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유감, 까맣게 탄 국민의 가슴은 어쩔것인가?
숭례문 유감, 까맣게 탄 국민의 가슴은 어쩔것인가?
  • 정중헌
  • 승인 200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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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를 손상시킨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 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어이없게 불타 내려앉은 국보 1호 숭례문의 사후 처리를 놓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가림 막을 둘러치자 거두라는 성화에, 조속 복원과 신중론이 대립되는 양상이다. 화재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다 헐어버리고 레이저나 홀로그램으로 야간에 숭례문을 형상화해 상징화하자는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나오고 있다. 복원해 봐야 모조품이어서 문화재 가치가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도는가 하면 최첨단 현대식 랜드 마크를 세우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성금 논란에 자발적인 성금까지도 주춤한 실정이다.



숭례문은 불탔다. 국민들 가슴도 시커멓게 그을렸다. 한 노인의 화풀이 방화도 어처구니없거니와 밤새 물만 뿌려대다 잿더미로 만든 소방당국, 낙산사 화재에 수원 화성의 서장대 누각까지 태우고도 외양간조차 고치지 않은 문화재 관리 당국의 직무 태만에 화가 치민다.



그러나 이미 숭례문은 불타고 시커먼 잔해만 남은 게 현실이다. 이 인재(人災)를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당면 과제이다. 엉거주춤 땜질 처방이나 중구난방으로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온 국민이 수긍할만한 대책 마련에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숭례문 소실... 조문 기간 두고 세계적 설치미술로 가린 후 정밀하게 복원하라.



필자의 주장과 제안은 이렇다. 첫째는 화마를 당한 숭례문의 사후 처리다. 서둘러 가림 막을 칠 것이 아니라 현장을 수습하고 복원 대책을 마련하는 1~2개월 동안을 전 국민 애도기간으로 정해 조문을 받자는 것이다. 숭례문 화재가 진화되자 많은 국민들이 현장을 찾아와 헌화하고 숭례문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고 있다. 원로 시인들이 화마에 휩싸인 숭례문을 애도하는 시를 짓고, 초등학생들은 글과 그림으로 숭례문의 역사와 전통,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되새기고 있다. 9.11 사태를 당한 미국은 현장을 보존해 세계에 테러의 만행을 알리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보듬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애도 기간을 두어 전국의 국민과 외국 관광객들에게 문화재의 끔찍한 파괴와 부실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상처를 언제까지 드러내 보일 수는 없다. 숭례문이 위치한 지역은 교통이 혼잡하다. 때문에 애도 기간이 끝나면 가림 막을 쳐야 한다. 지금처럼 3면을 가리고 한 쪽 면만 투명하게 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 식이고 복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복원하려면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안전을 위해서도 외부와 차단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가림 막을 쳐야 하는데 칠 바에는 복원 중인 광화문처럼 지붕까지 씌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숭례문은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지금처럼 건축 자재로 가려 놓으면 도심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 되기 쉽다. 따라서 겨레의 혼이 깃든 숭례문 사적을 거대한 미술품으로 설치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연말 광화문 복원 현장에 설치된 재미 작가 강익중의 <광화문에 뜬 달>은 우리의 오방색과 달 항아리를 소재로 전통의 멋과 현대의 모던함을 조화시킨 거대한 미술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의 설치 미술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강익중씨는 조선시대 도공이 달 항아리를 빚듯이 붓 대신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2,600여 개의 달 항아리를 일일이 그려 거대한 벽화처럼 설치했다. 공식 조사는 아니지만 세계 최대 미술작품이 될 것이라는 <광화문에 뜬 달>은 특히 다채로운 조명으로 서울 야경의 명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설치 작품은 복원공사가 완료되는 2009년 6월까지 공개된다.



국민의 까맣게 탄 가슴을 씻어줄 추모이벤트 열자.



