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상쾌!통쾌! 찰스 바클리
유쾌!상쾌!통쾌! 찰스 바클리
  • 박군
  • 승인 200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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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군의 배스킷볼 다이어리> 코트를 지배했던 무관의 제왕

찰스 바클리


리그 MVP에 선정되었던 93시즌, 올스타 경기가 시작되기 하루 전 공동 연습기간 중 바클리는 피닉스 시빅플라자에서 홀로 코트를 점령하고 있었다. 바클리는 기자들에게 둘러쌓여 그들의 질문공세에 답하고 있었다.


한 기자가 “ 당신을 따라다니는 극성팬과 그에 관련한 루머들이 많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라고 묻는 대답에 “그런 일에 왜 당신이 상관하지? 모든 기자놈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 대지만 어떤 사내든지 돈만 많다면 여자들은 그에게 빌붙으려 한다구. 내게 극성스러운 팬들의 문제는 염증일 뿐이야. 그리고 당신들은 자신의 일에나 신경쓰라고.”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클리는 기자들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쏘아붙였다. “이딴 역겨운 질문들이 내가 백인들을 싫어하는 이유다.”


찰스 바클리를 열열히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것은 자유지만 결코 그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클리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주목받고 솔직한 인물 중 한명일 뿐만 아니라 무례하고 노골적인 표현들과 독특한 재능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한 선수였다.


동시에 그는 92, 96년 올림픽 드림팀의 리딩 스코어러였으며 체격조건과 체력 그리고 정신력을 동시에 갖춘 걸출한 선수이기도 했다. 196cm 114kg의 단신이며 과체중 파워포워드이자 민첩성과 넓은 슈팅레인지를 기닌 스몰포워드이기도 했던 바클리는 고정된 포지션을 거부했다. 수비 리바운드를 잡은뒤 상대 코트로 맹렬하게 돌진하는 모습이 마치 기관차를 연상시켰던 그 자기보다 작은 선수들은 체격으로 압도했고, 큰 선수들은 한수 위의 스피드로 따돌렸다.


입담 만큼이나 파란만장했던 커리어


오번대학시절, 바클리는 ‘배불뚝이 리바운더’로 불렸으나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소니 스미스 감독을 비롯 자신의 과도한 체중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바클리는 몸무게를 줄이고 실력을 연마하며 NBA에서 가장 기복없고 높은 득점력을 기록하는 선수가 되어 그들의 판단이 틀렸음을 입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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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시절


1984년 드래프트에서 아킴 올라주원과 마이클조던에 이어 1라운드 5번으로 필라델피아에 지명된 후 첫 시즌부터 대부분의 경기를 주전으로서 출장, 앞으로의 장래성을 인정받았고, 이후 2년차부터는 단숨에 리그 최고의 파워포워드로서 성장하며 칼말론, 숀켐프등과 함께 라이벌관계를 형성해 90년대 NBA의 흥행에 크게 일조했다.

92/93시즌은 아마도 바클리의 선수생활 중 가장 빛나고도 안타까운 한해로 기억될 듯 싶다. 피닉스로의 이적 후 62승을 거두며 정규리그 최다승리를 기록했고, 1번시드로 올라온 플레이오프에서도 LA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새애틀등의 강팀을 차례로 물리치며 학수고대하던 파이널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 시리즈에서 바클리는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조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아쉽게 시카고에게 챔피언반지를 내주었다. 시리즈 내내 조던과 불꽃 튀는 득점경쟁을 벌이며 마지막까지 분전했지만 6차전에서 조던의 활약과 팩슨의 극적인 3점슛으로 인해 분루를 삼키며 다음시즌을 기약해야만 했다.


이후 3년을 피닉스의 리더로서 활약했지만 우승의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조던의 은퇴로 인해 그 어느때보다 우승가능성이 높았던 시즌들이었지만 과도한 체중에 따른 부상의 여파와 플레이오프에서 연일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쳐 보인 올라주원과 로빈슨 그리고 샤크의 활약에 밀려나며 우승의 꿈도 그만큼 아련해져 갔다.

96/97시즌, 바클리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되었다. 바로 올라주원과 드렉슬러가 속해있는 서부지구의 강호 휴스턴 로케츠로 이적하게 된 것이다. 차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될 이 세명의 스타플레이어들이 함께 뛴다는 사실만으로도 휴스턴 팬들뿐만 아니라 모든 농구팬들의 주목을 받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바클리 역시 시즌내내 순항하며 57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거의 손에 쥔 경기를 종료직전 스탁턴에게 통한의 3점슛을 허용하며 파이널진출에 탈락, 또다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후 불스에서 이적해온 스카티 피펜과의 불화와 올라주원의 부상으로 인해 중하위권 팀으로 전락한 휴스턴에서 바클리 역시 노쇠화로 인해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팀은 더 이상 우승권의 전력이 아니었고, 스티브 프랜시스라는 걸출한 신인과 함께 리빌딩을 계획하며 바클리의 존재도 서서히 시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99/00시즌이 진행중이던 12월 9일, 그는 친정팀인 필라델피아와의 원정경기에서 상대편선수와의 충돌로 무릎이 파열되며 시즌아웃을 결정하고 결국 2000년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농구인생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여느 수퍼스타들과 같은 화려한 은퇴식이나 행사는커녕, 그간 수고했다는 박수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안스러움만 남긴 너무도 쓸쓸한 은퇴였다.

한때 모두를 설레게 만든 매치업 - 바클리와 조던


무관의 제왕이지만 행복했다


92/93시즌 MVP, 87년부터 97년까지 11년연속 올스타멤버 선정, 올 NBA 퍼스트팀 5회 선정, 세컨드팀 5회 선정, 서드팀 1회선정, 91년 올스타게임 MVP,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15년간의 선수생활동안 바클리가 이룩한 업적들이다.


85/86시즌부터 95/96시즌까지 11시즌동안 연속으로 평균 20득점 1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한 바클리는 이 기간 동안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었고, 결코 논쟁이나 질문을 회피하는 법이 없었다. 마이클 조던은 “찰스경(sir.barkley)은 NBA에 새바람을 일으켰으며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아 어느 누구와도 의견을 주고받았지요. 찰스는 단 한순간도 입을 가만히 두지 않았어요. 그는 우리가 말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 하지 못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했죠” 라고 유쾌하게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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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되어버린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미국 원조 드림팀의 베스트5.

왼쪽 위로부터 찰스바클리(SF) 패트릭유잉(C) 칼말론(PF) 마이클조던 (SG) 매직존슨(PG)


지금은 그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과 말솜씨로 TNT의 농구해설자로서 역량을 뽐내고 있는 바클리. 비록 우승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선수생활의 마지막까지 불꽃같은 열정을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을 회상하면 지금의 거침없는 화법과 유머러스한 입담 만큼이나 기분좋은 미소가 머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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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을 쓴 박군은

이런 저런 삶의 핑계들 속에서도 쉼없이 NBA를 보고 기록하는 것을 즐기는 순수남이다. “꿈만 꾸지말라 끝없는 노력과 연습 없이는 그 어떤것도 이룰수 없다. 연습없이 신이 된 건 오직 하나님 뿐이다.”라는 좌우명으로 그는 오늘을 사는 그의 바스켓볼 다이어리엔 남과 다른 정보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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