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3천5백 마리 유기견의 엄마, 공경희 애린원 원장
버림받은 3천5백 마리 유기견의 엄마, 공경희 애린원 원장
  • 유성희
  • 승인 20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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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 마지막 인사 하던 ‘행운이’ 잊지 못해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경기도 포천군에 위치한 동물보호소 애린원의 공경희(67) 원장은 3천5백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모두 길을 잃거나 버려진 유기견들이다. 공 원장의 애린원은 여타 동물보호소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금전적 이득이 돌아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재산을 바치고 가족과도 떨어져 개인으로서 상상도 못할 선행사업을 이어가는 한 가지 이유라면, 불쌍한 유기견들이 안락사 당하지 않고 단지 제 명대로만 살게 하기 위해서란다.

공 원장과 유기견의 인연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도 공무원이던 남편을 열차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뒤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집 앞에 병든 말티즈 한 마리가 찾아와 자신의 주위를 서성였다고. 남편의 혼이 들어있다고 생각된 그녀는 집으로 데리고 와 기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아픈 개와 고양이들을 한 마리 두 마리 데려와 키운 것이 지금의 애린원을 이뤘다.


“슬픕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게 너무 부끄럽습니다”


애린원의 상황을 전해준 ‘생태보상회’ 배병호 대표의 한 마디가 취재의 발단이 됐다. 인터뷰를 위해 애린원에 들어서자 모든 개가 일제히 쉴새없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좀 더 안으로 가자 한 무리의 개들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뚝이는 치와와, 나이가 들었다고 버려진 코카스파니엘, 보신용으로 팔려갔던 시추까지 저마다 사연을 안고 있었다. 언덕 위로 올라가자 몸집이 작고 아픈 강아지들이 몇 개의 철조망으로 나뉘어져 보호받고 있었다. 그 옆에 세워진 작은 컨테이너가 공 원장의 보금자리였는데 이곳마저도 15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공 원장의 얼굴은 고생한 지난날의 흔적을 말해주듯 주름이 깊이 패여 있었다. 아픈 강아지들을 얘기할 때마다 주름진 얼굴 사이로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많은 강아지를 키울 생각을 하게 된 건가요.

남편이 지하철 공무원이었는데 26년 전 근무 중 열차사고로 순직했어요. 그때 제 나이가 마흔이었는데 아이들도 너무 어려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런데 남편이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집 앞에 말티즈 한 마리가 옆구리를 다친 채 쓰러져 있었어요. 순간 이 강아지가 남편의 혼이 아닌가 생각이 되더라고요. 지금의 이렇게 큰 굴레(애린원 운영)를 쓰려고 한 건 아니고 단지 말티즈 한 마리만 내 손으로 잘 키워보고자 했는데 이후로 어떻게 된 운명인지 제 눈에 눈 먼 고양이나 피부병 걸린 개처럼 아프고 버려진 ‘아가’들만 눈에 띄는 거예요. 내가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락사를 당하는 걸 알고 있기에 죽으라고 가만히 둘 수 없었어요. 어쩌겠어요. 제 운명이지요. 팔자예요. 운명이 아니면 이런 일을 할 수가 없겠죠.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수없이 굴레를 벗고 싶지만 이놈들의 눈을 보면 너무 가여워 떠날 수가 없어요.


정확히 몇 마리나 되죠?

고양이까지 합하면 3천5백 마리 정도입니다. 집고양이는 울타리에서 키우지만, 야생 고양이는 중성화 수술시켜서 전부 뒷산에 풀어놨어요.



혼자서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돌보시나요?

아침 6시에 일어나 강아지들 아침부터 챙겨줘요. 하루 세끼를 챙겨주는 것 외에 아픈 강아지들에게 주사를 놔주고, 암 걸린 강아지들은 북어국을 푹 끓여 먹이기도 하고 사골을 끓여 기력을 되찾을 수 있게 돌보기도 해요. 바닥에 지푸라기도 갈아주고 배설물도 치워야 하지요. 밤에는 강아지들끼리 자주 싸움을 일으키는데 말리지 않으면 서로 물어 죽이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요. 26년 동안 해 온 일인데 점점 심신이 지쳐가는 걸 느낍니다.


