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웃음 코드와 웃음이 지닌 '연대감'
[리뷰]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웃음 코드와 웃음이 지닌 '연대감'
  • 주하영
  • 승인 201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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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장면
사진=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연극 '늘근도둑이야기(연출 박정규)'의 공연장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이 작품은 부천문화재단 '2017 낭만시즌 기획공연' 첫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다.  

더 늘근 도둑과 덜 늘근 도둑이 노후 대책을 위한 마지막 한탕을 꿈꾸며 엄청난 부와 권위를 자랑하는 '그 분'의 미술관을 집으로 오인하고 잠입한다는 설정도 우습지만 무엇보다 두 배우의 열연과 입담, 그리고 유일하게 젊은 인물인 수사관의 허당스러움이 끝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백미로 작용한다.

덜 늘근 도둑은 말한다. "도둑이 웬 놈의 노후대책이냐고? 뭐 우리라고 늙어가는 여생을 막을 수가 있나. 당연히 '땀구멍이 입이 되도 할 말은 없겠지만' 딱 한 번! 마지막으로 거하게 한탕하고 손 씻을랑께!"

관객들은 교도소에서 출소한지 3일 밖에 되지 않은 단순절도 전과 18범과 사기 전과 12범이 '마지막 한탕'을 위해 또 다시 도둑질이라는 범죄를 저지르려는 찰나에 직면해 있다. 분명 상황은 올바르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두 늙은 도둑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같이 웃고 감탄하며 박수를 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웃는 것일까?

인간은 웃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모든 동물이 눈물을 흘리고 울 수 있지만 박장대소하며 웃을 수 있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웃음은 그렇게 가볍고 흔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게다가 웃음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히 즐거워서 웃기도 하지만, 긴장이 완화된 안도감으로 웃기도 하고, 풍자와 패러디 속에 숨은 우스꽝스러움을 발견하기 때문에 웃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급한 사람을 모방할 때 생겨나는 것이 웃음"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웃음에는 훨씬 더 복잡한 지적, 사회적 과정이 필요하다. 모르는 것을 향해 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웃음에는 '코드'가 있다. 웃음은 다른 사람이 그 속에 담겨있는 '웃음의 코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웃는 사람이 이미 사회적으로 이해에 도달한 사건 혹은 상황의 비틀린 지점을 인식하고, 공감과 동의의 표현으로 웃음을 방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늘근도둑이야기'는 시사 풍자 코미디극이다. 두 늙은 도둑과 젊은 수사관이 능청스럽게 뱉어내는 돌직구들과 부조리한 세상을 읽어내는 애드리브는 직접 대놓고는 말할 수 없었던 관객들의 속내를 은근슬쩍 드러내놓는다.

두 늙은 도둑의 끝없이 이어지는 만담은 관객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을 살짝 비틀어 풍자와 패러디라는 '가벼움'의 옷을 입는다.

웃음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마음을 내리누르는 무겁고 억압된 것들의 방출과 해소에 있다. 풍자와 패러디라는 '가벼움'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진실들은 관객들의 마음을 헤집거나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도 답답하게 내리누르던 납덩어리들을 들어내고 웃음을 통해 날려버리도록 만든다.

베르그송은 "웃음을 이해하는 것은 예술과 인생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실 속에 잘 드러나 보이지 않던 숨은 경향을 찾아내고 그것을 대담하게 확대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풍자'이고 표면으로 도출되지 않던 억압과 왜곡을 현실화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는 분명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 인생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늘근 도둑은 말한다. "인생이 뭐냐? 일장춘몽 운칠기삼이로구나! 좋은 시절 다 가고 한 숨만 느는구나!" 덜 늘근 도둑은 이렇게 답한다. "난 산다는 게 꿈이라면 좋겠우. 꿈이니까 잘못되면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는 그런 꿈이었으면 좋겠다구."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사진=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속에는 풍자의 웃음코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현대인의 바램, 잘못된 것들을 처음으로 되돌려 다시 바로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 그리고 헛되이 지나가 버린 삶에 대한 회환 또한 담겨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웃음의 미학적 요소는 개인이나 사회가 자신을 보존하는 일에 골몰하느라 삶의 뒷면에 숨겨진 진실들을 외면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확보된다. 웃음이 비로소 개인과 사회를 교정할 수 있는 공리적인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1989년에 초연된 '늘근도둑이야기'가 2017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재공연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재공연이 이루어 질 때마다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웃음 코드'를 잘 파악하여 현안을 반영하고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그것이 작품의 줄거리 전개나 결말보다는 배우들이 풀어놓는 대사와 애드리브에 상당히 의존하다보니 실질적으로 극을 보고 난 후 뚜렷하게 남겨지는 여운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현재 공유될 수 있는 현안들을 풍자함으로써 관객들과 '웃음'으로 소통하고 관객이 직접 연극에 참여하는 '열린 극'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무대와 객석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는 연극이 연극임을 인식하도록 만들고, 연극 속 즉흥 대사의 지적 코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 없는지 즉, 남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다.

웃음은 저절로 유발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소속된 집단과의 유대가 부족하거나 공통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르는 것을 향해 남들이 웃는다고 해서 그저 따라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조롱을 위주로 하던 풍자희극들이 아테네 시민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쳐왔던 이유는 웃음이 지닌 '유대감' 혹은 '연대감'에 기인한다. 사회 속에서 공유되는 개념에 대한 지적인 이해와 그에 대한 동감의 표현이 곧 웃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웃음의 코드'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연극 '늘근도둑이야기'를 통해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 웃을 일이 점점 줄어드는 현대인의 삶에 잠시나마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던 답답함을 가볍게 덜어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