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마술가게] 언제나 문제는 높으신 분들이었지
[연극 마술가게] 언제나 문제는 높으신 분들이었지
  • 김우성
  • 승인 200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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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하드고어 풍자 활극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야심한 밤 불 꺼진 명품 옷가게에 중년의 바바리맨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중후한 인상의 이 남자는 피곤이 몰려오는지 소파에 앉더니 양주를 따라 마신다. 그런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려온다. 창문을 통해 누군가 침입했음을 직감한 중년남은 불을 끄고 얼른 몸을 숨긴다. 강도일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험 속에서도 이 중년남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 한다. 잠시 후 가게 안에 찢어질듯 한 비명이 울려 퍼지고 나면 스타킹으로 얼굴을 가린 젊은 좀도둑 한명이 중년남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있다. 녀석도 나름대로 큰맘 먹고 담을 넘었을 터이다. 하지만 멋 부린답시고 청바지를 갈기갈기 찢어내 속살이 과도하게 드러난 모습하며, 간드러지는 미성으로 무조건 살려달라고 애원해대는 행색이 어째 영 시원찮아 보인다. 간단히 제압에 성공한 중년남은 좀도둑의 얼굴을 감싸고 있던 스타킹을 힘껏 들었다 놓았다하는 여유를 보인다. 구겨져가는 좀도둑의 눈에 중년남은 한없이 커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도 역시 도둑이니까. 대도 말이다.


한바탕 소동으로 만난 두 사람 사이에 양주가 한두 잔씩 오가고 분위기는 조금씩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서로들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십년 만에 만난 고향친구 이상이다. 도둑이라도 둘 사이엔 엄연히 세대차이도 있다. 각각 ‘소매치기’와 ‘열쇠따기’라는 전공도 있다. 뿐만 아니다. 선악과를 몰래 훔쳐 먹은 아담이 최초의 도둑이 아니겠냐며 뼈대 있는 직업임을 자부하는 좀도둑에게 중년남은 도둑들 간에도 상도의라는 게 있고 공정거래법이 존재한다며 역설한다. 하지만 이들은 정작 도둑이 지켜야 할 최대 미덕(들키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은 잊은 듯하다. 중년남은 조수로 써달라는 좀도둑에게 애송이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끝도 없이 장황하게 노하우를 늘어놓는다. 듣고 있자니 산업스파이가 부럽지 않아 보인다. 크게 한탕해서 사람답게 살아보겠다는 좀도둑 입장에선 이보다 좋은 선생님이 어디 있으랴. 관객들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 사랑스러운 도둑들이 잡혀가는 걸 절대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극중 명품 옷가게라는 배경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효과적으로 발휘된다. 두 도둑은 이 세상에 ‘진짜도둑’들은 따로 있다고 주장한다. 돈의 위력을 잘 아는 그 ‘진짜도둑’들이 껍데기뿐인 ‘옷’을 빌미로 사기를 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단지 옷만 입어보겠다며 팬티바람으로 가게 안을 휘젓고 다닌다. [연극 마술가게]가 정치와 사회, 종교를 아우르는 유쾌한 농담을 담아내는 방식은 이렇듯 직설적이다. 객석을 수시로 들썩이는 장면장면의 반전 속에 흉내 내기 힘든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과장된 음향과 조명 등은 ‘이나중 탁구부’라는 만화책(B급 엽기 코드로 국내외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만화)을 떠올리게 한다. 냉소와 풍자로 점철하는 심오한 화법이 때로는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두 도둑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연극이 대학로의 행인들을 즉흥적으로 끌어들일 것처럼 가벼운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끝난 대선 이후의 세태를 꼬집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여낸 순발력에서 앞으로도 ‘진짜도둑’들은 최소한 이 가게 안에서 한번 씩은 놀림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극중 한밤중의 소란은 건물 경비원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마지막 장면을 위해 경비원이 가족과 통화하는 연기는 탁월했다. 5월 12일 까지. 대학로 두레홀 1관. 문의 (02)741.5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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