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늑대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①
“배고픈 늑대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①
  • 박군
  • 승인 2007.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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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의 배스킷볼 다이어리> 계속되는 도전, 하지만 여전히 배고프다.


팀버울브스(Timberwolves). 미네소타에 서식하는 몸집이 큰 얼룩무늬 이리를 뜻하는 팀명이다. 이 팀의 젊은 이리들은 창단초기 신생팀의 패기와 열정으로 무한한 가능성과 익사이팅한 게임으로 그 가능성을 펼쳐보이며 우승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미래는 예상과는 달리 그리 밝지만은 못하다.


미네소타 이전의 미네소타


사실 팀버울브스가 미네아폴리스의 첫 프랜차이즈 팀은 아니었다. 1950대 미네아폴리스 레이커스가 그지역의 프랜차이즈 팀으로, 당시 조지 마이칸이라는 위대한 센터를 거느리고 1949년부터 1954년 6년동안 타이틀을 무려 다섯 번이나 획득했던 강팀이었다. 비록 4년 후 팀은 최하위권으로 밀려났지만 행운의 여신이 여전히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것인지 1958년 드래프트에서 시애틀대학의 엘진 베일러를 지명할 수 있었다. 엘진 베일러는 줄리어스 어빙, 마이클 조던으로 이어지는 수퍼스타 계보의 뿌리에 해당하는 인물로 루키시즌인 58/59시즌, 평균 24.9점 15리바운드를 기록, 신인왕을 거머쥐고 팀을 NBA결승에 올려놓는 맹활약을 보여주었다.

조지마이칸(왼쪽)과 엘진 베일러(오른쪽)


또한 그 이듬해 베일러는 평균 29.6득점을 기록하고 보스턴을 상대로 64점을 올리는 등 더욱 향상된 모습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레이커스는 25승 50패로 리그 하위를 기록했고, 결국 그 시즌을 끝으로 프랜차이즈를 LA로 옮겼으며 훗날 NBA를 대표하는 강팀인 레이커스로 성장하게 된다. 그 외에도 ABA의 미네소타 머스키스와 미네소타 파이퍼스 등의 팀이 60년대 말까지 미네소타에서 활약했고, 코니 호킨스와 멜 다니엘스와 같은 스타들이 인기몰리를 하던 시대가 미네소타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20여년 동안 미네소타는 프로농구팀이 없는 도시로 전락되고 만다. 그러다 89년 NBA의 확대로 새로운 4팀이 생기게 되는데 올랜도, 마이애미, 샬럿과 함께 미네소타도 89/90시즌부터 NBA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로부터 10여년이 넘는 그들의 짧은 역사를 들여다보면 미네소타 역시 여느 다른 팀들의 역사초기와 별반 다를것이 없는 호된 신고식을 피해가지 못했다. 89/90시즌부터 95/96시즌까지 그들의 최고 승률은 35%에 지나지 않았고 이긴 경기가 전체경기의 1/4밖에 되지 않는 시즌이 대부분이었다.


신생팀이 넘어야 할 벽들


미네소타의 첫 항해를 책임지는 선장에는 빌 머셀먼이 선출되었는데, 그는 미네소타대학 출신으로 71/72 빅 10 컨퍼런스에서 팀을 리드하기도 했으며, ABA와 NBA에서 클리브랜드 캐벌리어스를 지도했던 인물이었다. 1989년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는 스몰포워드 타이론 코빈을 피닉스로부터 데려오고 11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는 그들의 권리중 하나를 피닉스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1라운드 10순위로 UCLA의 포인트가드 제롬 리차드슨을 데려왔고, 2라운드에서는 가드 덕 웨스트를 지명했으며 드래프트 이후 여름엔 가드 시드니 로위와 계약했다.


그들의 첫 경기는 시애틀 수퍼소닉스전으로 스타팅 멤버는 샘 미첼, 토드머피, 브래드 로하우스, 토니캠블 그리고 시드니 로위였다. 미네소타의 첫 득점을 기록한 선수는 샘미첼로 프리드로우로 첫 득점을 기록했고, 최초의 필드골 역시 그가 기록했다. 그러나 결과는 106대94로 첫 경기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행운을 붙잡지는 못했다.


미네소타의 첫 홈경기는 그들의 홈경기장인 타켓센터가 완성되지 못해 메트로돔에서 펼쳐졌고, 첫 홈경기 상대로는 시카고를 맞아 96대84로 패했다. 당시 시카고는 수퍼스타 마이클조던을 앞세워 신생팀 미네소타를 보기좋게 넉다운 시켰는데, 조던은 그날경기에서 45득점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미네소타의 첫 승리는 11월 10일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연장까지 가는 힘겨운 사투를 벌인 끝에 1승을 거둘 수 있었다. 첫 승리의 주역은 캠블과 코빈으로 각가 38점과 36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12월 들어서는 클리브랜드를 상대로 27점차로 승리를 이끌어냈고 이어 뉴저지 역시 연파했지만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9연패를 당하며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허나 9연패를 당한 미네소타였지만 그 어느 팀도 무시할 수 없는 거칠고 두터운 수비만큼은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시즌 중반 루키 포인트가드 푸 리차드슨에게 새로운 희망을 걸고 주전으로 승격시켜주었고, 그는 새크라멘토와의 데뷔전에서 20득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주위의 기대를 완벽하게 부응해 주었고 그해 NBA올 루키 퍼스트팀에 선정되기도 했다. 게다가 토드 머피까지 한경기에서 20리바운드를 잡아내는등 리바운드 부문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태었고, 토니 캠블역시 미네소타의 주 득점원으로서 매경기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했다.


