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아닌 가슴에게 말을 거는 배우, 양희경
눈이 아닌 가슴에게 말을 거는 배우, 양희경
  • 조현진
  • 승인 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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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움 속 진심, 그녀의 황금시대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 사진 김우성] 지금 양희경은 대학로에 있다. 그녀를 만난 날은 3월 6일 초연되는 창작극 <민자씨의 황금시대>의 연습이 한창일 때였다. 개인적 견해일지 모르지만 역시 양희경은 TV나 영화보다 무대에 서있을 때가 더욱 커 보이는 배우다. 85년의 <한씨연대기>가 그랬고, 95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모노드라마 <늙은 창녀의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늙은 창녀의 노래>의 원작자인 소설가 송기원씨는 그런 양희경을 향해 ‘나의 소설은 사랑의 가능성이었지만, 양희경씨의 연기는 그 가능성의 완성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양희경은 무대와 인생에서 한영덕의 여동생 영숙으로 (한씨연대기) 30대를, 목포 히빠리 골목의 늙은 창녀로 40대를 보내고 이제 50대의 얼굴인 ‘박민자 씨’가 되었다.



대학로 무대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난해에도 <늙은 창녀의 노래>로 무대에 섰었으니까. ‘새 무대’로 오랜만에 돌아온 것이다. 사실 <늙은 창녀의 노래>를 너무 오래했다. 95년 초연 할 때는 40대 초반의 창녀와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힘든 걸 몰랐는데 작년에 다시 해보니까 힘에 부치더라. 공연 내내 몸이 아프고. 그래서 극단 식구들에게 선언했다. ‘나 이제 늙은 창녀 안한다. 힘들어 못하겠다.’라고. 그랬더니 <민자씨의 황금시대>가 준비된 거다. 극중에서 내가 맡은 ‘박민자’의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그녀의 인생과 소란이 지금 내 나이에 대체로 공감이 간다.


하지만 <늙은 창녀의 노래>는 사실 양희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극 아닌가?

나는 그런 표현이 결코 좋지 않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95년 초연 했을 때 <늙은 창녀의 노래>는 대학로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그런데 그런 작품이 내가 10년 만에 다시 할 때까지 한 번도 무대에 올려 지지 않았었다. 나는 이런 부분에서 있어서 배우들에게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배우란 그것이 모노드라마 일지언정 무대와 공연에게는 하나의 퍼즐조각이고, 배우 개인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표출’하는 작업이다. 그럼 당연히 양희경과 다른 ‘늙은 창녀’가 보여 지는 것이 옳은 것이고, 배우라면 마땅히 도전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들 생각하지 않는다. 저건 박정자 꺼, 저건 윤석화 꺼, 저건 양희경 꺼 라고 말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음... ‘연기와 인생’이 다른 것이 아니다라는 정의로 들린다.

그렇다. 나는 한 번도 연기와 삶을 구분해 본적이 없다.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내 인생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흐른 것 같다. 어릴적 부터 언니(가수 양희은)와 집안에서, 마당에서 노래하고 연극하는 걸 놀이로 하면서 컸다. 그때는 식구들과 친구들이 관객이었는데 프로가 되자 그런 우리들의 놀이를 돈 내고 보는 관객으로 객석만 바뀐 셈이다. 그러니까 나한텐 연기와 인생이 다른게 아니라 연극 놀이하고 나면 배고프니까 밥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듯 그냥 내 인생이라는 시간표 속에한 부분인 것이다.



그러니 인기가 좀 있건 없건 큰 상관이 아니고, 이건 나만 할 수 있는 것이고 저건 저 친구 것이다고 하는 게 당연히 이해 안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난 ‘나는 양희은보다 노래를 못하고, 김혜자보다 연기를 못해.’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난 양희은보다 연기를 잘하고, 김혜자보단 노래를 잘해.’하고 사는 것이다. 내 인생이니까.


예전에 전영록씨와 인터뷰를 했는데 당신 젊었을 때 이야기를 하더라.

