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 박찬욱감독 말 듣길 잘했다
[시네세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 박찬욱감독 말 듣길 잘했다
  • 김다인
  • 승인 201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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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안국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인터뷰365 김다인】뛰고 나는 액션 블록버스터들 가운데 ‘성실함’을 내세운 영화 한 편이 개봉 대기 중이다.

안국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성실한 나리의 앨리스’는 제작비 3억원으로 완성된 영화다. 관객 700만을 넘어선 영화 ‘암살’의 제작비가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의 4배인 180억원이라는 점과 비교할 때 60분의1의 비용을 들여 완성했으니 비교체험 극과 극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오포세대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비꼰 영화다. 현실을 이겨내려는 한 여자의 성실함이 의도치 않은 살인으로 이어지는 잔혹극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배우 이정현이 있다.


이정현은 영화 ‘꽃잎’(1996) 이후 근 20년 만에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극중 수남을 연기한다. 현실을 살아내려는 억척스러움이 차례로 실패하자 몽롱한 눈빛으로 변하는 그의 연기에서 ‘꽃잎’에서 인정받았던 기(氣) 서린 연기를 다시 본다.


이정현은 4일 열린 언론시사 이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에는 회사 측에서 이 시나리오를 거절했는데 박찬욱 감독이 권해서 다시 시나리오를 읽게 됐고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요즘 한국영화계에서는 드문 여자배우 원톱 주연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이정현은 박찬욱 감독 말을 듣길 잘했다. 그동안 가수로 더 부각됐던 이정현이 한국영화에 필요한 연기자라는 점을 새삼 알게 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졸업 후 직장전선에 바로 나가는 대신 ‘엘리트’의 길을 걷고자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자격증을 14개나 땄지만 컴퓨터에 밀려 작은 공장에서 일하던 수남은 성실한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한다. 결혼의 전제 조건은 집을 장만하자는 것이었고, 낮밤 가리지 않고 무수한 일을 한 끝에 작은 단독주택을 마련, 마침내 결혼을 한다. 행복의 시작으로 여겼던 결혼은 하지만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손에 쥐기는 어렵지만 한번 손을 펴면 바람처럼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 행복이다.


영화는 현실적으로 수남에게 닥친 일들을 비현실적인 방법들로 해결(?)해 나가며 리얼과 슬픈 코믹 사이를 오간다. 그 안에서 이정현은 ‘작은 금자씨’처럼 그러나 훨씬 현실적인 밀착감있게 수남 역을 소화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된 것에 대해 안국진 감독은 “TV프로그램 ‘생할의 달인’을 즐겨 보는데 그들이 마지막에 꼭 말하는 소원이 돈 벌어서 집 장만하고 이 일을 끝내는 것이라는 데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수남이 좀더 ‘현실적인 금자씨’가 된 것은 아마도 그 프로그램의 영향인 듯하다.

촬영현장에서 이정현과 안국진 감독(왼쪽), 4일 열린 언론시사에 참석한 이준혁, 이정현, 안 감독.


제작비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90분의 러닝타임도 결과적으로 적당했고, 상업영화 틀 안에서 스스로 영화적 가능성과 희망을 찾아내려는 감독의 노력도 약간의 아마추어적인 장면들을 포함한 채 신선하게 보인다.


재능기부 형식으로 출연했다는 명계남(해병인데 붙타 죽는다), 서영화(복어 독으로 죽는다)의 연기가 인상적이며 세탁소 사장 역을 맡은 이준혁(눈에 스티커가 꽂혀 죽는다)도 딱 필요한 만큼의 연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수남을 가운데 두고 두 형사가 벌이는 ‘아코디언 심문’이다. 가냘픈 몸의 수남을 가운데 두고 육중한 두 형사(지대한·배제기 연기, 단칼에 죽는다)가 한번은 차안에서 또 한번은 고시원 좁은 침대 위에서 옥죄며 살인사건에 대해 심문하는 장면인데, 심지어 리드미컬하기까지 해서 ‘아코디언 심문’이라 이름을 붙여 봤다. 물론 두 번째 심문에서는 ‘킬빌’처럼 칼날이 번뜩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글의 처음에서 밝혔듯이 이 영화는 3억원의 제작비로 완성됐다. 제작비가 모자라 아침을 줄 수 없어 스탭들 모두 아침을 먹고 모였다는 얘기, 그 말을 듣고 이정현이 노개런티 출연에 이어 아침기부까지 했다는 얘기에서 여전히 팍팍한 저예산영화의 현실을 본다.

누구나 다 볼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를 찾아서 보고 기억해두는 사람들이라면 13일 개봉하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시간을 투자해 봄직하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인터뷰365 편집국장, 영화평론가.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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