하지만 그들의 첫시즌 결과는 22승 60패로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그나마 동기생들인 마이애미, 올랜도, 샬럿과 비교해 가장 나은 성적표를 받았다는 사실에 자위할 수 있었다.90/91시즌 미네소타는 새로운 전용구장인 타켓센터에서 첫 경기를 가졌다. 상대는 댈러스 매버릭스로 시즌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끌며 구장을 가득 메운 홈팬들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전시즌과 비교해 월등히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시즌결과는 29승 53패로 전 시즌보다는 다소 나아졌다. 이는 시즌중반 빌 머셀먼 감독의 전술변화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는데, 다소 조심스럽게 경기를 운영하던 스타일에서 탈피해 경기 초반부터 맹공을 퍼붓는 전술을 펼쳐나갔다. 그리고 그의 전술변화는 팀 공격력을 크게 향상시켜 매경기 세자리수 득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즌을 끝으로 머셀먼 감독은 팀을 떠났고 지미 로저스가 새로운 사령탑으로 미네소타 번영의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91/92시즌 새로운 감독과 함께 다소 템포가 빨라진 공격스타일을 추구했던 미네소타는 시즌 초반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첫 10경기 중 단 한번의 승리만 얻어내는데 그쳤고 12월에는 팀 최악의 월성적인 1승 13패를 기록하는등 전 시즌 후반에 보여주었던 가능성을 또다시 땅속 깊이 묻고 말았다.


미네소타는 제럴드 글래스와 덕 웨스트를 팀의 기둥이었던 베테랑 코빈과 부상중인 켐블의 자리에 밀어넣었고 코빈을 유타의 썰 베일리와 바꾸는 빅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하지만 잘해보고자 시행했던 미네소타의 트레이드가 진정 팀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는 다소 의문스러웠다. 팀의 주축들이 부상을 당해 토드 머피, 펠튼 스펜서, 톰 게릭, 토니 캠블의 공백을 91년 드래프트에서 얻은 룩 롱리와 썰 베일리, 덕 웨스트, 리차드슨등이 메워나가야 했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15승 67패라는 최악의 성적으로 그해 시즌을 마감했다.


이후 트레이더 잭 맥클로스키는 미네소타의 새로운 경영진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는 13년동안 디트로이트에서 한 포지션을 지켰던 인물로 두차례 팀을 NBA정상에 올려놓는데 적잖은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탁월한 판단력으로 고등학교와 대학의 코치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2년간 포틀랜드를 지도하기도 했다. 선수출신의 새로운 경영진의 합류로 팀분위기 쇄신을 도모한 미네소타는 92/93시즌 대대적으로 팀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해 미네소타는 듀크대학의 센터 크리스찬 레이트너를 얻은 반면 리차드슨과 미첼을 인디애나에 보내고 척 퍼슨과 마이클 윌리엄스를 데려오는 모험을 단행한다. 6인의 뉴페이스를 스타팅멤버로 시즌을 시작한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의욕만 가득했을뿐 이 시즌이 그들의 미래를 황금빛으로 바꿔줄 전환점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루키 레이트너는 데뷔시즌을 18.2득점 8.7리바운드의 준수한 성적으로 마쳤고 웨스트와 퍼슨 역시 플레이메이커와 득점원으로서 제 몫을 다했지만 미네소타의 성적은 형편없었고 결국 구단측은 팀 부진의 원인이 코칭스테프에게 있다고 판단, 지미 로저스 감독을 경질시키고 팀 창단때부터 함께했던 시드니 로위를 임시 사령탑에 앉혔다. 로위의 지휘체계로 들어간 미네소타는 변함없이 고전의 늪을 헤어나오지 못하고 19승으로 시즌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로위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팀은 적잖은 가능성을 내비쳤고 그로인해 로위는 정식 헤드코치로 임명되었다.


93년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는 네바다 라스베가스의 득점기계 아이재아 라이더를 얻어 전력을 보충했고, 크리스찬 레이트너의 기량도 절정에 달했다. 허나 선수 한명한명을 놓고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미네소타였지만 이상하리만큼 팀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94년 드래프트에서 코네티컷의 도니엘 마샬을 얻었고 시드니 로위를 대신해 빌 빌 블레어가 새로운 코치로 입명되었다. 이시기에도 레이트너와 라이더 등 젊은 선수들의 활약은 정말 눈부셨다. 게다가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마샬을 골든스테이트에 내주고 톰 구글리오타를 영입해 로포스트를 강화하며 좋은 경기를 펼쳐보였다. 여전히 하위권의 성적이었지만 말이다.



- 계속

이글을 쓴 박군은

이런 저런 삶의 핑계들 속에서도 쉼없이 NBA를 보고 기록하는 것을 즐기는 순수남이다. “꿈만 꾸지말라 끝없는 노력과 연습 없이는 그 어떤것도 이룰수 없다. 연습없이 신이 된 건 오직 하나님 뿐이다.”라는 좌우명으로 그는 오늘을 사는 그의 바스켓볼 다이어리엔 남과 다른 정보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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