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는 지금, '나쁜 사람' 전성시대
우리사회는 지금, '나쁜 사람' 전성시대
  • 김세원
  • 승인 200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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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가리지 않는 성공지상주의, 이대로 좋은가? / 김세원



[인터뷰365 김세원] 요즘 TV를 보거나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서핑하면서 감동을 받기보다는 고개를 젓거나 혀를 찰 때가 훨씬 많다. 진실 되고 겸허하며 남을 배려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 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조직 내의 암투를 그린 미국 드라마나 인간의 경쟁 심리를 파헤치는 리얼리티쇼는 그렇다고 쳐도 국내 오락 프로그램마저도 타인에 대한 존중 대신에 상대방에게 고함을 치고, 소리를 지르고 윽박하는 모습을 재밌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소시민의 속물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시청률을 높이려는 것 같다. 더불어 성공에 눈이 먼 이기주의자들이 대접받는 분위기는 ‘나쁜 여자, 나쁜 남자’ 신드롬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쁜 여자, 나쁜 남자 전성시대



<나쁜 여자 보고서>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나쁜 남자 12종> <나쁜 아이로 키워라> 같은 책 제목과 <나쁜 남자> <나쁜 녀석들> <나쁜 영화> 같은 영화까지, 신문 잡지의 광고나 대형 서점 판매대는 ‘나쁜’이라는 말이 넘쳐난다. 아무리 제목 마케팅이 출판계의 유행이라지만 ‘나쁜’이란 형용사는 이제 가히 ‘멋지다’나 ‘쿨하다’의 동의어로까지 격상되기에 이르렀다. 경우는 다르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미 대책 없이 아이들만 잔뜩 낳아놓은 흥부보다는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제비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 놀부, 남의 동정을 사서 과제를 해결하는 콩쥐보다는 감정에 솔직한 팥쥐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형에 가깝다는 ‘전래 동화 뒤집어보기’를 경험했다. 그런 터라 내 아이만큼은 황태자처럼 키워야 한다는 분유 광고나 <나쁜 아이로 키워라>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책이 나와도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는다.



'착하다'의 동의어는 '한심하다'?



하지만 ‘나쁜’, ‘팜므 파탈’ 같은 말이 득세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착한’이나 ‘좋은’이란 수식어가 무능하고 한심하며 지겹고 따분한 것들을 뭉뚱그려 일컫는 의미 정도로 추락했다는 사실은 어느 사이 잊고 살았다. 누군가 “너 참 착하구나” 하면 칭찬이 아니라 ‘똑똑하지 않은데다 못생기기까지 했구나’라는 뜻으로 해석돼 기분이 나빠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어떤 방향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부모들이 갈수록 늘어날 게 뻔하다. 다른 집에선 아이들에게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데 내 아이에게만 바르고 착한 어린이가 되라고 가르쳤다가는 아이의 장래를 망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는 역설이 통용되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인간관계가 강퍅하다는 의미다. 각자가 지닌 미덕과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니 선택받으려면 자신이 강하고 특별한 사람임을 보여주어야 하고, 그러려면 미풍양속과 윤리도덕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성공을 위하여



그러나 나쁜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쁜 사람이란 결국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현대 사회다.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나 강제가 아니라 한 방울의 눈물, 감동이다.



어느 정도 성공 궤도에 진입하기까지 앞만 보고 달리는 나쁜 인간이 되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이 요즘 하는 말로 지속 가능하고 나아가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길 꿈꾼다면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회 구석구석의 소외된 이들을 돌아볼 줄 아는 넉넉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을 끌어댈 것도 없이 <무한도전> 유재석의 성공이 너무도 평범하지만 분명한 진리를 새삼 일깨우고 있다.


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김세원

동아일보 기사, 파리특파원,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현 카톡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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