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소년기부터 고전영화 발굴에 기여한 20세 청년 박지환
[인터뷰]소년기부터 고전영화 발굴에 기여한 20세 청년 박지환
  • 김두호
  • 승인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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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이 기여도 인정 감사패와 순금뱃지 전달/김두호
소년기부터 고전영화 발굴에 기여한 20세 청년 박지환/사진=인터뷰365
소년기부터 고전영화 발굴에 기여한 20세 청년 박지환/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놀라운 청년이 있다.

한국영화의 중흥기로 분류되는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연간 200편 이상의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불행하게도 영화 역사를 전해주는 귀중한 사료인 그 시대의 영화 필름이 일부만 남아 있고 많은 작품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종적 없이 소실된 필름을 찾아내는데 기여해온 청년이 1997년생 올해 스무 살짜리 무명의 영화마니아 박지환 군이다.

영화기자 출신의 평론가인 기자는 각종 영화관련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많은데 주로 원로 영화인들의 작품들을 공개하는 행사에 가면 빈번하게 만나는 젊은이가 박지환 군이다. 기라성 같은 영화감독, 촬영기사, 시나리오작가들이 그 젊은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사랑의 눈길이 가는 것을 보고 다소 늦었지만 인터뷰를 요청했다.

비로소 고전영화 발굴에 따른 성과와 집념을 접하면서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그의 지난 행적이 고전영화 발굴의 전문가 수준의 역량을 보였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온라인을 통해 홍콩과 영국, 미국 지역의 사이트를 추적, 국내에서 사라진 고전영화 150여 편을 발굴,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형식으로 확보 영상을 전달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중학생 박지환 소년에게 수여한 감사패
한국영상자료원이 중학생 박지환 소년에게 수여한 감사패

한국영상자료원은 2012년 당시 이병훈 원장이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북평중학교 3년생인 박지환 군을 자료원으로 초청해 "귀하는 우리 영상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모아온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 주셨으므로 우리 임직원들은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 고마운 뜻을 새겨드립니다. 2012년 12월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이병훈"의 내용의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어서 2년 후에는 일종의 훈장과 같은 순금뱃지에 영상자료원의 마크를 새겨 넣어 그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어린 학생이지만 ‘존경’의 표시를 할 만한 엄청난 공헌을 그렇게 조촐하게 전달했다.

신상옥 감독의 ‘평양폭격대’와 ‘전쟁과 인간’, 유현목 감독의 ‘한’, 김수용 감독의 ‘내사랑 에레나’ 등 주로 한국에서 홍콩으로 나간 필름의 온전한 영상물이 홍콩을 포함해 영국과 미국 등지의 사이트에 묻혀 있다가 집요한 그의 추적으로 발견, 발굴된 작품이 100여 편이 넘는다.

소년은 그 영상자료를 모두 한국영상자료원에 전달했다.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가 자매기관으로 1974년 한국영화필름보관소(현 한국영상자료원)를 설립해 제작된 필름의 보관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는 제작자가 스스로 보관하지 않은 필름은 모두 소실되거나 사라져 찾을 수가 없었다. 영화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인 고전 작품들이 대부분 필름이 없고 기록만 전해져와 2019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앞둔 한국영화계의 부끄럽고 아픈 부문이다.

(사진 왼쪽부터)고 신상옥 감독의 ‘평양폭격대(1971)'포스터, 고 유현목 감독의 '한(1967)'포스터, 김수용 감독의 ‘내사랑 에레나(1976)’스틸 컷
(사진 왼쪽부터)고 신상옥 감독의 ‘평양폭격대'(1971)포스터, 고 유현목 감독의 '한'(1967)스틸 컷, 김수용 감독의 '내사랑 에레나'(1976)스틸 컷

원로 감독들은 잃어버린 자신들의 작품 필름이 행여 어딘가에 묻혀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서 박지환 군에게 알게 모르게 과제를 안겨주기도 했다. 김수용·김기덕(최근에 타계)·정진우·설태호·변장호·강범구·최하원·이원세·이두용·고응호·유지형 영화감독을 비롯해 양영길·이석기·정광석·구중모·박성배 촬영감독들, 시나리오작가협회 문상훈 이사장 등이 모두 한국영화 황금기의 중심에서 활동한 어른들로 박지환 군의 재능을 인정해온 영화인들이다.

박지환 군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강원도 해안의 동해시에서 성장해 동해광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미루다가 입영통지서를 받아 10월 23일 군에 입대한다. 군복무를 앞둔 그를 인터뷰365가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아직도  청순한 소년티를 간직한 박지환 씨가  명보극장 현 명보아트홀 옥상에서 은막의 전설이 스며있는  영화의 거리 충무로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슴에 달고있는 뱃지도 한국영상자료원이 특별 주문 제작한 공로 매달이다. /사진=인터뷰365
아직도 청순한 소년티를 간직한 박지환 씨가 명보극장 현 명보아트홀 옥상에서 은막의 전설이 스며있는 영화의 거리 충무로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슴에 달고있는 뱃지도 한국영상자료원이 특별 주문 제작한 공로 매달이다. /사진=인터뷰365

-도대체 영화에 관심을 두게 된 때가 언제부터인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9살 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고 영화가 나의 눈에 환상의 세계로 들어왔다. 머릿속을 온통 공룡들이 차지했고 공룡이 살던 시대에 내가 살고 있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도 고고학자가 되어 드라마가 아닌 실제 공룡의 세상을 찾아내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로부터 공룡 장난감 수집이 취미가 됐다. 장난감 가게에 있는 공룡은 닥치는 대로 사 모았다.

-처음에는 영화보다 영화를 통해 마주친 드라마 속의 공룡 세계에 먼저 관심이 쏠렸다는 얘기인가?

