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스틸 앨리스’ 서서히 언어를 잃어가는, 어느 언어학자의 상실의 기록
[시네세이] ‘스틸 앨리스’ 서서히 언어를 잃어가는, 어느 언어학자의 상실의 기록
  • 김다인
  • 승인 201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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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앨리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앨리스의 연설 장면.

【인터뷰365 김다인】영화를 본 후 마음이 무겁기는 오랜만이다.


‘스틸 앨리스’ 언론시사회를 본 후 극장을 빠져 나오는 동안 생각이 많아졌다. 나이 오십, 컬럼비아 대학교의 유능한 언어학 교수이자 잘 키운 1남 2녀에 매력적이고 가정적인 남편을 둔, 하지만 때 이른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앨리스 때문이다.


영화는 앨리스의 생일 파티로부터 시작된다. 아들 큰딸과 사위, 남편까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들은 앨리스에게 “나이 마흔도 안돼 보인다”는 덕담을 한다. 그 말에 앨리스는 아름답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삐끗, 큰딸이 그 자리에 없는 동생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자신과 자신의 언니 이야기로 듣는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첫 증상이다.


이어 강의 도중 갑자기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이내 수습을 했지만 ‘어휘’라는 말 대신 ‘단어’라는 말을 썼음을 안다. 그리고 대학 내 조깅 후 갑자기 멍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앨리스는 “뇌가 죽어가는 느낌, 내 일부가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남편에게 절규한다.


앨리스는 가족력에 의한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내림받은 병이다. 이 병은 유전된다는 말에 큰딸 애나가 유전자 검사를 받고 양성임을 알린다.


이후 영화는 점점 사위어가는 앨리스 모습을 그린다. 대학도 그만둔 그의 팔목에는 ‘기억 상실’이라는 팔찌가 채워져 있다. 집안 화장실을 찾지 못해 옷에 그냥 실례를 하거나, 둘째딸 연극 공연을 본 후 마치 생면부지 배우에게 인사하듯 말을 건넨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다. 행여 잊을까, 프린트해 간 연설문을 한 줄 한 줄 형광펜으로 마크하며 “매일 상실의 기술을 배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다. “우스꽝스러워지는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병”이라는 말로 애써 자신과 청중들을 다독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가장 긴장되는 장면은 정신이 ‘상실되기 전’ 스스로 녹화해둔 앨리스의 메시지다. 조금 더 정신이 온전한 앨리스가 그렇지 못한 앨리스에게 남긴 메시지는 자살을 권한다. 하지만 앨리스는 그마저도 해내지 못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앨리스는 서서히 자신의 삶의 기록들을 상실해간다.


이 영화는 하바드대학 신경학 박사 출신인 작가 리사 제노바가 출간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신경학 박사 과정 중 80세 알츠하이머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그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고 할머니를 좀더 이해하기 위해 알츠하이머 환자와 가족들, 의사들을 인터뷰한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원작자 못지않게 스스로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만나 사전 공부를 한 줄리안 무어는 점차 자신을 상실해가는 앨리스 역을 품위있게 연기해냈다. 그동안 블록버스터보다는 소규모 독립영화들에서 더 빛을 발해온 연기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영화로 줄리안 무어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두 딸 역을 맡은 리사 보스위스,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줄리안 무어와 잘 어우러졌다.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아무리 알츠하이머에 걸려 자기 삶의 궤적과 시간을 잊었어도 여전히 살아갈 의미가 있다는 것이겠다. 큰딸이 100% 알츠하이머가 발병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도 쌍둥이를 낳는 것 이며, 마지막 장면에 작은딸이 읽어주는 글에서 앨리스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유추해내는 것 등에서 이같은 메시지는 강력하게 읽힌다. 하지만 만약 예전의 정상상태 앨리스였다면, 과연 자신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필라델피아’(1994)가 생각났다. 톰 행크스가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동성애로 에이즈에 걸린 변호사가 직장에서 해고당하자 자신의 일할 권리를 위해 법정투쟁을 벌이는 내용이다.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 불리며 환자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에이즈는 20년 후인 현재 신약 개발로 인해 사망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에이즈 약을 구하려는 환자 스스로의 모험을 그린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이라는 영화도 나오게 됐다.

'스틸 앨리스’ 역시 20년 후 아니 10년 내에, 알츠하이머병을 극복해내는 영화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인터뷰365 편집국장, 영화평론가.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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