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l 디자이 오사무의 사양(斜陽)
Book l 디자이 오사무의 사양(斜陽)
  • 마리
  • 승인 200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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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독자 마리의 <따지며 책 읽기> / 마리


[인터뷰365 마리] 제목도 참 이상한 책이다. 뭘 ‘사양’한단 말인가? 아니면 컴퓨터의 성능이 어쩌고 하는 그 ‘사양’ 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양을 친다는 말일까? 그래서 결국 한자를 따져보았다. 이래저래 따져보게 된단 말이다.



사양(斜陽) 비낄사, 볕양. 오호~ 볕이 비껴간다는 말이다. 석양과도 같은 말이다. 이렇듯 한문 안 배운 세대는 제목부터 난감할 옛 고전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이 아직까지도 계속 출판되고 있다는 것을 지난주 교보문고에 놀러갔다가 알았다. 버젓이 진열되어 있는 저 책을 본 순간 나는 놀라서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졌다.



1988년이라고 흘려 써놓은 것을 보니 어언 20년 전인데, 그때 나는 어떤 책을 읽다가, 그 책에서 언급한 <사양>의 어떤 구절을 읽고, 본래의 읽던 책은 덮어두고 <사양>을 사러 발딱 나섰었다. 처음 방문한 서점에서는 모른다 했고, 두 번째 좀 큰 서점에 갔을 때는 없다 했고, 서울에서 제일 큰 서점을 갔을 때는 절판되었다 안 나온다 금지서적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서점을 헤매느라 꼬박 하루를 잡아먹고 난 나는 오기가 생겨서(아마도 금지서적이란 말이 십분 영향을 주었겠지만) 반드시 구하고야 말리라 하며 불끈 했었던 것 같다. 결국 중앙도서관인가...거기까지 기어 올라갔던걸 보면.



그래서 단편으로는 당연이 못 찾았지만, 저 구석 저 높은 곳에서 먼지를 쓰고 있던 세계문학전집 어쩌고 중 일본편 어쩌고 중에서 <사양>을 찾아냈다.



그리고 피곤해 죽을것 같은 표정의 알바생에게 100 여장 되는 복사를 시켰다. 무표정으로 복사를 하는 직원 옆에서 서서, 혹시 누군가 와서 “이건 금지된 서적이오, 왜 복사를 해가는 것이오 ! 복사도 안 될 뿐 더러 학생 수상하니 가방 좀 봅시다 ! ” 라고 하지나 않을까 조마조마 꼴깍꼴깍 침 삼키고 있었던 기억도 난다. (나름대로 나도 순진했다 ) 그렇게 구해서 도화지로 책 표지 만들어 제본해서 읽었던 책이다.



부랴부랴 집에와서는 근 20년의 세월을 버텨준 복사 책 <사양>을 찾아보았다. 색도 바래고...참 불쌍한 형상이지만, 책장을 넘기자니 그때의 감동이 조금은 밀려온다. 지금은 당최 헷갈려서 읽기도 힘든 세로글씨에... 줄까지 쳐가며.



몰락한 일본의 귀족이야기가 무에 그리 대단했다고? 하지만, 이 책이 몰락한 일본 상류층의 한 가족을 소재로 해서 단순히 허무를 그려내고 있다고 한다면 그 오랜 세월 꾸준히 선택받지는 못했을 일이다.


나는 그 당시에는 이 책에서 이도 저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나약함 때문에 같이 답답해했고, 지금은 이 책에서 단 하루조차 ‘불량’할 수 없는 너무 반듯한 책임감 때문에 같이 속상해한다. 고전이 지닌 깊이의 소산이다.



내가 조숙한 체해 보이면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쑥덕거렸다. 내가 게으름뱅이 시늉을 해보이면 사람들은 나를 또 게으름뱅이라고 쑥덕거렸다. 내가 소설을 못쓰는 체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아주 소설을 못 쓴다고 쑥덕거렸고, 내가 거짓말장이 흉내를 내니까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장이라고 쑥덕거렸다. 내가 부자행세를 하니까 사람들은 나를 그대로 부자로 쑥덕거렸다. 내가 냉담을 가장해 보이니까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놈이라고 쑥덕거렸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괴로워 저절로 신음을 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다만 괴로운 체한다고 쑤군거렸다. 아무래도 어긋난다. 결국, 자살할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이 괴로움을 당해도 다만 자살로 끝날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만 통곡하고 말았다.




이렇게 자살타령을 하더니, 결국은 자살한 ‘나오지’라는 인물의 일기 중에서 옮겨보았다. 밑줄이 (아니 옆줄인가?) 벅벅 그어져 있었기 때문에도. 언젠가 내 아이도 사춘기를 겪으며 죽느냐 사느냐 인생은 무어냐 어쩌고 하며 새벽을 밝힐 날이 오겠지.(내 핏줄인데 오죽할터...) 그때 슬쩍 책상위에 놔 주고 싶은 책이다.



노오란 포스트잇에 이런 메모를 첨가해서.



<1947년에 쓰여진 이 책의 주인공이 2천년대를 살고 있는 너와 같은 주제로 괴로워했음에 위안을 받도록.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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