나랑 전영록은 동갑(54년생)이다. 20대 때 같이 노래 부르고 그랬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이야기다. 그때 양희경은 소위말로 ‘죽여줬다’라더군. 긴 생머리에 짤룩한 허리와 가죽바지를 입고 어깨에 무사처럼 기타를 매고 있는 모습이 엄청나게 섹시했었다라고. ‘지금은 상상 할 수 없지만’이란 말도 덧 붙이면서. 하하.

사실이다. 누구나 그렇게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으니까. 모든 엄마와 아줌마도 여자라니까. 여자였고, 여자이고. 앞으로도 여자고.


그럼 연기보다 노래를 먼저 시작했던 것인가?

내가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1기생(74학번) 이다. 그리고 이건 요즘들어 자부심이 된 건데 난 그 학교 초대 수석졸업생이다. 그래서 내 졸업장 번호가 ‘1번’이다. 그 후에 서울예술대학이 얼마나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하였는가? 지난번에 후배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데 내가 그런 배우가 다닌 학교의 선배이고 ‘1번 졸업생’이란 사실이 너무 뿌듯해지더라. 그렇게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했고, 졸업하고는 자연스럽게 미도파 백화점 뒤쪽에 ‘포시즌스’라는 곳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여기가 당시에는 최고 인기 가수들만이 설 수 있는 무대였다. 그러다가 KBS의 어린이 프로그램인 ‘모이자 노래하자’의 MC가 되었다. 그 후 결혼했고 첫 아이 낳고 81년에 오태석 선생님이 불러주셔서 연극무대에 데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둘째 아이 낳고 또 좀 쉬다가 <한씨연대기>하게 된거고...TV 나가게 된 거고.



아이들의 출생 중심으로 당신 작품 연보가 진행되는군.

이게 웃을 이야기가 아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양희경이라는 이름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니까 연기만큼 결혼, 자식이 다 중요한 거다. 즉 연기자입네 하면서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사는게 아니라 좀 부족하더라고 최선을 다해서 도전하며 아내, 엄마의 역할도 해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란 무대와의 약속인 것이다. 그래서 난 사실 ‘영화’나 ‘미니시리즈’처럼 프로젝트의 개념으로 돌아가는 작품보단 주말연속극, 일일연속극, 아침드라마 같이 정확하게 출퇴근 스케쥴이 나오는 작품을 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라면 아이들 밥해주고, 숙제도 봐줘야 하니까. 라디오 DJ도 마찬가지지. 그렇게 30년 가까이 살았다. 감사하게도 두 아들도 잘 커줬고 연기자로써 양희경도 많이들 알게 보시게 되었고.


방송, 영화, 노래, MC, DJ, 무대로 사실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쳤는데 자식들 중에도 특별히 애착이 가는 아이가 있듯 그 중에서 양희경이 가장 즐겁다라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글쎄. 우선 나는 그 일들을 다 ‘각각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방송과 영화, 연극은 아주 다른 개념이다. 영화는 컷트(cut)의 예술, 방송은 씬(scene)의 예술, 연극은 편집이 없는 ‘통짝 예술’아닌가? 물론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것은 동일하겠지만 그럼에도 배우에게는 각각 다른 각오와 준비가 필요한 거다. 그래서 난 그런 준비를 하고 일을 하는 것들이 늘 새롭고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재밌었던 걸 하나 고르라면 라디오 DJ다. 89년도부터 ‘가요응접실’이란 라디오 프로그램을 오래했는데 청취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 그런데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시대도 아니니까 양희경 얼굴을 아는 분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TV에 ‘오미희’씨와 한번 나갔는데 엽서가 쏟아져 오는데 딱 두 부류였다.


어떤?

오미희씨가 예쁘잖아. 그래서 날 오미희로 착각하는 청취자와 또 하나는 내 얼굴 보고 완전 배신감 느꼈다는 청취자.