그런 셈이다. 현실에 없는 공룡의 신비를 생각하면서 영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비디오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TV의 지난 영화 프로그램도 빠짐없이 시청하다가 밤을 새우는 날이 늘어갔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렇다. 지금까지 통 털어 수천 편은 봤을 거다. 하루 4, 5편씩 보다가 어떤 때는 날이 새면서 하루 종일 보고 또 밤을 새워가며 10편 쯤 볼 때도 있었다.

-공부는 언제하고? 다른 놀이도 있을 텐데.

우리 집이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에 있어서 놀이터란 게 없었다. 큰 나무에 올라가 놀거나 공사장이 놀이터였다. 그런데 동네에 어린이 문화센터라는 집이 하나 있어서 비디오 영화를 언제든지 볼 수 있었다.

-국내 영화와 영화 자료 수집이나 고전영화 찾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어제부터인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DVD 영화 테이프를 모으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400여 편을 모으기도 했다. 용돈을 여유 있게 마련할 수 없는 환경이라서 영상물 수집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중학교 때부터는 인터넷으로 찾고 만나 볼 수 있는 영화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해외 사이트를 뒤지고 추적하는 취미도 생겼다. 특히 유럽 영화를 찾아내 보는 재미가 나를 즐겁게 했다. 예를 들면 1969년 미개봉의 이탈리아 영화 ‘어느 날 밤의 만찬’도 감명 깊게 본 작품이다. 그러다가 홍콩과 미국, 영국 등지의 온라인 사이트에 떠돌아다니는 우리 작품을 발견하게 되었다.

-찾아낸 우리의 고전 영화는 몇 편이고 누구의 작품들인가?

우리 영화의 필름을 보관하는 한국영상자료원에 제대로 보존되어 있지 않은 작품만 150여 편 쯤 된다. 신상옥 감독의 ‘평양폭격대’ ‘전쟁과 인간’, 유현목 감독의 ‘한’, 김수용 감독의 ‘내사랑 에레나’, 장일호 감독의 ‘여수 대탈옥’을 비롯해 국내에서 DVD 영상물로 찾아낸 작품들도 많다.

예술원 회장을 역임한 김수용감독(사진 가운데)와 최근 별세한 '맨발의 청춘'의 김기덕 감독(맨 오른쪽)과 함께한  박지환 씨.
예술원 회장을 역임한 김수용감독(사진 가운데)와 최근 별세한 '맨발의 청춘'의 김기덕 감독(오른쪽)과 함께한 박지환 씨. 오른쪽 사진은 박지환 씨가 받은 김수용 감독의 격려 사인. '박지환! 잘 커서 영화의 일꾼 되어라!'를 작품 영상 테이프에 적어주었다.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감사패와 순금뱃지를 수여 받기도 했다는데.

영상자료원에서 감사패를 만들어 주고 2년 뒤 다시 순금으로 된 뱃지에 영상자료원의 마크를 새겨 가슴에 달아주었다. 지금 내가 달고 있는 뱃지가 이병훈 원장이 만들어 준 것이다.

-영화와 더불어 성장한 자신의 과거와 그런 환경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소개해 달라.

동해 시에 있는 송정초등학교, 북평 중과 동해 광희고교를 졸업했다. 가족은 강원대에 다니는 올해 19살 남동생이 하나 있다. 부모님은 오래전 헤어져 나는 외조부모님 댁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다. 어머니가 직장 일로 고생하시고 넉넉한 형편도 아닌데 영화에 빠져 사는 나 때문에 걱정도 많이 하셨다. 나는 내성적인 성격에 워낙 집념이 강해 어머니도 일찍 인정을 하시고 음양으로 도와주셨다.

-학업을 계속하지 않은 것은 가정형편 때문인가?

그런 면도 있지만 영화를 전공하고 싶은데 진학이 쉽지 않아 고교 졸업 후 서울을 오가며 영화인들을 만나는 일과를 계속해 왔다.

-어떤 분들을 만나고 있나?

얼마 전 별세하신 ‘맨발의 청춘’의 김기덕 감독님을 비롯해 김수용·정진우·변장호·최하원·설태호·이두용·고응호·이원세·전조명·이석기·정광석·구중모·박성배·문상훈·유지형 감독 등 오래전부터 만나는 분이 많다. 가끔 김수용 감독님 댁에 찾아가기도 한다. 만나면 용돈도 주시고 빨리 대학가라고 격려도 해주신다. 지금도 서울에서 변장호 감독님이 배려해주셔서 충무로에 있는 영화사 대종필름 사무실을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어제는 정진우 감독님, 이석기 감독님과 저녁식사 자리를 함께 했다.

원로 영화인들의 자리에 초정된 박지환 씨
(사진위)원로 영화인들의 자리에 초정된 박지환씨.
(사진 아래)이석기 감독(맨 오른쪽), 구중모 감독(오른쪽에서 세번째)과 함께 한 박지환씨

-영화감독을 지망한다는데 감독이 되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가?

나는 상업성 흥행영화보다 아트필름 쪽에 관심이 많다.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만든 미스터리 영화 ‘페르소나’, 미국의 SF영화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2000일 스페이스 오딧세이’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사실 나는 우리 영화나 미국 쪽 영화보다 유럽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를 많이 보다보면 상업성 영화보다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이 매력을 느끼게 한다. 주제가 강하고 만든 사람의 의식이 반영된 독특한 작품이 좋다. 유럽 영화는 프랑스 영화도 좋지만 이탈리아 영화를 더 좋아한다.

-자신을 더 소개하고 싶은 얘기는 없는가?

입영통지서를 받고 10월 23일 입대한다. 제대할 때까지 내가 좋아하고 나를 사랑해 주시는 감독님들이 모두 건강하시고 제대 후 기쁜 표정으로 다시 뵙게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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