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꿇고 사느니 서서 죽는다(?)
무릎꿇고 사느니 서서 죽는다(?)
  • 조현진
  • 승인 200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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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느와르의 황금기에 생긴 일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1980년대 말 한국 극장가의 주인은 한국영화도, 헐리우드 영화도 아니었다. <영웅본색><첩혈쌍웅>등을 앞세우며 맹폭을 가한 홍콩영화의 최전성기가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런 소위 <홍콩느와르>는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 결과 <천장지구><지존무상>등의 우수한 작품들이 계속 소개되기도 하였지만, 상대적으로 홍콩의 B급 코미디 영화들도 무차별적으로 ‘그럴싸 한 제목’으로 위장되어 수입되곤 했었다.



당시 필자가 영화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즉, 영화의 선전과 광고를 위해 관객을 유혹 할 포스터와 광고 문안을 만드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었다. 우리 회사 역시 광고를 진행해야 할 여러 편의 홍콩 영화로 넘쳐나고 있었을 때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미리 보고 카피를 쓰는 작품도 있었지만, 필름의 통관이 늦어져서 개봉일이 급한 경우에는 사진과 보도자료에만 의지해서 카피를 쓰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영화의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영웅본색의 큰 형으로 나왔던 ‘적룡’이 주연한 영화였다. 1주일 후에 <서울극장>에서 개봉이 결정된 그 영화 역시 통관의 시간상 영화를 보고 광고를 진행 할 수 없는 처지. 그래서 미리 확보된 사진 자료와 줄거리만 읽고 광고물을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의리’,‘용기’,‘비장’등의 단어로 일관되어 진 것이 비슷비슷한 홍콩 느와르 영화라고 읽혀졌다.



그래서 나온 명 카피(?)가 바로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는다.’라는 비장한 문구였다. 영화사 사장과 극장주는 이 비장한 카피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포스터와 신문광고가 만들어지고 1주일 후 영화는 개봉되었다. 그리고 나는 개봉 다음날 극장을 찾았다. 광고가 성공적이었던지 극장 안에는 관객들이 가득 차 있었다. 내심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를 잡아 앉고, 영화가 시작되고 30여분 쯤 지났을까?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빨리 총질과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주인공들이 계속 유치한 농담과 코미디를 이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영화는 엔딩자막이 오를 때까지 이어졌다. 아~아. 완전히 자료로 영화를 오판했던 것이었다. 이 영화는 ‘홍콩 느와르’가 아닌 ‘홍콩 코미디’ 였던 것.



영화가 끝나고 나는 죄인이라도 된 마음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나와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좌우에서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뭐?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는다고? 이 영화 광고한 XX 누구야?’ 하는 식으로. 당시 그 광고로 인해 실망한 관객들에게 늦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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