양희경이라는 배우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소란(騷亂)’이다. 그녀가 나오는 모든 극에서 양희경은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를 안고 혼자 구석에서 끙끙대는 것이 아니라 소란스럽게 그 문제와 다투다가 결국은 시끄럽지만 그 문제를 경쾌하게 해결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러기에 어쩌면 이 ‘소란’이란 단어는 변화의 시대가 ‘여성’에게 준 ‘혼자 고민하지 말고 우울해하지 말고 터트려버려.’라는 새로운 명령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배우 양희경은 인생과 무대에서 그 여성을 연기하고 대변했다. 결국 그녀의 모습처럼 여성은 변화했고, 발언권을 가졌으며 주방은 가족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거북할 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써 변화가 없다는 질문을 하고 싶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나 개인적으로도 90년대 중반쯤 그런 질문과 씨름했었다. 김수현 작가의 <목욕탕집 남자들>에 출연하면서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그 작품 덕에‘양희경 = 소란스런 아줌마’ 라는 등식이 형성되었고. 그 이후 주어지는 배역마다 다 똑같은 거다. 그러니까 흥도 안 나고 지치기도 하고 그랬지. 그래서 내가 다시 충전이 필요하구나를 느꼈고, 그때 <늙은 창녀의 노래>를 만난거다.



그 작품을 하면서 나는 ‘관객과 새로운 경험’을 했다. 우선 놀라운 건 거의 100%가 여성관객이었다는 거다. 아무리 늙었다고 해도 ‘몸파는 창녀’인데 양희경라고 하니 남자들은 관심 없더라. 하하. 아이러니하지? 어쩌면 창녀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모든 여성의 ‘상징적 적군’인데 여성관객들이 늙은 창녀의 한탄과 소란을 보면서 같이 웃고, 울어주며 동감을 하더라는 것이다. 어떤 관객은 엄마와 고등학생 딸이 같이 울기도 하고. 그때 나는 ‘소란 속에도 진실이 있구나.’ 어쩌면 이게 정말 사람 사는 거고 인생이구나 하는 것을 그 무대에서 배웠다. 그러자 큰 숙제 하나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내가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늘 소란스러운 아줌마 역할만 해야하나에 문제를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란 속에 ‘나의 진심’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가가 진짜 고민이어야 하는 구나를 배운거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연기를 잘 해야 하는게 아니라 진짜를 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그게 있어야 배우고, 그게 있어야 소통이구나 하고. 그래서 배우로써 진짜 변화란 모습이나 캐릭터가 변화 하는게 아니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전달하는 인생의 깊이나 묵은 맛이 진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문현답이란 이럴때 써야 하는 표현이다. 멋지다. 양희경. 그래 이제 그녀가 연속적으로 이야기한 ‘인생과 무대’에 대한 의미가 이해된다. 또 그녀가 이야기한 어느 배우만의 삶은 있을지언정, 어느 배우만의 작품은 있는 것이 아니란 표현도 납득이 된다. <민자씨의 황금시대>에서 양희경은 ‘문제적 엄마’를 연기한다. 철 없던 시절 불장난으로 인해 낳은 딸을 팽개쳐버리고 ‘황금마차 캬바레’ 무대에서 청춘을 보낸 후, 힘없고 처진 어깨로 결코 환영하지 않는 20대의 딸의 집을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엄마가 바로 그녀다. 그리고 이 철없는 40대 후반의 엄마는 그 집에서 또 상상을 초월하는 사고(?)를 친다.


이 공연을 통해 우리의 눈은 이제껏 익숙하게 보아온 소란스러운 양희경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가슴은 조금 다를 것이다. 세대와 세대의 문제와 갈등 속에서 익숙하고 상식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딸과 위로하고 봉합하는 어머니 상’이 아니라 그 반대에 서있는 이 ‘박민자씨 모녀’를 보며 우리의 가슴은 ‘그럴 수도 있단다. 어쩌면 그런게 인생이란다.’라고 대꾸할 것이다. 눈을 변화시키는 연기가 아니라 마음을 변화시키는 연기자 양희경이 우리에게 그런 경험을 줄 것이다. 3월 6일. 대학로에서 그녀의 막이 오른다. (인터뷰 장소협찬 지베르니 02-747-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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