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밀정’ 송강호가 열창하는 경계선상의 아리아
[시네세이] ‘밀정’ 송강호가 열창하는 경계선상의 아리아
  • 김다인
  • 승인 20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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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밀정'을 함께 작업한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

【인터뷰365 김다인】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일단 기대감을 갖게 하는 배우 송강호와 이름에 구름 운(雲)자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전방위 영화를 만들어온 김지운 감독. 두 사람이 8년 만에 만나 완성한 영화가 ‘밀정’이다.


최근 들어 한국영화는 일제강점기를 세련되게 스스로 성찰하고 있다. ‘암살’이 그렇고 ‘덕혜옹주’도 그렇다.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지가 됐었다는 분노를, 침착하고 차분하게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 시기를 알지 못하는 젊은 관객들도 설득해가고 있다.


‘밀정’도 그 흐름을 이어간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3.1운동이 일어난 후 일제가 조선에 대해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던 과도기를 배경으로 의열단과 조선인 일본 경찰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했던 인물들이지만 극적인 장치들을 위해 새로운 이름을 가진다. 영화 초반에 등장해 독립심의 아드레날린을 활성화시켜주는 김장옥 열사(박희순)부터 의열단 단장 정채산(이병헌 특별출연), 리더 김우진(공유) 등이 모두 실존했던 인물들의 삶에서 큰 줄기를 따왔다.


밀정 노릇을 하는 이정출(송강호) 역시 황옥 경부라는 실존인물에 뿌리를 두었다고 한다. 1923년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사건 이후 의열단이 벌이려던 2차 폭탄 거사에 황옥 경부가 의열단과 함께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가 진짜 의열단 단원인지 아니면 일본 경찰이 의열단에 심은 밀정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그는 의문의 인물로 역사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 가라앉았던 인물이 이정출로 송강호를 통해 영화 화면 속으로 들어왔다.

일본 경찰이 밀정으로 믿는 척하는 이정출은 김우진을 만나 의열단 속으로 들어가고 상해에서 정채산도 만난다. 이 과정에서 밀당과 거래가 이뤄진다. 이는 총 대신 말과 눈빛으로 이어지며 일본 경찰 내에서 또 의열단과 이정출 사이에서 다층적으로 이뤄진다.


영화 언론시사가 끝난 후 김지운 감독은 “콜드 누아르를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말로는 이해가 잘 안가지만, 영화적으로 대입해 보면 몸으로 싸우는 대신 말로 간보고 눈치로 감을 잡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나가는 것이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이 밀당의 연속은 그래서 송강호라는 배우의 힘을 필요로 한다. 커다란 액션 대신 자잘한 에피소드로 긴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이 “인물이 어느 방향으로, 영화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좇아간 첫 번째 영화”라며 “그렇게 따라가는 데는 송강호의 역할이 컸다”라는 말이 솔직하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으로서 조금 더 디테일하게 상황을 만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일본 경찰 쪽으로 보면, 등장 분량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히가시(츠루미 신고)는 대세 장악력이 부족해 보이고, 이정출을 감시하는 또다른 일본 경찰 하시모토(엄태구)는 독특한 눈빛과 열불나는 따귀 세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캐릭터의 탄생을 알리지는 못했다.

의열단 단원은 출연자는 많으나 드라마에 세밀하게 녹아들어가지는 못했다. 송강호와 맞붙는 분량이 가장 많은 김우진 역의 공유도 다소 밋밋했고 연계순(한지민)과 조회령(신성록)은 개인적 히스토리가 깔려 있지 않아 돌출적으로 보였다. 이병헌의 첫 등장 장면은 너무 착해(?) 보여서 좀 놀랐지만 이후 장면에서는 조명의 도움을 받아 캐릭터에 녹아들어갔다.

촬영현장에서 송강호, 김지운 감독, 공유.


이 영화는 흑과 백만 얘기했던 우리 근대사에, 얘기되지 않았어도 분명히 존재했던 회색인 또는 경계인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새롭다. 그 경계인 또는 회색인은 황옥 경부처럼 존재증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역사 밑으로 가라앉았다.

뚜렷한 사실증명 없이 이들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은 아직도 척결되지 않은 친일세력에게 자칫 얼토당토않은 면죄부를 주는 쪽으로 비약될 수 있어 망설여졌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송강호라는 강력한 드라이브를 가진 배우가 필요했다. 회색이 검정과 흰색의 혼합이 아니라 그 나름의 색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13년작 ‘변호인’에 이어 ‘밀정’에서도 송강호는 할 일을 다 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송강호가 열창하는 ‘경계선상의 아리아’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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