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에 따스함 <동묘 벼룩시장>을 가다
아스팔트 위에 따스함 <동묘 벼룩시장>을 가다
  • 김우성
  • 승인 200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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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동 터전을 잃고 옮겨온 사람들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던 풍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저 일정한 때가 되면 사통팔달로 통한 곳에 어김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저마다 필요한 물품들을 구해서 돌아가던 게 우리네 고유의 장터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옛날 장터의 풍경은 대량생산과 체계화된 유통과정이 자리를 잡은 지금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이 서는 길목에는 텃밭에서 기른 채소며 지렁이를 쪼아 먹던 씨암탉 등 판매자가 생산할 수 있을 만큼만 옹기종기 좌판을 차지하였고 모여든 사람들은 물품도 물품이지만 궁금했던 소식과 정을 주고받으며 장날을 보내곤 하였다. 그러한 옛 모습은 이제 재래시장에도 현대화가 이루어지고 통신망이 급격히 발달해가며 점점 사라져가는 풍경중의 하나가 되고 있다.


1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동묘앞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면 동묘(촉한시대 유명한 장군인 관우를 기리기 위한 사당)돌담길을 따라 청계천변에 이르기까지 세상 온갖 만물이 망라된 진풍경이 벌어진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이면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벼룩시장이 이곳에서 열리는 것이다. 동묘 벼룩시장의 기원은 옛 황학동 벼룩시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디에도 없는 희귀한 물품을 구할 수 있어 소위 ‘전문가’들에게 큰 인기를 끌던 황학동 벼룩시장은 6.25전쟁 이후 청계천변 판자촌으로 몰려든 빈민들이 각종 고물을 수거해 되팔며 생계를 유지해나가던 것이 시초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복원으로 인해 모든 노점이 동대문운동장 안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일부 노점이 동묘 인근의 기존 상권에 뿌리를 내려 지금의 거대한 벼룩시장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2년여 만에 다시 찾은 동묘 벼룩시장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초월한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동묘 벼룩시장에는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없다. 이곳의 물품들은 남이 사용하다가 버린 중고품이 주를 이룬다. 가격은 구하기 힘든 골동품 등 몇 가지 종류를 제외하고는 대개 1000원 선에서 형성이 된다. 그보다 조금 더 높은 가격이라고 해봤자 큰 부담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기에 결과적으로 실속 쇼핑을 할 수 있다. 싸구려 중고품들인데 딱히 볼 게 있겠냐고 생각한다면 과감히 시간을 내어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땅바닥에 수북이 쌓여있는 옷더미 위에서 한참을 씨름 하다보면 자기 몸에 꼭 맞는 맞춤복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데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작은 하자를 빼면 당장 올 겨울에 입을 수 있을 만큼 상태나 디자인이 훌륭하다. 이는 다른 물품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상인은 이곳에서 심심치 않게 구제 명품을 발견하여 저렴한 가격에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귀띔한다. 하지만 어느 물건이든 자신을 알아보는 주인의 품에만 안기기 마련이기에 상당한 수준의 눈썰미를 필요로 한다.


이곳의 특징은 신발 좌판만 들여다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숙녀화, 군화, 운동화, 샌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신발들이 모델별로 단 1개씩만 비치되어 있는데 먼저 골라잡는 사람이 임자이다. 마음에 드는 신발을 찾으면 일반 매장과 마찬가지로 미리 신어볼 수도 있다. 사이즈가 안 맞는다고 해서 재고를 찾는 사람은 없다. 살며시 벗어두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기면 그만이다. 그냥 간다고 해서 서운해 하는 판매자도 없다. 가전 좌판으로 옮겨가자 90년대 초반 출시된 일제 워크맨을 두고 흥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발디딜 틈 없이 좌판을 둘러싼 구경꾼들로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는다. 워크맨을 집어 들고 이리저리 꼼꼼히 살피던 구매자가 성능에 문제가 없는지 묻자 판매자 본인도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김이 샐 법도 한데 주변에 몰려있던 사람들 모두 한바탕 웃음꽃이 핀다. 책 좌판으로 옮겨가자 이번에는 다들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다. 녹록치 않은 여건에도 자리에서 꿈쩍 않고 책을 읽는 모습은 대형문고가 부럽지 않아 보인다.


동묘 벼룩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는 같은 좌판 안에서도 천차만별인 물건의 조합이다. 나란히 놓여있는 스피드스케이트와 족욕기는 그나마 ‘발’이라는 관련 근거(?)를 찾아볼 수 있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청자 옆에는 손지창과 김민종이 결성했던 그룹 <더 블루>의 LP판이 놓여있기도 하고 심지어 낚싯대와 석유곤로가 나란히 비치되어 있기도 하다. 통일호 객차 외벽에 붙어있었을 ‘서울발 부산행’ 팻말과 군 소총사격용 인민군 표적은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같이 상상을 뛰어넘는 재미난 그림들은 지나가던 이의 시선을 붙잡고 좀처럼 놓아주지 않는다. 물건을 사려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 보일 정도이다. 시장 곳곳 물건들의 진열은 기발하다. 평일에도 띄엄띄엄 좌판은 열리지만 상시 열려있는 시장이 아니기에 진열에 있어 일정한 규격이 없는 것이다. 주변 아파트의 빨랫줄이나 건물 계단, 야전침대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곳들이 동묘 벼룩시장의 진열대가 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다리도 아프고 허기가 느껴져 좁은 골목 안쪽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시장 곳곳에는 협소하나마 먹거리도 즐비한데 무더운 여름에는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수박화채도 맛볼 수 있다. 포장마차 안에서는 먼저 와있던 사람들끼리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로 몸을 녹이며 한창 이야기꽃을 피웠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최요삼 선수의 경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열심히 설명하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별안간 포장마차 안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도시가 발전해 감에 따라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다시 어디론가 옮겨갈 것이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이곳의 불법 노점 문제가 서서히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초등학교 등굣길과 맞물려 있어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엄연히 법이 작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동묘 벼룩시장의 영원한 존치를 기대한다는 건 무리이다. 서울의 또 다른 이면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는, 자연스레 형성된 이곳의 정겨운 풍경도 언젠가는 그렇게 모두의 추억 속에 조금씩 나뉘어져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김우성 기자 ddoring2@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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