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90년전 성전환수술을 받은 어느 화가의 실화 ‘대니쉬걸’
[시네세이] 90년전 성전환수술을 받은 어느 화가의 실화 ‘대니쉬걸’
  • 김다인
  • 승인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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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끝부분, 나란히 앉아있는 릴리 엘베와 게르다.

【인터뷰365 김다인】영화 ‘대니쉬 걸’은 1920년대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에이나르 베게너(1882-1931)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1920년대 덴마크에서 풍경화가로 이름을 떨치던 에이나르 베게너는 자신 안에 여성성이 내재해 있음을 확인하고 릴리 엘베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래서 1926년 누구도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는 성전환 수술을 받았고 이는 당시 대단한 스캔들이 된다. 베게너의 실화를 소설가 데이비드 에버쇼프가 ‘대니쉬 걸’이라는 소설로 완성했고, 영화는 이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 ‘대니쉬 걸’은 격정적이거나 요란하지 않다. 대신 차분하고 세심하다. 잔잔한 시골 풍경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에이나르가 자기 안에 내재돼 있던 여성성를 다시 발견하고 릴리 엘베로 재탄생하고자 하는 과정을 마치 하프 연주처럼 잔잔하게 풀어낸다.


아내 게르다의 발레리나 모델을 서면서 전율처럼 깨어난 에이나르 안의 여성성은 게르다와의 장난처럼 이어진 여자옷 입기를 거치면서 외형으로 드러난다. 6년간 함께 지내온 남편을 잃게 된 게르다는 그러나 에이나르가 릴리로 변하는 과정에서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보듬고 보살핀다.


영화는 에이나르와 게르다의 감정선 중심으로 진행되며 주변 친구들이 간간이 등장한다. 그러므로 특히 이 역을 맡은 두 배우가 중요한데, 에이나르 역의 에디 레드메인과 게르다 역의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복잡한 감정들을 세밀하게 연기해내며 극중 인물들과 동화된다.


특히 에디 레드메인은 끊임없는 노력과 관찰로 영화 속 에이나르에서 릴리로 변하는 과정을 연기해낸다. 여장을 했을 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에디 레드메인의 푸른 눈에 진짜 여성 같은 부드러움, 수줍음, 셀렘 등이 본능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여성적인 손놀림, 태도 등은 영화에서 보여지듯 학습에 의해 익혀진 이차적인 것이다.


에디 레드메인을 지난 2015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작 ‘사랑에 대한 모든 것’(2014)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 역으로 인상깊게 본 사람들이라면, 그보다 7년을 거슬러올라가 ‘세비지 그레이스’(2007)를 봐야 할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상류층의 추악한 단면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이 영화에서 에디 레드메인은 성정체성과 근친상간 등 혼돈에 매몰돼 있는 줄리안 무어의 아들 안토니 역을 놀랍게 해냈다. ‘대니쉬 걸’을 보며 가장 먼저 ‘세비지 그레이스’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게르다 역을 맡은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세상의 모든 성소수자가 원하는 ‘가족’을 연기한다.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할 때 누구보다도 먼저 이해하고 도와주고 믿어주는, 본인도 혼돈과 불안에 휩싸이면서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는 그런 가족 말이다.

에이나르 혹은 릴리는 에디 레드메인이 연기한다.


영화는 처음 등장했던 시골 풍경을 보여주면 마무리된다. 에이나르가 자신의 그림에 늘 그렸던 이 풍경은 그의 고향인 바일레다. 즉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 몸을 가졌지만 여자였다는 것을 은유하는 장면이다.


‘세계 최초 성전환 수술을 받은 화가’라는 데 주목한다면, 그래서 뭔가 드라마틱한 것을 기대한다면 영화는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킹스 스피치’로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했던 톰 후퍼 감독이 이 영화에서 중점을 둔 것은 ‘에이나르의 마음’이었다는 사실이 관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영화평론가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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