숭례문 가림 막을 광화문처럼 의미 있고 조형미를 갖춘 설치미술 작품으로 꾸민다면 국민들의 아픈 상처를 달래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관광 명소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참신한 아이디어다. 어린이들의 그림을 모아 설치작업을 벌여온 강익중씨라면 숭례문에 대한 추억을 담은 초중고생과 대학생, 일반인들의 그림을 공모해 이를 멋지게 디자인하는 설치작업을 제안할지도 모른다. 참고해볼만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술가들을 상대로 가림 막 설치 미술작품을 공모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특히 첨단의 조명예술 작업과 어우러지는 설치 작품이 나온다면 서울의 밤을 수놓는 멋진 조형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설치미술 작업과 함께 숭례문 추모 이벤트를 제안하고 싶다. 숭례문에 대한 추억을 담은 시, 시조, 산문 등 문학 작품뿐 아니라 수채화 유화, 펜화 등의 그림, 흑백 또는 컬러 사진, 동영상, 다큐멘터리, 그리고 영화와 드라마 속의 숭례문 영상 등 다양한 자료를 한데 모으고 여러 장르의 예술가들을 모아 추모제를 마련해 보자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며 국보 1호 서울의 랜드 마크 숭례문이 어이없이 불타 스러지는 모습을 본 당대의 예술가들이 숭례문을 소재로 하거나 모티브로 삼은 예술 작품, 나아가 현대의 뉴미디어와 예술을 접목시킨 다원예술 작품을 내놓는다면 세계적인 화제가 될 뿐 아니라 살아있는 이 시대의 문화유산을 남기는 위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같은 추모제를 통해 숯처럼 타버린 국민의 가슴을 달래주고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이 역시 정부보다는 민간단체가 주관해야 뜻도 살리고 호응도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숭례문 복원은 서두를 필요는 없으나 지나치게 신중론을 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부재(副材) 활용이 얼마나 가능하고 새로운 부재 확보에 따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복원을 늦출 이유가 없다. 다행히 1961~1963년 해체 수리 때 작성한 보고서와 설계 도면이 있다니 국내 최고의 도편수와 장인들의 열정과 기술을 합친다면 원형에 가까운 숭례문을 복원해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자발적 성금 모으되 관리 소홀히 한 책임자 엄벌해야.



복원을 국민 성금으로 하자는 이명박 당선자와 인수위 제안은 성급했다고 본다. 자발적으로 하려던 일도 누가 시키면 안하는 게 우리네 성정인데 세금으로 녹을 먹으며 관리 태만으로 저지른 불상사의 뒤처리를 국민더러 감당하라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자발적인 성금까지 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숭례문이 불에 타자 해외동포들이 먼저 성금을 보내왔다. 단체나 기업들도 순수한 뜻으로 성금을 내려다 생뚱맞은 제안에 망설이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신뢰할 수 있는 민간 기관이 성금을 모아 숭례문 복원과 문화재 보호에 사용한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끝으로 책임 추궁과 인책이 철저해야 한다. 이번 숭례문 방화 사건은 세상에 불만을 품은 한 노인의 분노 표출로 보기에는 너무도 허점이 많다. 문화재 관리의 책임은 문화재청에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과 코드가 맞아 자리에 앉은 청장이 낙산사 화재로 보물 동종(銅鐘)을 소실하고 재작년 5월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인 수원 화성의 서장대 누각을 불태우고도 목조 건물에 대한 방화 대책을 소홀히 해 이번같이 끔찍한 재앙을 불러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도 시원치 않을 판에 소를 서너 번 씩이나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관리자는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사표 수리로 끝내서는 소용이 없다. 그야말로 역사 앞에 대죄를 지은 만큼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야 하고 국보를 손상시킨 응분의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정권 말기의 누수 현상과 공직자들의 기강 해이로 국보를 불태워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린 이 나라 대통령은 말이 없고, 문화재청장의 사표 수리까지 미루고 있으니 나라꼴이 한심하다 못해 부화가 치민다.



문화재청장은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사건을 수습할 적임자도 아니고 복원 문제에 개입해서는 더더욱 안 될 그가 매스컴에 나와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볼 상 사납다. 주 임무 보다 곁가지에 신경을 쓰다보니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 아닐까. 그리고 단지 유홍준 청장의 단지 사표하나로 이 문제를 마무리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숭례문 소실에 죄 있는자 들은 자발적으로 죄 값을 감당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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