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양도소득세, 시행하되 지금은 때가 아니다
미술품 양도소득세, 시행하되 지금은 때가 아니다
  • 정중헌
  • 승인 201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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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지원해 미술시장 파이 키운 후 과세해야 / 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미술품 양도소득세가 내년 1월부터 시행되면 미술시장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이 현실로 다가 오고 있다.

미술계가 한 가닥 기대를 걸었던 6년 유예 안이 지난 주 국회 조세(租稅) 소위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미술품 양도 차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이 법은 1990년 처음 입안된 이후 다섯 차레 유보를 거쳐 2003년 폐지됐다가 2008년 재도입되어 국회를 통과, 20011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골자는 작고(作故) 작가의 6000만원 이상 미술품을 거래할 때 양도 차액의 20%을 과세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기자 시절 우리 미술계 실정에서 양도세 부과는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을 여러 번 제기했다. 그때마다 왜 미술품만 예외냐는 조세형평원칙론에 부딪혔지만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불 보듯 했기 때문에 다섯 차례나 유보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술품 거래 차익에도 세금을 매겨야 한다. 다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우리 속담대로 세금을 거둘 수 있을 만큼 미술시장의 파이를 키워놓은 다음에 시행하자는 것이다. 미술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여건 상 지금은 소탐대실(小貪大失), 즉 실효성보다는 후유증이 크기 때문에 한 번 더 유예하되 그 기간은 국회에 맡기자는 제안이다.

왜 아직은 때가 아닌가. 그 답은 정부의 미술품 양도소득세 시행의 문제점을 수치와 정서 두 가지로 분석해 보면 납득할 수 있게 나온다.

먼저 수치로 따져 보자.

작고 작가의 6천만원 이상 작품 거래 시에 양도세를 부과하겠다는데 그 대상이 5천만 국민의 10만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 미술시장이 활성화된다면 몰라도 현재 과세 대상은 연 500건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다.

세수 총액도 30억원 정도라고 한다.

웬만한 규모의 뮤지컬은 제작예산이 100억원대를 넘어 200억원대로 가고 있고,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비도 100억원대를 뛰어 넘은지 오래다.

그런데 정부가 연간 30억원 정도를 걷어 들이려고 미술계를 비상사태로 몰아간다면 이는 미술품을 금은보화보다 더 사치품으로 보는 것 아니면, 땅이나 집 같은 부동산 개념으로 예술을 대하고 있다는 인식밖에 주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한국 미술시장의 외형은 지난해 미술품 경매 총액 702억원을 포함해 연간 3000억원 안팎이다. 한국 미술시장 규모는 일본, 중국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식탁에 오르는 두부 산업 연간 매출이 4000억원이고, 비타민제 드링크류 한 개 상표의 연간 판매액 3000억원과 비교해도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경매 총액 702억원은 중국의 부자 콜렉터 류이젠·왕웨이 부부가 경매에 투입한 10억 위안(약 1700억원)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런 영세한 규모의 시장에서 미술품 양도세를 시행하게 되면 당장 거래 물량이 줄어든다.

현재 한국미술협회에 적을 둔 미술인은 약 2만5000여명, 비공식 집계로 미술 관련 종사자는 10만명, 생계를 책임진 가족까지 합하면 3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 업계의 추산이다. 해마다 미술관련 학과 졸업생만 2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가장 딱한 쪽은 화가들이다. 화가는 많아도 작품 팔아 생활하는 화가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화랑이 세금 때문에 위축되면 화랑만 쳐다보던 화가들마저 창작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정서적 문제다.

이명박 정부는 문화예술 지원과 문화산업 육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서울 기무사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짓겠다고 예술인들에게 공표했다. 그런데 내막을 보면 예술에 대한 푸대접이 정도를 넘고 있다.

일례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해 미술품 구입 예산이 50억원도 못된다. 이는 피카소의 소품 한 점 값도 안 되는 액수다. 최근 G20 서울회의 성공 개최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고 자랑하는 정부가 미술품 양도세를 시행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경제 논리를 앞세워 문화는 뒷전으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은 해외로 유출될 국보급 문화재들을 수집해 지난 반세기 동안 자체적으로 연구 전시하여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는 대표적 미술관이다. 그러나 그 귀중한 미술품들을 수장 전시할 공간이 협소하여 상설 전시를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미술관을 지원해 문화재를 보존해야 할 정부가 조세형평론만 앞세워 미술시장을 흔드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홍콩 정부는 미술품 무세(無稅) 정책을 추진해 싱가포르에 있던 세계적인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 아시아 본부를 유치한 후 부수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일류 화상들이 홍콩으로 모여 들고, 중국 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지난해 경매 매출액이 런던을 누르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고 한다. 정책 하나가 세수 이상의 실리 뿐 아니라 국가 신용도 향상과 일자리 창출 등 부수 효과를 거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은 미술품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2007년처럼 미술시장이 호황으로 들썩이고 투기로 과열되고 있다면 당장 시행해도 부작용이 없겠지만, 최근 미술계에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양도세 까지 부과하면 미술계는 활력을 잃게 되고 가까스로 형성한 미술시장마저 붕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재정을 관장하는 정부 당국과 법률을 정하는 국회의원들이 이런 현실을 바로 읽으려 하지않고 경제 논리만을 앞세운 다면 미술품 세수 이상의 혼란과 부작용이 야기될 수도 있다. 관계자들이 이런 우려를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배출한 나라다. 올림픽과 월드컵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스포츠 강국이다.

이 같은 저력으로 미술장르를 범국가적으로 육성하면 우리도 아시아 미술시장 나아가 세계 미술시장의 허브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은 미술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선진국처럼 미술품 기증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예술 육성책이 필요할 때이지 양도세를 부과할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아무쪼록 국회 조세 소위 위원들이 문방위가 제출안 2017년 연기 법안을 다각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하여 세금으로 미술계를 위기에 빠트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당부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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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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