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세이] 가족이라는 등짐 진 아버지, 부산 ‘국제시장’ 아버지와 히말라야 ‘학교가는’ 아버지
[시네세이] 가족이라는 등짐 진 아버지, 부산 ‘국제시장’ 아버지와 히말라야 ‘학교가는’ 아버지
  • 김다인
  • 승인 2014.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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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눈보라 휘날리는 흥남부두 아버지.

【인터뷰365 김다인】우선 노래 한 자락 흥얼거리자.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어머니 레퍼토리~’ 강산에가 부른 ‘라구요’ 2절이다.


이 노랫말에 나오는 ‘노래’란 이걸 뜻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울어봤다 찾아를 봤다//일가친척 없는 몸이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1953년 발표된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랫말이다.


영화 ‘국제시장’은 이 노랫말에서 시작된다, 단, 어머니보다는 아버지가 부르는 ‘바람찬 흥남부두’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기세좋게 북쪽까지 밀고 올라갔던 국군과 연합군은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대대적인 철수를 하게 된다. ‘국제시장’ 덕구네 가족도 흥남 철수의 10만 군중 속에 떠밀려 미군 배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덕수가 업고 오던 여동생을 잃자 아버지는 여동생을 찾아 다시 배에서 내린다. 그때 아버지는 덕수에게 엄마와 두 동생을 부탁한다. 그 순간부터 장남 덕수는 가족이라는 등짐을 온전히 도맡아 지게 된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장사하는 고모를 찾아 겨우 둥지를 틀게 된 덕수네 가족은 먹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엄마는 삯바느질, 덕수는 구두닦이를 하며 근근 연명 하는 사이, 어느덧 동생들도 훌쩍 자란다. 공부를 너무 잘해서 탈인 남동생이 서울대를 가는 바람에 등록금 마련을 위해 덕수는 독일 광부로 간다. 갱 안에 매몰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돈벌이차 독일로 와 시체 닦는 일을 하는 간호사를 사랑하는 행운도 얻는다. 귀국한 덕수는 결혼도 하고 가족도 꾸미지만, 고모가 하던 가게를 인수하기 위해 다시 베트남으로 돈을 벌러 간다. 거기서 폭발사고를 당해 다리 한쪽을 절게 된다.


어느덧 1980년대에 접어들어 덕수는 KBS에서 대대적으로 진행된 이산가족찾기를 통해 흥남부두에서 잃었던 여동생, 미국으로 입양돼 살고 있는 여동생을 찾는다.

그러저러 살다보니 아버지의 나이를 훨씬 넘긴 덕수는 비로소 아버지로부터 흥남부두에서 물려받은 등짐에서 자유로워진다.

이 영화 시사회 때 같은 줄에 앉은 한 남자(언론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시사였으니 일반 관객은 아닌 듯)가 오열을 했다. 울음소리가 커진 대목은 이산가족찾기 부분이었다. 가슴에 무슨 멍이 들어있는지 그 남자는 꺼이꺼이 아주 목놓아 울었다. 언론시사 때라도 매우 슬픈 영화에는 기자들도 숨죽여 눈물을 닦는 경우가 있지만, 이처럼 대놓고 우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국제시장’ 아버지세대에 대한 깊은 슬픔이 있던 모양이다.


‘국제시장’은 그런 영화이다. 부모세대 혹은 조부모세대가 어떻게 힘든 세월을 견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했나를 보게 하는 영화다. 한 사람에게 한국 현대사의 마디마디를 거의 겪게 하다보니 베트남 부분에서는 다소 피로도가 몰리기도 하지만, 징한 세월을 견딘 우리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어깨를 다시 한번 보게 한다.

'학교가는 길' 아이 업고 얼음강을 건너는 히말라야 아버지.

다시 노래 한 자락을 부르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단 써놓고 보자. ‘어라 야 어허 라아 허 어라고 허어 아아~’ 노래가 아니라 높은 톤의 흥얼거림, 양방언의 곡 ‘난창강아’이다.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주제곡으로 쓰였다.


‘차마고도’ 촬영팀이 찍은 히말라야 다큐멘터리 ‘학교가는 길’은 실제로 아이를 업고 등짐을 지고 200㎞를 가는 히말라야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지방의 산간 오지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아무나 학교에 갈 수 없다. 가난 때문에, 후원자에게 선택된 아이들만이 학교에 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중이 되거나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아이들이 학교가 있는 도시까지 가기 위해서는 얼어붙은 잔스카르 강을 따라 200㎞를 걸어야 한다. 스스로 학비를 마련하지 못하고 후원자에 의지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게 된 아버지들은 당연히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 년에 단 한 번 열리는 얼음길 차다(chaddar: 얼음담요)를 건너 도시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용품들을 등짐으로 지고 때로는 그 위에 아이까지 얹어 영하 20도에 가까운 날씨에 20일 동안 빙벽을 타고 살얼음 언 강을 건넌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추워도 그만둘 수 없는 길이다. 이들에게는 변변한 방한용구도 없다. 촬영팀은 그나마 안전장비와 아이젠 등을 착용했지만 이들은 장화를 신고 산을 오르고 얼음길을 지난다. 너무 추워 텐트도 치지 못하고 바닥에 갈고 덮은 채로 비박을 한다.


그 가운데는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한 소년을 데려가는 것은 73세의 할아버지이다. 얼음길에 미끄러지고 팬티 바람으로 얼음물에 들어가는 할아버지는 “너무 힘들다, 하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주름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희망과 꿈이 없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세대는 다르고 시공간은 달라도 어느 곳에선가 덕수들을 등에 지고 가는 아버지들이 있고 덕수들은 그 덕에 자라 다시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나 덕수세대가 바라는 것은 다음 세대에는 자신 같은 험한 일을 겪지 않기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이참에 아버지 얼굴 다시 한번 보자.

김다인 interview365@naver.com
인터뷰365 편집국장, 영화평론가.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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