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서울연극제] ①창작공동체 아르케의 '툇마루가 있는 집'
[제39회 서울연극제] ①창작공동체 아르케의 '툇마루가 있는 집'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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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절망스러웠지만 이제는 추억이 된 1970~8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
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 공연 장면/사진=아르케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연극은 대학로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제39회 서울연극제(Seoul Theater Festival)가 지난달 28일 개막해 5월 29일까지 대학로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1977년 대한민국연극제로 출범해 서울연극제, 서울공연예술축제(SPAF)로 개최되다가 2006년부터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서울의 대표적 연극축제로 발돋움했다.

올해 서울연극제(집행위원장 송형종, 예술감독 최용훈)는 10편의 공식 선정작(재공연, 번역극 포함)이 메인 무대에 올라 한국 현대 연극의 흐름과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관람 작에 대한 리뷰를 올려본다.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툇마루가 있는 집'

김승철 작·연출의 '툇마루가 있는 집'은 연출의 힘이 느껴지는 역작이었다. 시공을 초월하는 극작술로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잘 투영해낸 희곡이 탄탄했고,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를 통해 잔잔하지만 감동이 밀려오는 극적 무대로 승화시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6 창작산실 우수신작으로 뽑혀 2017년 공연되어 호평을 받아 이번에 선정된 대극장 공연이다.

연극을 많이 보는 편인데도 김승철 연출을 잘 모르고 이 작품도 처음 접하지만, 개인 취향인지 몰라도 이런 작품이 현대 한국연극의 한 방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도한 형식 파괴나 섣부른 실험이 아니라, 시대의 격랑 속에 상처 받으며 묵묵히 생존하는 민초들의 삶을 정공법으로 진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 컨셉 사진/사진=아르케

197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부터 80년대 신군부의 집권은 변두리 한 집안의 삶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50대의 작가는 30여 년 전의 현대사를 수직으로, 한 가정의 아픈 과거를 현실감 넘치게 재현해 내 70대 평자의 아린 상흔들을 헤집어 냈다.

연극이란 예술 장르가 특별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 교차 중첩되고 무대 위 배우가 투명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관약과 재현, 무궁한 상상력에 기인한다.

여기에 작가는 그 아픈 시절을 살던 구성원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실향민인 할머니의 억척스런 삶, 경쟁사회의 루저가 되어 술주정뱅이 장애로 사는 아버지, 그런 여건에서 큰 아들마저 가슴에 묻고 속이 새까맣게 타버린 어머니...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독버섯처럼 피어난 호스티스의 죽음과 몸수색 당하는 버스차장의 절규는 당시 공분을 일으킨 기억의 상흔들이 아닐 수 없다.

이 연극의 미덕은 세상이 왜 이렇게 버겁고 아픈지 절규하고 절망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런 쓰라린 과거와 생존이 오늘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따스한 시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툇마루가 있는 집 역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불과 30~4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손바닥 만 한 마당이 있는 한옥엔 문간방, 아랫방에 버거운 삶을 살아낸 타인들이 동거했다. 불편했지만 인정이 있었고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사진=아르케

이대연이 맡은 남자 역은 회상 장면을 지켜보는 유령의 존재면서도 망자와 대화하는 인간이 되어 예전의 시간 속을 여행한다는 점에서 매력 있는데다 담담한 연기로 공감을 더했다. 할머니 역 강애심의 실감 연기가 관객의 웃음과 눈물을 자극, 리얼리즘 연극의 재미를 고조시켰다. 월남해 행상으로 억척스레 살면서도 인정 넘치던 할머니는 주정뱅이 자식을 앞세운 후 치매로 생을 마감하는데, 강애심은 한 여성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표출해냈다.

시집살이 속에 세상 풍파를 모질게 겪어내는 이경성의 생활 연기도 극의 무게를 잘 받쳐 주었다. 전현태(아버지 역), 구선희 (정양댁), 진구 아역 등 공연 배우들 고루가 극중 인물들의 개성을 잘 표현해 냈다.

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 공연이 끝난 후 커튼콜 현장/사진=정중헌

다만 배우들의 연기 위치에 따라 대사의 전달력과 밀도가 떨어지는 점이 아쉬웠다. 영화의 플래시백처럼 시공을 넘나들며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도 좋았고, 무대 조명 음악 등 모든 요소들을 배우들의 연기로 집중시킨 연출력도 돋보였다.

흑백의 가족사진처럼 빛바랜 지난 세월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구차스럽지 않고 정감 있게 되살린 무대와 배우들의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연기가 어울린 '툇마루가 있는 집'은 보는 내내 꺼내든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게 했다. 5월 1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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