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평, 그리고 공감을 통한 구원…뮤지컬 '라흐마니노프'
혹평, 그리고 공감을 통한 구원…뮤지컬 '라흐마니노프'
  • 주하영
  • 승인 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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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사진=부천문화재단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공연장면. 이 작품은 천재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니콜라스 달 박사의 숨겨진 3년간의 시간에 상상력을 부여해 ‘좌절과 치유의 이야기‘를 풀어낸 창작 뮤지컬이다./사진=부천문화재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혹평에 상처입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때로는 폭력이 된다. 평가하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수행한 일이나 업무, 창작품이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혹평은 일의 수행자나 창작자를 향한 화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전문가라는 타이틀 아래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다른 이의 삶과 영혼이 담긴 산물을 평가하고 비판할 자격은 언제부터 부여된 것일까?

1897년 모스크바 음악원을 막 졸업한 젊은 피아니스트이자 천재 작곡가였던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증명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교향곡 제1번’의 대참패로 인해 엄청난 혹평에 휘말리게 된다.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내달리던 패기 넘치는 젊은 청년 라흐마니노프는 이 일로 인해 작곡에 대한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3년 동안 ‘신경쇠약’이라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나는 내 안에 있던 무언가가 부러져 버린 것을 느꼈다. 오랜 시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고민한 결과, 나는 작곡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감각이 마비된 것 같은 무력감과 내면을 파고드는 패배감. 인간의 내면을 갉아먹는 이 두 마리의 벌레는 라흐마니노프의 정신을 점점 더 파고들어 갔다.

좌절의 늪에 빠져 좀처럼 자신감을 회복하지 못하던 라흐마니노프에게 구원의 손길을 건넨 사람은 니콜라이 달 박사였다. 달 박사는 ‘자기암시 요법’을 통해 새로운 대작을 완성할 수 있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라흐마니노프에게 전달했고, 점차 자신감을 되찾은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에 매진하여 2년여의 노력 끝에 마침내 가장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사진=부천문화재단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공연장면/사진=부천문화재단

지난 11월 24~25일 부천문화재단은 ‘공감’을 주제로 한 ‘2017 낭만시즌 기획공연’의 네 번째 작품으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선보였다.

HJ컬쳐의 '라흐마니노프'는 천재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와 니콜라스 달 박사의 숨겨진 3년간의 시간에 상상력을 부여하여 ‘좌절과 치유의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풀어낸 창작 뮤지컬이다. 2016년 7월 초연된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극본상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곡·음악감독상과 연출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좌석점유율 96%‘라는 기록을 세운 작품으로 재공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제를 알 수 없는 비틀린 음악, 손가락을 망가뜨리는 음악”이라는 혹평은 라흐마니노프의 정신을 파고든다. 그는 외친다. “말, 말, 말. 듣고 싶지 않다는데 웬 놈의 말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그렇게 계속해대는 것도 ‘폭력’이예요.”

달 박사가 대답한다. “당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은데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마음의 소리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곡가와 마음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정신의학자라는 두 직업을 병치시키며, “써야만 해!”라는 강박에 시달리는 라흐마니노프와 “치료해야만 해!”라는 목표에 집착하는 달 박사의 고뇌를 평행선에 놓는다.

무언가를 해내야만 하는 사람과 무언가를 절실하게 하고픈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 자신이 성공했음을 입증하고 보여줘야만 하는 사람과 자신의 간절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느끼는 부담감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담감은 애초에 그 일을 하고자 했던 ‘목적’을 흐린다.

/사진=부천문화재단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공연장면/사진=부천문화재단

달 박사는 한계 끝까지 자신을 밀어붙여야만 하고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왜?’라는 질문을 했었는지 의문을 품는다.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나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왜 새 곡을 써야만 하는 거냐구요!”

라흐마니노프가 되묻는다. “당신은 왜 나를 치료해야만 하는 겁니까?”

유명해지고픈 의사와 성공을 증명하고픈 음악가. 결국 ‘왜?’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된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기 시작하고, 달 박사는 최면치료를 통해 라흐마니노프의 안타까운 과거 속에 있는 고통과 슬픔, 죄의식의 그림자와 직면토록 만든다.

낯선 땅에서 한껏 움츠러든 자신에게 고국의 향수를 불러와 위로가 되어주었던 감미로운 음악, 그 음악을 연주하던 천재 피아니스트를 바로 세우고픈 달 박사의 마음은 라흐마니노프를 움직인다. 재기에 성공한 라흐마니노프는 ‘글린카 상’을 수상한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을 달 박사에게 헌정한다. 라흐마니노프의 슬픔과 좌절, 몸부림의 선율은 관객들의 마음을 적시며 함께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도록 만든다.

1932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공연을 위해 뉴욕을 찾은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그것은 사랑이다! 음악은 시의 누이이고, 시의 어머니는 슬픔이다!”

/사진=부천문화재단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공연장면/사진=부천문화재단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인 부분은 ‘넓고 깊고 복잡한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듯 꾸며진 무대이다.

천장과 벽에 가득 붙어있는 날아다니는 악보들, 무대 양쪽으로 나뉘어진 달 박사와 라흐마니노프의 구별된 공간들, 라흐마니노프의 불행한 과거를 잠식하고 있는 술 취한 아버지에 의해 부서진 가구들, 죽음을 상징하는 커다란 묘비, 그리고 가혹한 스승 쯔베레프의 붉은 재킷과 가슴 아픈 누나 옐레나의 초상화까지... 무대는 한 인간의 내면의 깊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그 뒤로 연주되는 피아니스트와 현악 6중주의 음악은 마치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말’처럼 관객들의 마음에 울려 퍼진다.

새로운 시도에는 아쉬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21세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창의력’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길로 나아갈 문을 찾을 수 없다.

라흐마니노프의 말처럼, “새로운 종류의 음악은 분석하고 추론하고 계산하는 머리로부터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며, “마음으로부터 나와 오직 마음으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분명 음악으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사진=부천문화재단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속 재기에 성공한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의 악수 장면./사진=부천문화재단

라흐마니노프의 이야기는 다른 이의 평가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의 ‘말’이 사람의 마음을 춤추게도, 부서지게도 만든다.

가혹한 혹평에 둘러싸인 상처 입은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공감을 통한 이해와 따스한 도움의 손길, 지속적인 응원이 아닐까? 틀 안에 갇힌 사고가 아닌 넓은 사고와 조금 더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작품으로는 이미 2015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좋은 평가를 받은 ‘프렐류드‘가 있지만 언젠가 한국의 창작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세계무대에 소개되어 서로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슬며시 기대해 본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