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시대, 책임의 외면이 불러온 비극...오페라 '리골레토'
잔인한 시대, 책임의 외면이 불러온 비극...오페라 '리골레토'
  • 주하영
  • 승인 201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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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 풍경] 장-피에르 폰넬의 1982년 필름 오페라 '리골레토'
필름 오페라 '리골레토'/사진=메가박스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즐거운 시대를 웃으며 산다면 희극이겠지만 잔인한 시대를 웃으며 살아야 하니, 그 시대는 영락없는 비극이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속 슬픈 광대 귀엔플랜은 그 어떤 아픔이나 분노, 고통도 드러내지 못한 채 늘 웃음과 조롱 속에 살아가야하는 광대의 삶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주세페 베르디의 '리골레토'의 주인공 역시 흉한 몰골로 태어나 조롱 속에 살며 권력자에게 빌붙어 웃음을 팔아야 하는 광대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렇게 노래한다.

"사람들이, 자연이 나를 추하게 만들었네! 원통하다, 불구에 못생기게 태어난 것이. 눈물조차 내겐 없네, 웃는 것밖엔 할 줄 모르니!"

'리골레토'는 베르디가 1832년 초연이후 상연금지 처분을 받았던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을 읽고, 그 주제와 인물상에 영감을 받아 오페라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베르디는 대본작가 피아베에게 보내는 편지에 '환락의 왕'의 주인공인 광대 '트리불레'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인물에 비견할 만한 창조물"이며, 그의 이야기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오랫동안 극장가에 길이 남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공연허가를 받아내야 한다"고 썼다.

연극 기호학자인 위베르스펠드의 표현을 빌자면, '환락의 왕'은 "당대의 도덕과 문학적 관례, 역사적 관습이라는 세 가지 층위에서 모두 '도발'로 읽힐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고, 결국 1851년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도 검열로 인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당대의 정치적 상황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권력자의 욕망과 성적인 문란, 여인들의 유괴와 납치, 청부 살인과 같은 자극적인 요소들이 불러올 논란이 우려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며, 유혹할 수 있는 모든 여인을 취하려던 왕과 그 권력에 기생하여 왕을 부추기고, 세 치 혀로 사람들을 조롱하던 꼽추 광대의 이야기는 딸을 잃은 아버지의 애끓는 ‘부성애’로 초점을 옮긴 오페라 '리골레토'를 통해 대성공을 이루었다.

필름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만토바 공작(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거짓된 사랑의 맹세와 유혹/사진=메가박스

메가박스 클래식 소사이어티는 유니텔 클래시카가 새롭게 마련한 2018년 '필름 오페라 기획전'의 두 번째 작품으로 1982년 장-피에르 폰넬 연출의 '리골레토'를 상영 중이다.

오페라에 영화적 촬영기법을 더해 제작된 '필름오페라'는 실황 오페라를 카메라로 촬영해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극장 관객들에게 무대의 현장감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를 활용하는 것과 연출가가 전달하고픈 오페라의 메시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의 촬영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목적을 갖기 때문이다.

실황 오페라 상영이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기 위한 '중계'의 성격을 갖춘 것이라면, 필름 오페라는 오페라를 카메라에 담아낸 연출의 시선과 관점이 담긴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필름 오페라의 경우, 카메라가 오페라 가수들을 겨냥하는 앵글과 숏, 렌즈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체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스토리나 인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몬테로네 백작의 저주에 두려움을 느끼는 리골레토(잉그바르 빅셀)
필름 오페라 '리골레토'장면. 몬테로네 백작의 저주에 두려움을 느끼는 리골레토(잉그바르 빅셀)/사진=메가박스

1982년 필름 오페라 '리골레토'의 연출을 맡은 장-피에르 폰넬은 1981년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통해 '미학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연출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은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이다.

폰넬은 1974년~1988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TV용으로 제작된 여러 편의 필름 오페라를 연출하였는데, 그의 작품들은 종종 논쟁을 불러왔다.

음악 평론가 마틴 베른하이머는 1985년 PBS에서 '위대한 공연 시리즈'로 방영된 '리골레토'에 대해, "폰넬은 그가 훌륭할 때 대담하고 독창적인 빛을 오페라에 부여하지만, 그가 형편없을 때 왜곡한다"고 혹평하였다.

그는 연극적 맥락을 강조하기 위해 폰넬이 택한 '지나친 그로테스크함'이 베르디의 유려한 음악과 모순되거나 압도해버리는 탓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남긴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폰넬의 '리골레토'는 만토바 궁정에서 벌어지는 파티 장면에서부터 관객들의 비위를 거스른다. 궁정은 그야말로 환락의 장소이며 주색잡기에 여념이 없는 아귀다툼의 소굴이다.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양 웃어대는 귀족들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접시 위로 쥐가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음식을 손으로 마구 집어먹으며 끊임없이 떠들고 토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역겹고 괴기하다.

게다가 자신의 군주인 공작에게 몬테로네의 딸을 끌어다주고 네 발로 엎드려 침대 역할을 자처하는 리골레토의 퇴폐적인 모습이나 자신의 딸이 농락당한 데 대해 울분을 터뜨리는 몬테로네 백작을 향해 조롱을 퍼부으며 그의 딸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방식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혐오'의 감정을 느끼도록 만든다.

