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유이청】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다. 가끔은 그 많은 단어로 그 많은 표현을 한다 해서 쓰는 이의 속내가 그대로 읽은 이들에게 전달될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일필휘지, 붓 하나 휘둘러 그대로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고 싶을 때도 있다.
유명 작가들도 그런 마음이 있었나 보다. 요한 볼프강 괴테, 헤르만 헤세, 귄터 그라스 등 이름만 들어도 존경이 돋는 작가들이 펜 대신 붓을 들었다. 신간 ‘작가의 붓’(The Writer's Brush 아트북스 펴냄)은 저자인 소설가 도널드 프리드먼이 수십년에 걸쳐 찾아낸 저명한 작가들의 그림과 미발표 인터뷰 등을 집대성한 것이다.
‘작가의 붓’에는 아폴리네르부터 예이츠까지 200년 이상 동안 문학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동서양 작가 100명이 그린 스케치, 드로잉, 회화들이 망라되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자신의 원고에 그려 넣은 다양한 고딕 양식 건축물과 소설 속 등장인물 스케치, 가오싱젠의 수묵화, 괴테의 데생과 에칭 등이 인터뷰와 함께 실려 있다. 유명 작가들의 전기인 동시에 도록인 셈이다.
‘작가의 붓’에 등장하는 작가-화가들은 집필의 즐거움 외에도 캔버스나 종이를 색 혹은 선으로 채워갈 때의 기쁨을 깨닫게 된 예술가들이었다. “시각적인 것이 나를 지배했다”고 말한 작가 괴테, 글을 쓰는 한편으로 자연에 나가 스케치에 매진했던 샬롯, 에밀리 브론테 자매, 스스로를 “신중한 성격의 미술가이며 자수성가한 작가”라 칭했던 귄터 그라스, “작가와 화가는 하나의 욕망을 공유하는 이들”이라고 표현한 존 업다이크, “그림이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구하지 못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살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 헤르만 헤세, “내 손으로 영혼을 포착해 초상화가 완성되는 것을 보며 나는 신성한 환희에 빠진다”고 말한 마크 트웨인 등이 그들이다.
저자는 그러나 작가들의 그림이 단순히 그들의 또다른 재능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세계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작가들의 상처가 예술적으로 표출됐다고도 여긴다.
저명 작가들 가운데 귄터 그라스, 커트 보네거트는 전쟁 포로로 억류된 적이 있었는가하면 도스토예프스키, 가오싱젠처럼 정치적 억압을 받은 작가들도 있다. 듀 모리에와 올더스 헉슬리는 시력 상실이라는 육체적 고통에 시달렸고 베아트릭스 포터, 러디어드 키플링 등은 어린 시절 학대받았던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았다. 이같은 내면의 상처들이 펜이 아닌 붓을 통해 밖으로 표현된 것이니, 이들에게 붓은 고백과 성찰의 도구였던 셈이다.
저자는 “이들은 미술을 통해 상처를 떨쳐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 상처가 전이되거나 심신이 약화되지도 않았다”며 “각각의 시, 각각의 드로잉은 압축된 채 보존되어 있는 기억 위에 덮인 굳은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유이청 기자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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