유기견들은 어떤 경로로 이곳에 올 수 있나요?

늙고 병들었다고 주인이 강아지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고, 유기견을 보았다고 신고가 들어오면 직접 데리러 가기도 해요. 또 동물구조단에 구조된 강아지들 중에 안락사 당할 위기에 처한 강아지들을 돈 주고서 데려오기도 하고요. 오늘도 3마리가 새로 왔어요.


지금도 이렇게 많은데 더 이상 수용이 힘든 것 아닌가요?

생명을 살려보자는 마음 안에서는 어떤 이익도 차별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갈수록 환경은 열악해지지만 저와 인연이 된 개들에게 싸구려 사료라도 배불리 먹이면서 죽음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어요.


새 주인에게 분양을 해도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면서요?

사람들로부터 한 번 상처받은 강아지들이라서 분양을 보내는 것에 대해 심사숙고해요. 좋은 사람에게 입양이 되어 사랑 받으며 지내는 강아지도 있지만 잘못해서 다시 버림받거나 잡아먹히는 상황이 발생해서 웬만해서는 입양을 보내지 않아요. 남의 생명을 죽여서 내 몸에 큰 보신이 될 수가 없는 건데... 그럴 때는 정말 사람들이 야속하고 밉게 느껴져요.


이곳 포천에는 언제부터 터를 잡게 되셨나요?

서울 주택에서 강아지들과 지내다보니 부득이하게 이사를 12번 정도 했어요.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당시 포천 군수님이 제가 좋은 일을 한다면서 터를 잡게 도와주셨지요. 여기로 올 때도 유기견보호장소가 이사 온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굉장히 말이 많았어요. 원래는 이곳이 재정경제원 소유 땅이었는데 ‘조상땅 찾아주기’를 통해 실제 땅주인이 나타나는 바람에 지난 12월까지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포천시청에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산 중턱에 위치한 부지를 사용하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곳에 울타리를 만들었더니 이번에는 무허가로 국유지를 점유했다며 산지관리법 위반으로 시청에서 고소를 당했어요.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5일, 벌금 1백 만원 판결이 나와 상고를 한 상태예요. (애린원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현재 ‘다음 아고라’ 청원방에는 9천여명이 애린원 폐쇄를 반대하는 서명을 하고 있다.)



사회봉사명령 처분이 있었다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사회봉사 아닌가요?

동물 말고 사람에게 봉사를 하라더군요. 여기를 비우고 갈수도 없는 처지이고, 사람을 들일 수 있는 상황도 못돼요. 저는 구속이 돼도 상관없지만 우리 강아지들 생명은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데 제가 힘이 없으니까요.


정부에서의 지원은 전혀 없나요?

사료비라도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는데 현재로선 그런 것도 없어요. 주말마다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고 각지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저는 돈이 필요 없으니까 강아지만이라도 살리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도 강아지들을 저한테 주지 않고, 오히려 개장수들에게 개를 줍니다. 한번은 개장수에게서 돈을 주고 강아지를 뺏어 온 적도 있어요.


하루에 어느 정도의 사료가 필요한가요?

50포대로 50만원 정도 들어요. 최근 두 달 분량의 사료를 후원받아서 잠깐 동안은 사료걱정을 안 해도 되는데 평소에는 매일같이 사료 걱정, 아픈 강아지들 걱정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요. 제 재산도 다 쓰고 빚이 생겼지만 강아지들 살리는데 쓴 돈이니 후회는 안 해요. 남편을 보내고 하도 많이 울어서 ‘이제는 눈물이 말랐겠구나’ 싶었는데 강아지들 때문에 참 많이 울었어요.


방 안에 같이 살고 있는 개들은 어떤 이유에서 함께 지내는 건가요?

몸이 약해 다른 개들과 함께 함께 있으면 물려 죽을 수 있는 개들이지요. 혀가 늘어진 퍼그 봤지요? 겁을 먹어서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진 자리를 좋아했는데 지금은 많이 활발해졌어요.