복수를 만류하는 질다(에디타 그루베로바)와 리골레토
필름 오페라 '리골레토' 장면. 복수를 만류하는 질다(에디타 그루베로바)와 리골레토/사진=메가박스

흥미로운 사실은 폰넬이 '아버지의 고통을 비웃은' 리골레토를 저주하는 몬테로네 백작을 1인 2역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골레토 역을 연기하는 잉그바르 빅셀은 카메라 프레임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엄중한 신과 같은 몬테로네 백작과 공포의 그늘 속에 떨고 있는 광대 리골레토 사이를 오가며 '딸 가진 아버지'로서의 리골레토의 비극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한다.

결국 '굶주린 사자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뱀 같은 놈'에게 내려진 섬뜩한 저주의 실현은 공작을 위해 다른 여인들을 납치하는 악행을 마다하지 않고, 여인을 빼앗기 위해 그 남편의 목을 칠 것을 권하던 리골레토의 '지나친 농담'과 부도덕한 행위에 대한 양심의 처벌이자 응징이라 할 수 있다.

'혀로 사람을 죽이는 자'인 리골레토는 "네 운명은 네가 결정하였다. 너의 치명적 실수!"라 외치는 귀족들을 뒤로 한 채 도망치듯 궁을 빠져나온다.

리골레토는 권력을 가진 공작에게 복종하도록 태어난 자신이 거들먹거리는 귀족들을 조롱하고 비웃음에도 권력의 비호 아래에 있다는 이유로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낀다.

그는 기형으로 태어나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자신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조롱하고 비수를 꽂는 것쯤이야 나쁘다 할 수 없지 않느냐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불길한 공포를 떨쳐낼 수는 없다.

폰넬은 리골레토를 포함한 궁정 귀족들과 청부살인업자 스파라푸칠레, 그의 여동생 마달레나와 같은 인물들을 그로테스크하고 기형적으로 그리는 만큼 리골레토의 딸 질다를 맑고 순수하게 그려낸다.

하얀 드레스를 차려입고 금발의 머리를 흩날리며 여신인 양 등장하는 질다는 어린 아이처럼 순진하다. 여인을 향해서라면 무조건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사랑을 약속하는 만토바 공작은 그 어떤 도덕적 관념도 없이 그저 자유로운 성의 탐닉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가 부르는 유명한 칸초네 '여자의 마음'의 가사가 아이러니한 이유는 여자의 마음이 '바람 속에 흩날리는 깃털처럼' 가볍고 변덕스럽다 노래하지만, 실제로 변덕스럽고 가벼운 것은 공작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필름 오페라 '리골레토'장면. 궁정귀족들에게 납치되어 만토바 공작의 침실로 끌려온 질다/사진=메가박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딸이 자신을 혐오하던 궁정귀족들에 의해 납치되고, 자신이 악행을 도왔던 군주에 의해 농락당한 상황에서 리골레토가 느끼는 분노는 폭발적이다. 그는 침대를 두른 휘장을 모두 뜯어내고, 아버지에게 용서를 권하는 딸을 거칠게 밀어낸다. 리골레토는 복수와 응징을 위해 청부살인을 계획하지만 그의 계획은 오히려 질다를 희생시킬 뿐이다.

폰넬은 순수한 존재인 질다가 오로지 돈에 대한 욕심과 성적 욕구의 탐닉, 복수와 살인을 향한 욕망으로 점철된 세상 속에서 잔인하게 희생될 수밖에 없음을 상당히 폭력적인 장면으로 구현한다. 원래 남장한 여인으로 등장해 하룻밤 묵기를 청하는 부랑자로 인식되어야 할 질다는 관객들 앞에 비바람에 흠뻑 젖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초라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공작을 살리려는 마달레나는 그녀가 여인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 듯 스파라푸칠레의 칼을 향해 질다를 세게 밀어버린다.

관객들은 질다의 살해 장면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빠르게 진행될 뿐만 아니라 시체를 멍석에 말아 자루에 묶어 강물에 던지기 위해 리골레토의 배 안으로 옮겨지는 과정이 잔인하게 노출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필름 오페라 '리골레토'장면. 죠반나에게 딸 질다를 부탁하는 리골레토/사진=메가박스

공작과 귀족들이 몰래 들어올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주고 돈을 받아 챙기던 죠반나, 자신을 가난한 학생이라 속여 가며 거짓된 사랑을 맹세했던 공작, 젊고 잘생긴 바람둥이 남자를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일 것을 종용하는 마달레나, 돈만 받을 수 있다면 누구를 죽여도 상관없다는 스파라푸칠레,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딸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른 여인들이 농락당하는 현실을 조장하고 참여했던 리골레토...

이 모든 악(惡)들은 집 안에 갇혀 세상을 전혀 모르고 살아온 순수함의 상징인 질다를 무참하게 짓밟고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다.

폰넬의 그로테스크함은 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빅토르 위고는 죽기 전 자신의 유언장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신과 영혼, 책임감, 이 세 가지 사상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것이 진정한 종교다... 그리고 진리와 광명, 정의, 양심 그것이 바로 신이다!"

어쩌면 잔인한 시대를 웃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잔인한 시대임에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모든 악에 동참하며 자신의 책임을 가볍게 무시하고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 비극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자신의 딸, 아내, 누이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딸들을 보호할 수만 있었다면, 리골레토의 비극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지 않았을까? 2월 28일까지 메가박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