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시절 “방송국엔 ‘얼굴 없는 채홍사’ 있었다.”
신군부 시절 “방송국엔 ‘얼굴 없는 채홍사’ 있었다.”
  • 신일하
  • 승인 200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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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삶에 오점 남기지 않은 건 마음의 위로” / 신일하


[인터뷰365 신일하] STV 사극 ‘왕과나’가 연산군의 채홍사 이야기로 MTV ‘이산’에 뒤진 시청률 경쟁에서 반전이 가능할까. 방송 초반의 인기 만회를 위해 궁중 내시부에 채홍사를 등장시킬 ‘왕과나’의 이종수PD는 “현재 시청률(15% 대)로는 힘들지만 연산군이 나와 변화가 있으면 연장 방송이 가능하다”고 내다보며 새로 전개될 채홍사 이야기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비추었다. 채홍사는 궁중 미녀에게 방중술을 통한 건강법을 가르치는 이조시대 내시부 교관을 말한다.



채홍사는 조선왕조에만 있은 건 아니다. 유신체제의 채홍사 활약은 영화 소재로 등장한지 오래다. 하지만 신군부 시절 존재한 채홍사 흔적을 찾기 쉽지 않았다. 참여정부에서 탄생한 과거사위는 “보안사령부가 1980년 정보처를 신설하고 ‘언론반’을 가동, 이른바 ‘K공작’을 실시했다”면서 이들은 1989년까지 언론사에 상시 출입하며 감시한 걸 인정했다. 악명 높았던 언론반의 만행이 신문과 통신에만 작용한 건 아니다. 오히려 TV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해 인맥이 없으면 출세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방송국에서 ‘소리 없는 총’을 가슴에 숨기고 충성 경쟁을 벌였던 ‘신군부 채홍사’들이 남긴 흔적을 과거사위가 왜 파헤치지 못했을까?



“삶에서 오기가 득 보다 화를 초래한다는 걸 인식하기 힘들어요. 잘 나갈 때면 보이는 게 없어서...” 80-90년대 ‘황금 주가’의 몸값이었던 박철수감독은 자기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지 이처럼 실토했다. 연출하는 작품 마다 안방극장에서 히트를 쳐‘스타PD’로 유명세를 치룬 시절을 회상할 때면 그는 좀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자신의 오기로 인해 삶에 오점을 남기지 않은 스타가 있는 건 때로 마음의 위로가 된다고 했다.



“방송국에서 그때까지 방송된 드라마 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자체 평가가 나왔다” 방송작가이자 화가 김순지씨가 펴낸 자전적 소설 ‘별을 쥐고 있는 여자’에서 1986년 8월 방송된 MTV 2부작 특집드라마 ‘생인손’에 관해 이렇게 써놓았다. 노비 출신 한 여인의 운명적 삶을 통해 한을 깊숙이 조명한 한무숙 대표작을 김순지씨가 ‘스타PD’ 박철수감독을 만나게 되어 드라마로 각색하는 행운을 잡은 것이다.


“여주인공 한애경의 90대 노모 입체 분장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정도이었죠. 국내 방송 사상 최초 특수 분장을 선보여 성공한 드라마였으니. 분장사 유승태씨가 서울의 유명 화공점을 뒤져 재료를 구입, 실험을 해서 만든 분장인데 영화 <아마데우스>의 궁정 음악장 살리에르 못지않은 기술로 인정받아 시청자들을 감동시켰어요” 그러나 당시 누린 벅찬 감동 못지않게 박감독 가슴에는 응어리가 남아있다.


“저녁을 먹고 스튜디오에서 촬영 중인데 난리가 났어요. 제작부에서 누가 불러 사극 분장한 채 한애경이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울고 있다는 거예요” 원인을 알아보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감정이 폭발하여 박감독이 “뭐야. 내가 책임질 테니 눈물 닦고 촬영 준비나 해”하며 달랬으나 한애경은 간부가 어떤 엄포를 놓았는지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청와대 만찬에 연기자를 분장한 채 보내겠다고 해서 놀랐어요. 가지 않으면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고 하니 연기자가 초죽음이 될 밖에 없었죠.” 보안사의 비위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가 귀신도 모르게 당하던 시절이라 그 간부도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시 명분이 있는 파티인지 알고 싶어 물었어요. 그건 불가항력의 요청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더군요. 그래서 방송 펑크 나는 거 책임질 거냐고 했죠. 연기자를 보내면 연출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말겠다고 했더니 그 간부가 ‘박감독 말야. 나 좀 도와주면 안 돼’하고 애걸하며 눈물을 보이는데...” 스튜디오까지 쫓아와 눈물로 호소하던 그 간부에 맞서 오기를 발휘한 박감독은 20년 넘은 일이지만 기억은 생생했다. 연예인이 무슨 노리개인가. 충성 경쟁을 위해 연기자를 유사 기쁨조로 가꾸어 신군부의 ‘얼굴 없는 채홍사’ 노릇을 하다니.



“녹화 끝내고 새벽에 방송국 앞 포장마차에 갔어요. 오늘 내가 할 일을 한 건가. 취기에 젖으니 만감이 교차되더군요. 총대를 멘 게 연기자에게 은인이 될지 몰라도 그 간부에겐 원수가 되었으니. 이 짓(드라마PD)도 오래 못할 직업이라는 걸 알았다고나 할까” 3년간 방송 외도를 마친 박철수감독은 86년 영화 <에미>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그해 이 영화로 대종상 작품상을 받았으니 박감독이 불이익을 당한 건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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