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살이 시름 달래며 노래하는 '수락산 나훈아' 김성기
인생살이 시름 달래며 노래하는 '수락산 나훈아' 김성기
  • 김두호
  • 승인 2014.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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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음성도 닮은 제2의 너훈아
'나후나' 김성기.

【인터뷰365 김두호】나훈아를 닮은 외모에 노래까지 나훈아 노래를 부르며 일생을 보내다가 2014년 1월 52세로 세상을 떠나 한동안 화제에 올랐던 모창 가수가 너훈아(본명 김갑순)였다. 얼굴도 나훈아를 닮고 목소리도 나훈아를 닮았고 그리고 나훈아의 발표 노래를 주로 부르며 사는 또 다른 제2의 너훈아가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수락산 나훈아’로 알려진 예명 나후나의 김성기(62) 씨.

서울 노원구 수락산 중턱의 쉼터마당에서 10년이 넘도록 등산객을 모아놓고 나훈아의 노래를 불러 ‘수락산 나훈아’로 소문이 난 나후나 김성기 씨는 1947년생인 진짜 나훈아보다 5살 연하인데 키는 작지만 얼굴 인상은 실제 조금 젊을 때의 나훈아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그도 나훈아를 알지 못하던 시절부터 가수를 지망해 노래공부도 하고 노래자랑 경연에서 인정도 받았지만 가수보다 기술자가 장래성이 있다는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기술자로 살다가 뒤늦게 ‘수락산 나훈아’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성기 씨는 현재 남진의 모창가수인 남진하 씨가 조직한 ‘남진하예술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최근 서울 중구 명보실버극장의 ‘남진하예술단’의 공연무대에서 <고향역> <울긴 왜 울어> 등 나훈아의 히트가요를 오리지널 나훈아 부럽지 않게 잘 불러 객석의 박수갈채를 받은 김성기 씨를 무대에서 내려오는 길로 인터뷰했다.

관중석의 한 분이 당신을 ‘수락산 나훈아’로 소개했다. 수락산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수락산은 서울 노원구 쪽과 의정부 쪽으로 양갈래 오르는 길이 있다. 나는 2002년부터 매일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2시간 동안 노원구 쪽 수락산 중턱에 있는 쉼터 마당에서 나훈아 선배 노래를 불렀다. 수락산을 찾은 분들은 나를 다 알아본다. 언젠가는 TV프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출연해서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도 닮았다고들 한다.

고인이 된 너훈아 가수도 얼굴이 나훈아 가수를 닮았다. ‘나후나’가 되어 나훈아 노래를 부르며 음악활동을 하게 된 것도 너훈아 가수와 같은 처지 같다.
내가 노래를 좋아한 것은 타고난 소질 때문이지 나훈아 선배 때문이 아니다. 가수가 되려고 작곡가 사무실을 찾은 것은 20대부터인데 나훈아 선배가 가수로 알려지기도 전이다. 나도 나훈아 노래 작곡가인 오아시스 레코드 소속의 진남성 씨가 부산에서 작곡사무실을 운영할 때 찾아가 한동안 노래 지도를 받았다. 여러 곳의 노래자랑 경연에서 1등도 해서 부모님에게 자랑도 하고 재능도 인정을 받았다.

진작 가수가 안 된 이유는.
나는 일찍 도금 공장에서 도금과 연마분야 기술을 배웠다. 부모님 고향은 원래 서울이지만 나는 20대 시절 부산에서 일하다가 부모님이 사시는 대전에서 젊은 시절 기술자로 일하며 보냈다. 그때만 해도 허황된 생활을 한다는 연예인들 보다 안정된 직업인 기술자로 사는 것을 더 좋게 생각했다. 부모님도 그렇게 권했다.

어쩌다 뒤늦게 노래를 시작했는가.

2002년도에 아내와 이혼을 했다. 그해 또 아버님까지 별세하시는 괴로움이 연달아 이어졌다. 아버지는 전투경찰로 공비토벌에 공을 세운 국가유공자였다. 큰 일을 당하면서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그 시름을 잊으려고 살고 있는 동네(서울 방학동)와 가까운 수락산을 오르내리다가 평소 즐겨 부르던 나훈아 선배 노래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부르기 시작했다. <고향역> <울긴 왜 울어> <고장 난 벽시계> <잡초> <무시로> <물레방아 도는데> <님 그리워> <녹슬은 기찻길> 등 내 노래를 듣고 모두 즐거워하고 고마워하는 것을 보고 점점 더 노래 부르기 활동에 깊이 빠져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노래가 내 인생이 됐다. 이왕 나훈아 선배와 닮은 것이 많다고 인정을 받았으니 모든 것을 닮으려 했다. 이름도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나후나로 바꾸고 노래 기교도 나훈아 선배 솜씨를 제대로 살려내야 한다는 데 목표를 둘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도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유료 공연도 하는가.
산에서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무반주에 육성이었다. 나중에 기타를 들고 공연을 함께 하는 분들이 합류해 제대로 노래를 부르게 됐다. 내 노래를 손뼉을 치며 즐겁게 듣고 난 분들이 돈을 모아주기도 했지만 난 절대로 산에서는 받지 않았다. 내가 좋아서 나도 듣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노래를 부르는데 돈을 받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리 관절이 좋지 않고 신장 등 다른 데도 이상이 나타나 수락산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남진 씨 모창가수 남진하 씨와 예술단을 만들어 시내 공연장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단원이 20여명 쯤 된다.

남진하 모창가수는 어떤 분인지.
나처럼 이미테이션 가수지만 신곡 음반도 발표한 프로수준의 가수다.

타계한 너훈아 모창가수를 잘 아는가.
서로 교분을 나누거나 함께 노래를 불러 본적이 없지만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얘기도 알고 있다. 그 분은 모창분야에서 워낙 오래전부터 이름이 알려져 성공한 인물같이 생각된다.

나훈아 가수와 한 무대 서 보는 것이 꿈일 수 있겠다.
가능하다면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 짝퉁 가수의 길을 들어서면서 겪은 일화 중 잊을 수 없는 얘기를 모두 들려 달라.
수락산에서는 내가 톱스타로 사랑을 받는다. 손뼉을 치고 앵콜을 외치며 수락산에서 내 노래를 즐겨 듣던 노원구 주민들이 모두 내 새로운 인생에 용기와 에너지를 준 분들이다. 노래와 상관없이 또 살다보면 나에게 잘해준 사람들이 자주 생각날 때가 많다. 부산과 대전에서 기술자로 공장 일을 할 때 인간적으로 물심양면에서 잘 대해준 사장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83세 노모를 모시고 단 두 식구가 방학동에서 살고 있다. 수입이 신통치 않아 넉넉하게 모시고 살지는 못하지만 큰 돈이 필요 없어서 아직은 걱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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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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