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처럼 살다 간 작가,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
‘아바타’처럼 살다 간 작가,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
  • 유이청
  • 승인 20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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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름으로 활동했던 프랑스의 전설적인 작가

탄생 100주년을 맞은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 사진='솔로몬왕의 고뇌' 표지사진

【인터뷰365 유이청】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읽어봤는지, 또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읽었는지. 앍지 않았어도 책 이름만은 익히 알고 있을 유명 작가의 대표작들이다.


이 두 작가가 실은 같은 사람이다. 로맹 가리로 활동하다가 나이가 들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자, 에밀 아자르라는 다른 이름으로 작품을 내놓았고 신예 천재작가의 탄생이라는 환호를 받았다.


사후에야 비로소 두 작가가 같은 인물이라는 비밀을 알게 된, 프랑스 현대문학계의 거장 로맹 가리(Romain Gary 1914-1980)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로맹 가리는 러시아 태생 유태계 프랑스 작가 겸 영화감독 겸 외교관이다. 에밀 아자르(Emile Ajar)라는 필명으로도 많은 작품을 썼고 프랑스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공쿠르상을 2번(1956, 1975) 수상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2차대전 때는 공군 대위로 참전해 드골 당시 장군으로부터 레지옹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1935년 단편 ‘폭풍우’로 등단했으며 2차대전 중에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첫 장편소설 ‘유럽의 교육’(1945)로 프랑스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로맹 가리는 작가로 활동하는 한편 프랑스 외교관으로 불가리아, 스위스, 페루, 볼리비아 등지에 체류했다. 당시 집필한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이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면서 영화 쪽에도 참여하게 된 로맹 가리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멋대로 해라’ 주인공인 진 세버그를 알게 되고 이후 부인인 레슬리 블랜치와 이혼, 진 세버그와 재혼했다.(진 세버그는 로맹 가리와 8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고 이후 1979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로맹 가리 이름으로 낸 베스트셀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에밀 아자르 이름으로 낸 베스트 셀러 '자기 앞의 생'.


1962년에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발표, 미국에서 최우수단편상을 받았다. 로맹 가리는 이 작품을 영화화했는데, 자신이 각본 연출을 맡고 진 세버그를 주인공으로 했으나 지나치게 외설적인 내용이라는 이유로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후 ‘지상 최대의 작전’(1962) 각본을 쓰고 로메인 게리라는 이름으로 ‘킬 킬 킬’(1972) 각본과 감독을 했지만 신통치 않았다.


영화활동도 잘되지 않고 작품활동도 지지부진해져 세상으로부터 잊혀질 즈음,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장편 ‘그로칼랭’을 발표해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60세였던 1974년의 일이다. 이어 1975년 다시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소설 ‘자기 앞의 생’을 내놓아 그해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그는 로맹 가리로 한번, 에밀 아자르로 또 한번 공쿠르상을 받게 됐다. 공쿠르상은 한 작가에게 평생 한번밖에 수여되지 않는 상인데, 당시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라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던 것이다.


로맹 가리는 이후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관록의 작가 로맹 가리, 신예 천재작가 에밀 아자르 두 개의 이름으로 집필활동으로 계속했다.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가면의 생’(1976) ‘솔로몬왕의 고뇌’(1979) 등 두 편을 더 발표해 천재작가라는 갈채를 받았으나,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작품들은 평단의 혹평을 면치 못했다.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가 사망한 이듬해인 1980년 마지막 작품 ‘연’을 내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로맹 가리 작품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결국 로맹 가리는 같은해 12월 2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유서 ‘결전의 날’, 그리고 사후 1년 뒤에 발표된 로맹 가리의 유고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세상은 비로소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에밀 아자르 이름으로 낸 네번째 작품 '솔로몬왕의 고뇌',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발간된 '밤은 고요하리라'.

로맹 가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도 그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자전적 유작 '밤은 고요하리라‘(마음산책 펴냄)'가 번역 출간됐고, 오는 26일 서울 주한 프랑스문화원에서는 인기작가들이 참여하는 작품 낭독회 행사가 열린다.


하나의 이름으로 부딪히게 된 세상의 편견과 차별에 대해 또다른 이름으로 그것을 깨부순 로맹 가리 또는 에밀 아자르. 인간계에서는 장애라는 편견에 한정돼 있던 주인공이 판도라의 나비족 일원이 되어서는 새로운 영웅으로 환호받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는 일생이다.

유이청 기자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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