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키’의 실존인물, 미국 역사상 가장 우아한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영화 ‘재키’의 실존인물, 미국 역사상 가장 우아한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 유이청
  • 승인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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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레이디 시절 재키룩을 유행시킨 재클린 케네디.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인터뷰365 유이청】영화 ‘재키’로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재클린 케네디(1929-1994)는 미국의 제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있었던 대통령으로 존 F. 케네디(1917-1963)를 꼽는데, 그 이면에는 재클린의 대중적 인기가 한몫을 했다.


재클린(애칭 재키)의 처녀 때 이름은 재클린 리 부비에로, 뉴욕 근교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바사 대학교와 조지 워싱턴 대학교, 프랑스의 파리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학업을 마친 후 워싱턴의 신문사에서 기자로 근무 당시 하원의원이던 존 F. 케네디를 만났다.


존 F. 케네디는 1952년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두 사람은 1953년 결혼했다. 결혼 후 남편의 정치 활동을 내조하던 재클린은 남편이 1960년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백악관의 안주인이자 퍼스트 레이디가 됐다.


대통령과 함께 대중 앞에 나선 재클린의 인기는 톱스타 못지않았다. 재클린이 입었던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수트들은 ‘재키룩’이라 칭해지며 세계의 여성들이 저마다 따라 입은 최고의 패션이 됐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까지도 헤어스타일과 스타일링에서 재키룩을 참고하고 그녀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

행복하던 시절 존 F. 케네디와 재클린(위), 영화 '재키'를 통해 그대로 재현된 당시 모습.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재클린은 패션 감각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 능력도 탁월했다. 성역처럼 느껴졌던 백악관을 TV를 통해 공개해 대중과의 친근감을 높였다. 뉴욕타임즈가 재클린은 “첫 인스타그램 퍼스트 레이디”라고 평할 정도다.


그런가하면 강인함도 보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는 “남편을 두고 대피하느니 아이들과 함게 기꺼이 백악관에서 죽음을 택하겠다”고 천명하면서 미국의 뉴 프론티어를 케네디와 함께 이끌었다.


당시 미국 국민들은 백악관 뜰에서 뛰노는 캐롤라인과 존,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 부부를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재클린은 섹시스타 마릴린 먼로와의 염문 등 남편의 끊임없는 바람기로 속을 끓이기도 했다.


1963년 댈러스에서 있었던 퍼레이드에서 존 F. 케네디는 오스왈드에 의해 암살당했다. 함께 차를 타고 있던 재클린 바로 옆에서. 이때 재클린이 외쳤던 “오, 노!”라는 단말마 비명은 한동안 전세계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이 암살당한 후 두 아이와 함께 백악관을 떠난 재클린은 그러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재클린이 자신보다 23세나 연상인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1906-1975)와 1968년 재혼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되자 온 미국이 들끓었다. 더군다나 당시 세계적인 가수 마리아 칼라스가 오나시스와 내연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파장은 더 컸다.


오나시스와의 결혼생활은 화려하기는 했지만 행복하지는 못했고 파파라치들이 늘 주위를 맴돌았다. 결국 오나시스와 이혼 절차를 밟던 중 1975년 오나시스가 사망했다. 이후 재클린은 뉴욕에서 출판 관계 일과 저술 활동 그리고 자선사업을 히며 일상을 이어갔다.


1994년 1월 재클린은 암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아 투병 생활을 하다가 5월19일 64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다.

케네디 대통령 피살 후 장례식에서 재클린과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에드워드(위), 비행기에서 대통령 선서를 하는 존슨 당시 부통령을 지켜보는 재클린(아래). 사진=그린나래미디어


재클린이 몸 담았던 케네디가는 미국 정치계의 로열 패밀리였지만 불운이 연속돼 ‘케네디가의 저주’라고 불릴 정도였다. 케네디가에는 두 번의 암살과 다섯 번의 사고사, 병사,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계속됐다.


케네디가의 9남매 중 장남 조지프 2세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중 공군 조종사로 복무하다 습격을 당해 전사했으며 둘째 존 F. 케네디는 암살당했다. 일곱째인 로버트는 1968년 법무장관과 뉴욕 주 상원의원을 거쳐 대선 경선까지 뛰어들었지만 로스앤젤레스 유세 도중 역시 암살당했다.


케네디가의 저주는 3세에서도 계속됐다. 존 F. 케네디와 재클린 사이에서 막내아들 패트릭 부비에 케네디가 1963년 8월 대통령 재직 중 조산아로 태어난 지 2일 만에 사망했다. 성장한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30대 시절이던 1999년 경비행기를 조종하다 추락해 아내 캐럴린 베셋과 함께 사망했다. 딸인 캐롤라인은 무사히 정치에 입성해 현재 주일본 미국대사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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