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차 운전자의 남모를 비애
소형차 운전자의 남모를 비애
  • 김세원
  • 승인 200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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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식 겉치레가 차의 성능을 올려주진 않는다 / 김세원


[인터뷰365 김세원] 나의 애마는 연두색 <칼로스>다. 엔진은 1500cc지만 크기는 현대의 <클릭>과 비슷하다. 차체가 높은 SUV스타일인데다 색깔마저 연두색이어서 수백대의 차가 세워진 주차장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차를 주문할 때 분명히 하늘색상을 선택했는데 웬일인지 막상 인도된 차는 연두색이었다. 좋아하는 색은 아니지만 초록 계열 색상을 가까이 접하면 기운을 북돋워 준다는 역학자들의 권고도 있고 해서 그냥 타고 다닌다. 대형 세단차를 타보는 것이 소원인 아들아이는 내가 또다시 소형차를 산 것에 불만이 대단했다.



외국에서 국산중고차를 산 이유



프랑스에 있을 때 내가 구입한 차는 1500cc짜리 대우 중고차였다. 해외에 나왔을 때 외제차를 안타면 언제 타보겠느냐며 파리의 주재원들은 대부분 벤츠나 BMW, 폴크스바겐 같은 독일차나 푸조 르노 등 현지 자동차를 구입했다. 국산차, 특히 소형 국산차는 아직도 외국차에 비해 안전성이 떨어지고 귀국하면서 차를 팔 때 중고차 시장에서 제대로 값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도 꼽혔다.


하지만 파리의 좁은 거리에서 일렬주차하려면 중형차는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다. 휘발유 값도 많이 든다. 파리에서는 1500cc차도 큰 편에 속한다. 당시는 대우가 공중분해 되기 전이라 대우가 직영하는 정비소가 곳곳에 있다는 점도 결정하는데 한몫을 했다.



성차별 못지 않은 자동차 차별



한국에 돌아와 “사모님의 사회적 지위와 나이를 생각해야 한다”며 2000cc 이상 중형차를 살 것을 권하던 세일즈맨의 끈질긴 권유를 물리치고 작은 차를 사기로 결정한 것은 비싼 차를 살 경우 차의 노예가 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때맞춰 세차를 ‘해줘야’하고 운전할 때는 물론, 주차할 때도 흠집이 날까 노심초사해야 하는 것이 싫어 부담 없이 몰 수 있는 작은 차를 선택했는데 역시나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특급 호텔이나 관공서, 백화점에 차를 몰고 갈 때마다 항상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주차공간이 텅텅 비어있는데도 주차가 불편한 기계식 주차장으로 밀어내는가 하면 주차장이 만원이라며 진입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주차된 차를 꺼내려고 병렬 주차된 다른 차를 밀어달라고 주차요원의 도움을 요청할 때도 반응이 시큰둥한 경우가 많았다.



주유소에서도 작은 차 운전자의 설움은 계속된다. 주유소로 차가 진입하면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종업원이 멀리서부터 인사를 하며 달려나와 주유기로 안내하는데 작은 차는 뒷전이다. 앞 유리를 닦아주는 서비스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세차를 하고 나서도 고급 대형세단은 보물 다루듯 정성들여 마른 걸레질을 해주면서도 내 차는 항상 닦다가 만다. 돈 똑같이 내고 왜 부당한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화가 날 때도 많다.



그래서 나는 무인 주차장이 좋다.



벤츠건 800cc짜리 소형차건 공평하게 대우하는 무인 주차장, 무인 주유소가 차라리 마음 편하다. 그런데 영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도우미가 없는 무인 주차장, 무인 주유소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고급호텔이나 대형 유통점은 예외 없이 유니폼을 입은 주차 요원들이 주차장 입구부터 나와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진입하는 차들에게 큰 절을 한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이들의 절을 받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가 않다. 생각해 보라.아늑한 차안에 버티고 앉아 하루 종일 바깥에 서서 들어오는 차마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느라 지칠대로 지쳤을 주차요원들의 인사를 받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는가? 인사를 받을 때마다 맞절을 하지만 그들과 눈길을 마주치는 자체가 민망스러워 선글라스를 꺼내 쓰곤 한다. 인사하기에 바빠서 주차요원들이 주차장 통제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주차요원 들도 자신의 임무가 ‘손님맞이 의전’인지 ‘주차장 정리’인지를 헷갈리는 것 같다.



주유소를 통해 본 각국의 경제 체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당위성을 설파한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 트리’에서 주유소 형태로 지구상의 5가지 경제 체제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일본의 주유소는 값이 비싼 대신 제복을 차려입은 종업원이 손님 차에 휘발유를 넣어주고 유리창까지 닦아준 뒤 사라질 때까지 인사를 한다. 이들은 종신 고용 계약 아래 일한다. 둘째, 미국의 주유소는 값은 싼 대신 손님이 각자 휘발유를 넣어야 하고 타이어에 바람 넣고 냉각수를 보충하는 일도 모두 직접 해야 한다.



서유럽의 주유소는 값도 비싸면서 종업원 1명이 화난 표정으로 손님 차에 휘발유를 넣어준다. 종업원은 1주일에 35시간만 근무하고 90분의 점심시간은 잊는 법이 없다. 그들의 형제와 삼촌은 주유소 옆에서 쇠공 굴리기를 하고 있다. 실업 수당이 직장 월급 보다 많기 때문이다. 넷째, 개발도상국의 주유소는 서로 사촌 간인 열 댓 명의 종업원으로 노상 시끄럽다. 이들은 손님이 들어가도 손 하나 까닥 않고 여전히 떠든다. 휘발유 값은 아주 싸지만 주유기 6개 중 하나만이 제대로 작동한다. 스위스에 사는 주유소의 주인은 종업원의 절반이 주유소에서 기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공산국가의 주유소도 휘발유 값은 아주 싸지만 휘발유가 없다. 종업원들이 휘발유를 빼돌려 비싼 값을 받고 암시장에 내다 팔기 때문이다. 종업원은 공식적으로 4명이나 실제 근무자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지하경제 시장에서 부업을 하느라 바쁘다.



프리드먼은 주유소의 비유를 통해 일본과 서유럽, 공산국가는 정부가 시장 통제권을 갖고 효율성 보다 각국의 전통과 가치관을 수호하려 하는데 비해 미국은 개개인에게 권한을 주는 대신 시장에서 자율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를 결정한다고 지적한다. 한 마디로 미국 경제는 효율성을 추구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경제외적인 가치나 전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정복을 입은 종업원이 바깥에 서서 들어오는 차마다 꾸벅꾸벅 절을 하면서 작은 차가 들어오면 푸대접하는 한국의 주차장과 주유소를 프리드먼이 경험했다면 대체 뭐라고 했을까. 일본 유형에서 분리돼 나간 여섯 번째 유형으로 한국의 주유소를 예로 들면서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유교식 겉치레의 전형이라고 혹평하지 않았을까 싶다.



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김세원

동아일보 기사, 파리특파원,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현 카톡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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