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 현실에 되비춰낸 박근형의 연출의 '페스트'
[리뷰] 우리 현실에 되비춰낸 박근형의 연출의 '페스트'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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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알베르 카뮈 원작 무대화
박근형의 연출의 '페스트'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국립극단이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알베르 카뮈 원작의 '페스트'(5월 18일~6월 10일)은 연극적 재미를 얻기 보다는 무대를 통해서 최근의 우리 상황과 정치적 변화를 음미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로 읽기도 어려운 카뮈의 원작을 박근형이 직접 각색하고 연출하여 무대화한 '페스트'는 긴장하고 몰입하면서 작·연출의 해석과 의도를 읽어내지 못하면 딱딱하고 난해한 극이었다.

그런데 박근형은 카뮈의 '페스트'의 내용 전달에 그치지 않고 "오늘 우리 시대에 '페스트'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다.

'페스트'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페스트'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극 초반에는 철벽으로 닫힌 무대에 커튼으로 또다시 벽을 만든 의도가 와닿지 않았고, 배우들의 움직임과 대사를 따라 잡기도 벅차 자주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극 중반에 두 번째 철벽이 걷히면서 무대가 눈에 들어오고 연극이 읽히기 시작하더니 박근형 연출이 카뮈의 의식과 언어를 빌어 참으로 많은 메시지를 객석에 전하고 있다는 감이 잡혔다.

우리 시대에 '페스트'란 무엇일까? 조류독감일까? 메르스일까? 세월호일까? 그리고 저 장벽은 무엇일까? 남북의 DMZ일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벽일까? 저렇게 철조망을 치고 철벽을 쌓아도 페스트 균처럼 번지는 오늘의 매개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상상을 하며 연극을 따라가 보면 오늘의 시대가 까뮈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형이 이야기하려는 실체를 제대로 꿰뚫을 수는 없어도 우리가 사는 세상과 현실의 문제는 인위적 벽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누군가 이 역경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함을 무대에서 보여주었다. 그것이 인간애임을 그가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강조하려한 의도가 이해되었다.

박근형 연출은 그것을 '인간에 대한 연민과 시대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억압과 통제로 해결되지 않는 재난과 재앙과 이념조차도 결국은 묵묵히 자기 길 걸어가는 사람들도 조금씩 서광이 비치고 변화된다는 것을 '페스트'라는 연극으로 보여주었다.

'페스트'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바람이 많이 부는 어느 섬에 수 만 마리의 쥐가 떼죽음을 하며 순식간에 열병이 번진다. 지사(거버너)는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장벽을 쌓아 섬을 고립시키지만 죽음의 공포는 거세게 밀려든다. 이런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도피하고자 하고 어떤 이들은 저항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친다.

박근형은 카뮈가 실존주의로 묘사한 인간의 존재와 이유를 페스트가 만연한 섬에 던져진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냈다.

환자들이 밀려드는 사태에서도 의사들은 자신의 직분을 묵묵히 수행한다. 섬을 빠져나가려던 기자도 결국은 힘을 합쳐 현실을 타개하려는 대열에 합류한다. 판사의 아들마저 격렬하게 떨다가 죽고 만다.

'페스트'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의사 리유 역을 맡은 이찬우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작가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했다. 거버너 역의 강지은, 젊은 리유 역 임준식, 조제프 그랑 역의 김 한, 장 타루 역의 이원희, 기자 역의 박형준, 코타르 역의 김은우, 신부 역의 조영규 등이 자신이 맡은 역을 잘 소화해냈다.

20여명의 배우들을 쉴 새 없이 등퇴장 시켜 120분간 극을 전개시킨 박근형 연출의 힘이 느껴졌고, 거대한 서사를 육중하게 받쳐준 박상봉의 무대가 특히 돋보였다.

연출의 역량이 이 연극에 활력을 불어넣은 원동력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시의성이 이 연극의 가치라고 말하고 싶다. 쇠고기 파동, 메르스 사태, 세월호 등은 고비를 넘긴 듯하지만 언제 다시 우리에게 덮칠지 알 수가 없다.

지나간 재난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었을까? 그런 파고가 다시 인다면 이 연극과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인가? 또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은 사라졌지만 남북을 갈라놓은 철조망은 아직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려는 회담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시점에서 국립극단이 카뮈의 '페스트'를 올린 것은 시의적절 했다고 생각한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