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샐러리맨들의 고단한 일상 담은 연극 '뿔'...젊고 실험적 무대 돋보여
[리뷰] 샐러리맨들의 고단한 일상 담은 연극 '뿔'...젊고 실험적 무대 돋보여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6.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젊은 여성 작가와 연출가가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정소정 작, 손재린 연출 '뿔'
연극 뿔/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극 '뿔' 콘셉트 컷/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봄 작가, 가을 무대'라는 창작극 육성프로그램을 되살려 대학로 아르코소극장무대에 선보인 연극 '뿔'(6월 8~17일)은 디지털 연출 속에 아날로그 감성을 끌어낸 접근 방식과 표현 형식이 새로운 무대였다.

정소정 작·손재린 연출의 '뿔'은 잔혹극의 형식을 빌고 영상과 오브제(소품) 등을 활용해 젊고 실험적으로 무대를 형상화한 점이 특이했다.

특히 외형이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이 현실 속에서 겪는 폭력과 비애, 자존감의 상실과 타협 등을 감성적으로 흐르게 해 묘한 공감대를 조성했다. 

솔직히 70대 관객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 작품은 희곡과 연출 양면에서 좀 더 숙성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젊은 여성 작가의 희곡을 발굴하고 젊은 여성 연출가에게 형상화하도록 한 기획의도는 참신했고 관객의 호응도 얻었으나 의욕에 비해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일자리가 화두인 이 시대와 맞아 떨어졌고, 형식 또한 구태의연한 리얼리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또한 바람직했지만 실험성은 좀 강해보였다. 특히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했을 뿐 아니라 마무리도 미진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에 비해 배우들의 연기가 무르익어 관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배우 각자의 연기도 좋았지만 앙상블이 이루어져 작가와 연출의 의도가 잘 전달됐다. 이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젊은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냈다고 본다. 

이 무대에서 숫사슴의 뿔이 인간의 욕망 충족용으로 잘려나가고 그 마저도 소진돼 쓰러지는 설정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한 가족의 생계와 존립을 좌우하는 직장에서 겪는 샐러리맨들의 일상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데 이 작품은 한발 더 깊숙히 들어가 생체 실험실 같아 보였다. 여기서 개인은 치약처럼 다 쓰면 버려지는 일회용이자 사슴의 뿔처럼 인권이나 자존감마저도 잘려나간다. 

작가 정소영은 근무평가에 억눌려 잔혹한 꿈을 꾸지만 결국 현실에 타협하고 마는 현대인의 서글픈 자화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연출 손재린은 크고 작은 직장내 폭력과 저항의 몸부림을 소리와 이미지(사슴, 쇠톱, 망치 등)로 극대화, 관객에게 직접 체험을 안겨주려 했다. 다만 쇳소리 자체의 원색적 음향은 귀에 거슬리기도 했다. 상징성을 살린 영상 또한 극에 잘 녹아들지 않았다. 

연극 '뿔' 커튼콜 무대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배우들/사진=정중헌

이 작품의 주인공 김 과장 역을 맡은 이기돈은 지난해 국립 무대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좋은 배우로, 억압받는 샐러리맨의 캐릭터를 눈물겹게 연기해냈다. 커튼콜 때 그의 눈에 고인 눈물의 진정성이 전체적으로 좀 부족했던 무대를 상쇄해주었다.

가해자 이 부장역 이남희도 연기파로 정평이난 배우로 이 작품에서 난도가 높은 상황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농장주 대현 역의 김로사는 공포스러운 아우라를 잘 조성해냈고, 안 대리 역 안창현은 건조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박 차장 역 이선휘도 난해한 캐릭터였는데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좋은 원석을 발견하고 인재를 키우는 일 못지않게 완성품이 되도록 좀 더 숙성시키는 끈기가 필요함을 보여준 작품이었지만, 기(에너지)가 넘치는 무대를 보는 기분은 풋풋하고 새로웠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