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서울연극제] ②연극 '이혈'...연극으로 풀어낸 일제 만행 위안부의 상흔
[제39회 서울연극제] ②연극 '이혈'...연극으로 풀어낸 일제 만행 위안부의 상흔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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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집단 반의 '이혈' 리뷰
연극 '이혈-21세기 살인자'/사진=서울연극협회
연극 '이혈-21세기 살인자'/사진=서울연극협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연극은 대학로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제39회 서울연극제(Seoul Theater Festival)가 지난달 28일 개막해 5월 29일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1977년 대한민국연극제로 출범해 서울연극제, 서울공연예술축제(SPAF)로 개최되다가 2006년부터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서울의 대표적 연극축제로 발돋움했다.

올해 서울연극제(집행위원장 송형종, 예술감독 최용훈)는 10편의 공식 선정작(재공연, 번역극 포함)이 메인 무대에 올라 한국 현대 연극의 흐름과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관람 작에 대한 리뷰를 올려본다.


◆ 연극 '이혈-21세기 살인자' 

광복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일제 만행의 잔재들은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39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인 연극집단 반의 '이혈(21세기 살인자)'은 제대로 치유되지 못한 역사의 상처가 오늘의 괴물을 만들었다는 강렬한 주제를 수사극 형식으로 풀어내 관객의 흥미를 끌었다. 

6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관람한 '이혈'은 극작가 김민정의 희곡을 박장렬 연출로 무대에 올렸다. 극장에 들어서면 수사 상황판과 작업실을 배열한 만화풍의 디자인이 눈에 들어온다.

연극 '이혈-21세기 살인자'/사진=서울연극협회

초반엔 연쇄살인마를 쫒는 수사가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만화 작가 강준(원종철)의 자살 현장에서 김형사(박찬국), 서형사(윤이준), 여성 프로파일러(권기대)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만화 '이혈(異血)'에서 강준이 저지른 다섯 명의 연쇄살인과 부모 존속살인의 단서를 찾아낸다.

강준이 살해하고 혀를 자른 인물들의 공통점은 일본 식민 통치를 옹호하는 등 '친일(親日)'이었다. 그런데 이 단설마(斷舌魔)가 왜 부모까지 죽인 것일까?

중반부가 좀 지루했으나 후반부에 이 의문을 풀어내면서 회상 형식의 심각한 비극으로 무대가 바뀌었다. 작가는 주인공 강준이 왜 21세기 살인마,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을 일제만행 중에서도 치유되지 않은 뼈아픈 역사의 상흔인 '위안부'로 설정해 그 후유증을 추적해 나갔다.

연극 '이혈-21세기 살인자'/사진=연극집단 반

작가 김민정은 치욕의 역사를 만화적인 기법으로 그려내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젊은 세대들도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도록 유도했는데, 관객이 연일 만원을 이루는 것을 보면 그 전략이 맞아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연극집단 반을 이끌어온 박장렬 연출은 이념이나 직설적 메시지를 드러낸 이전의 작품과는 달리 다양한 형식과 기법으로 극적인 흥미를 살려냈고 완성도도 높였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작가와 연출의 궁합이 잘 맞았다. 이들이 만든 '이혈'은 소재 자체가 충격적이다.

영화와 연극으로 국내 소개된 와이디 무아와드의 '그을린 사랑'의 충격적 결말처럼 '이혈'은 다른 피의 섞이게 된 시대의 비극을 파헤치고 있다.

만화 작가 강준의 아버지 강한구(김준삼)는 어머니가 남긴 사진 한 장을 들고 일본군 장교였던 스즈키(신현종)를 찾아간다. 거시서 그는 어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복수의 일념으로 스즈키의 딸 히로코를 범한다. 그래서 태어난 강준은 괴물이 됐고, 극도의 반일 감정으로 5명을 연쇄 살인하고 다른 피를 섞게 한 아버지 어머니마저 살해하고 자살해 버린다.

이같은 역사적 아픔과 그로인한 어두운 현실을 무겁지 않고 흥미 있게 풀어낸 일등공신은 배우들이다.

강준 역의 원종철은 적역을 맡아 매끄러우면서도 절제된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역할의 성격상 조금 거칠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역사의 아픔을 온 몸으로 뿜어낸 눈물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연극 '이혈-21세기 살인자' 커튼콜 장면/사진=정중헌

강한구 역 김준삼은 또렷한 화술과 강렬한 연기로 시대의 괴물을 잉태하는 견인차 역할을 잘 해냈다.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자식을 자식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권남희 배우의 에이코 역할은 차가우면서도 연민을 불러 일으켰다. 김형사 역 박찬국, 서형사 역 윤이준, 프로파일러 역 권기대 세 배우의 앙상블도 좋았다.

객석에는 도쿄 타이니 앨리스 극장주인 니시무라 히로코 여사도 보였는데 일본인에게 이 연극은 어떻게 비쳤을까? 아직도 사죄 받지 못한 위안부 문제를 연극으로 풀어낸 시도는 의미가 컸으나 소녀상을 닮은듯한 결말 장면은 왠지 개운치 않은 건 나만의 느낌이길 바란다. 13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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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