오랜 영화사와 연로한 제작자를 새롭게 인정해 주었다는 데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 사무실에는 2001년 보관문화훈장과 2011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비롯, 국내외 영화제에서 받은 트로피나 상패가 가득하다. ⓒ인터뷰365
2015년 제2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한국영화제작자 공로상'을 수상한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사진 정중앙)/사진=동아수출공사

- 감독들이 인생의 동반자였다고 했는데 서운한 관계로 발전된 일은 없는지?

영화제작자(영화사)는 흥행을 목표로 상업성을 추구하는 게 속성이다. 의리나 명분보다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과 모함, 암투가 벌어지게 되니 그 사이를 오고가는 감독이나 배우들 중에는 제작자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는 사례도 많았다. 모처럼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만들고 이어서 후속 작품을 준비하던 감독, 또는 어렵게 데뷔 작품을 성공시킨 신인감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느닷없이 다른 영화사로 떠나면 서운할 수밖에 없다.

TV드라마 <모래시계>의 성공화제를 스크린에서 재현하기 위해 신작 연출을 약속했던 감독이 대기업 자본이 투자를 시작하던 초기에 약속을 백지화 하고 대기업 쪽으로 떠나 서운했던 그런 일들도 있었다. 결국 준비했던 송지나 작가의 <러브>를 같은 프로듀서 출신의 이장수 감독에게 맡겨 제작했다.

제작자로 도리를 벗어나지 않고 정도를 지킨다는 것이 참 힘들고 어려운 자리가 20개 영화사 시절의 영화사 대표 자리였다.

이어서가난 딛고 자수성가…일생을 영화에 바친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하)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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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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