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정치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영조는 사도를 뒤주에 가둬 죽였을까?
[시네세이] 정치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영조는 사도를 뒤주에 가둬 죽였을까?
  • 김다인
  • 승인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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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대 와 가운데 가장 재위기간이 길었던 영조(송강호)와 그의 아들 사도(유아인), 그리고 손자 정조(소지섭).

【인터뷰365 김다인】영조-사도세자-정조에 이르는 조선 중기 왕가의 비극적인 기록은 셰익스피어가 창작해낸 4대 비극을 넘는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을 한여름 뒤주에 가둬 굶어 죽이겠는가. 여염집 아버지면 결코 하지 못했을 일을 영조는 했다. 그것은 그가 왕이기 때문이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영조가 아들 사도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하기까지 8일간의 기록을 다뤘다. 이미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여러번 다뤄졌지만, 감독은 영조와 사도가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에 바짝 초점을 맞춰 긴장을 극대화했다. 그리고 영조에 송강호라는 걸출한 배우를, 사도에 유아인이라는 팡팡 튀는 배우를 내세웠다.


사도가 영조를 치기 위해 칼을 들고 나서는 장면을 시작으로 영화는 영조가 사도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할 때까지 8일 동안,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지게 되기까지 과거의 일들이 나란히 편집되어 보여진다. 현재 나이든 영조의 얼굴에서 과거 젊은 시절 영조의 얼굴로, 현재 사도 얼굴에서 과거 어린 사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식으로 현재가 있게 된 과거를 보여준다. 8일 동안 계속되는 현재와 과거의 넘나듦은 번잡하지 않고 깔끔해서 영화보기를 방해하지 않는다.


사도는 아역 배우들이 어린 시절을 연기하지만 영조는 송강호의 분장과 목소리 변화로 시간을 넘나드는데, 특히 나이든 영조를 연기하는 송강호 목소리 변화가 좋다. 사도가 죽은 후 혼자서 9분에 걸친 독백을 하는 장면도 송강호답다. 이준익 감독의 표현을 빌면 “송강호라서 해낼 수 있는 돌직구 대사”들로 인해 논리를 뛰어넘는 진심을 보여줬다.


영화는 영조와 사도 외에도 그를 둘러싼 궁궐의 여자들, 대비부터 중전, 사도의 생모, 사도의 아내인 세자빈 그리고 뒤늦게 본 영조의 후궁까지 등장한다. 이들은 내명부로 얽히기보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영조와 사도의 관계에 일정한 지분을 행사한다.


영화 시사가 끝나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사도에 대한 사건 위주로 끌어가지만 영화 내내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가족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로 꽉 채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문은 있다. 영조와 사도의 관계를 과연 부자지간, 가족 내에서만 파악할 수 있는가이다.


영조는 숙종과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숙종의 왕위는 장희빈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경종이 물려받았고 심신이 허약했던 경종은 후사가 없어 동생인 영조(당시 연잉군)를 왕세제로 삼았다. 경종은 겨우 4년 동안 왕위에 머무르다 승하했고 영조가 그 뒤를 이어 21대 왕으로 즉위했다.


숙종-경종-영조로 이어지는 왕위 승계과정에서 벌떼처럼 달려든 것은 당시 노론과 소론이었다.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올랐으나, 경종을 지지했던 소론 측은 영조가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나아가 영조가 숙종의 아들이 아니라는 소문도 이어졌다.


영조는 왕위에 오르자 당파 정쟁을 없애기 위해 탕평책을 폈지만 본인의 권력기반인 노론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사도가 영조 대신 대리청정을 하는 동안 소론 쪽으로 기우는 느낌이 들자 영조와 사도 간에는 긴장감이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 .


결국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사건은 영조가 평생 떨치지 못한 출생과 왕위에 대한 콤플렉스에 당시의 당쟁이 가세되어 나타난 비극이라 볼 수 있다.


이같은 역사적 사건을 미리 알지 않고서는. 하나뿐인 왕좌를 놓고 세자도 적일 수 있는 왕과 세자라는 정치적 역학관계를 알지 않고는, 영화에서 영조는 자기 기분대로 아들에게 막 대하는 이상하고 노회한 아버지로만 비칠 수 있다. 신하들의 궁시렁거림으로 당시 당파간 싸움이나 그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왕과 사도세자의 정치적 입장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사도’는 그러나 최근 사극들이 퓨전으로 흐르거나 스타일리쉬한 데 정신을 파는 경향을 일축하고 묵직하게 정통사극으로 몰고 나가는 힘은 놓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정조의 등장부분이 다소 길고 너무 감성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 사도가 칼을 들고 영조 방 앞에 이르렀으나 방안에서 영조와 자신의 아들(훗날 정조)이 하는 말을 듣고 칼 쥔 손에 힘을 푸는 장면이 감독이 강조한 ‘가족적인’ 감성이 가장 많이 묻어난 장면이라 꼽고 싶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인터뷰365 편집국장, 영화평론가.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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