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지난 8일 저녁 제37회 영평상 시상식이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시니어 회원인 나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열연한 시니어 배우 나문희에게 최우수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전달하며 짤막한 심사평을 했다.
처음엔 프로그램에 쓴대로 읽을까 했다. 거기엔 이렇게 썼다. "She can do it!!" 결코 연륜과 내공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진실한 연기의 힘을 보여준 배우. 우리의 아픈 역사이자 슬픈 자화상인 위안부를 시장 상인에서 미 의회 증언까지 온몸으로 도전해 이뤄낸 인간승리"라고.
그런데 난 다 접고 감성적으로 접근했다. 영평 재창립 52년, 영평상 37회 만에 가장 연륜이 깊은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드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TV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에서 시리도록 슬프고 아린 연기를 해낸 나문희가 이번엔 영화의 무덤 앞 어머니와의 대화, 미 의회에서 영어로 말문을 트면서 또한번 시리도록 슬프고 아린 연기를 해냈다고. 그게 영평상에 또 하나의 레전드를 만들었다고 마음으로 얘기했다.
영화평론가 김종원 선배는 전조명 촬영감독에게 공로영화인상을 수여했다. 영화기자를 하는 동안 전조명 감독은 무려 145편을 찍었다. <혈맥>, <저하늘에도 슬픔이>, <갯마을> 등 김수용 감독 옆에는 전조명 촬영이 있었다.
83세의 노 감독은 "자신은 행복한 영화인이었다"며 영화에서 평론의 힘을 새삼 평가해 주었다.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은 싸이런 픽처스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에 수여됐다.
김훈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사극이지만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강했다. 누아르나 사회 고발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묵직한 주제의식과 엄동설한을 견디며 더 추웠던 시간들을 담아낸 촬영, 빈 공간을 강조한 사카모도 류이치의 음악, 그리고 이병헌과 김윤석의 명연기는 아직도 기억에서 생생하다.
뒷풀이에서 내 지정석은 <불한당>으로 오랜만에 영평상 남우상을 받은 배우 설경구 앞이었다.
영화기자도 했고 영평상도 해왔지만 유독 설 배우와 말문을 튼 적이 없다. 도도했고 범접하기 어려워서였다. 그런데 <오아시스>이후 영평상을 받았다는 그는 좀 부드러워 보였고 기념사진을 찍을 때 V 자를 해보였다.
37년 영평상을 지켜봐왔지만 여러 난관을 헤쳐온 이번 시상식은 최고였다. 신세대 배우 서강준, 이선빈의 사회에 수상자들의 소감은 진솔하면서도 체험이 묻어나 모두를 숙연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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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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