이러한 생활에 대해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아들만 둘 있는데 첫째는 쌍용자동차 과장으로, 둘째는 교보생명 대리로 재직중이에요. 그동안 강아지들 때문에 여기저기 이사 다니면서 애들하고도 다툼이 많았던 게 사실이에요. “엄마가 개한테 빠져서 왜 그렇게까지 고생을 하느냐”고 원망 섞인 소리를 많이 들었지요.그래도 둘 다 비뚤어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서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어요. 지금도 내가 엄마라고 아들들한테 십 원 하나 보태주는 게 없는데 그저 미안하고 고맙지요. 아들이 결혼한 지 8년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강아지 두고 어딜 비울수가 있어야지요. 보시다시피 애들이 이곳에 저를 만나러 와도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서 차 안에 있다가 가요.


강아지들만 없었다면 장성한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편히 노년을 보낼 수 있을 텐데요.

강아지들을 마음에서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자식보다 더 소중해서 버릴 수가 없어요. 자식들은 말을 하지만 강아지들은 말도 못하고 병든 지친 생명이잖아요. 남편이 오래 못살고 떠났기에 강아지들이 오래 살기를 기원하면서 한 생명 한 생명 살려가는 보람이 얼마나 큰 줄 아세요? 제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한 마리라도 더 살리겠다는 마음뿐입니다.(웃음)


어릴 적 집안에서 강아지들을 키우거나, 특별히 동물을 좋아하는 환경이었나요?

전혀요. 깔끔한 성격이라 오히려 강아지를 싫어했어요. 제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별 어려움 없이 살았는데 그때는 밥 굶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밥을 많이 해서 밥 굶는 사람들을 집에 데려와 밥을 먹이기는 했어요. 어릴 적 할아버지가 서당의 훈장님이셨고 아버지는 우체국장이셨어요. 공부는 많이 못했지만 두 어른들 덕분에 가정교육은 잘 받았지요. 아버지 생전의 말씀이 “자식 키우는 부모는 하수도를 파서 더러운 물을 먹을망정,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봐도 바로 쳐다볼 수 있는 정당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엄격하셨기에 지금의 시련도 잘 버텨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아프고 지친 생명들을 가까이 하셨기에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든 때는 언제인가요?

물론 강아지들을 살릴 수 있어 행복할 때도 있지만 26년 동안 너무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굴레를 벗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도와준다고 말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번복했던 사람들이나, 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것도 아닌데 사람봉사 하라던 판사도 야속합니다. 특히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모함이 제일 견디기 힘들어요. 개 팔아먹는다고 손가락질 하고 내가 싼 오줌을 개에게 먹인다는 둥.. 얼토당토 않은 말들을 들을 때는 당장 모든 걸 버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러면 이 강아지들은 다 죽게 될텐데 어쩌나 싶어 가슴이 미어져요. 또 어떤 사람들은 열악한 이곳의 사정을 보고 개들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안락사를 시키는 게 낫다고 하는데 안락사할 때 개들한테 물어보고 하는 건지 저는 묻고 싶어요. 안락사 하려고 사람들이 손을 내밀면 개들은 눈치 채고 사람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아요. 개들도 자기가 죽을 거란 걸 알고 두려움을 느끼는 거죠. 사람들은 자기 생명만 소중한 줄 아는데 생명은 하나지, 둘이 아니거든요. 하늘 아래 태어난 모든 생명은 다 같이 살 권리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늘과 땅 모두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머릿속에 평생 잊히지 않는 개가 있다면요?

‘행운이’라는 개가 있었는데, 지금 형편만 같았어도 병원을 데려가 살렸을 텐데...(갑자기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좋은 사료 한 번 못 먹이고, 간식 한 번 못 먹였어요. 4시간씩 주사 맞아가며 아파하다가 죽었는데 죽기 5분전에 저한테 오더니 꾸벅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러곤 저한테 머리를 기대고 죽더라고요. 이제는 예전보다 사료가 좋아졌으니까 혼이라도 있으면 좋은 사료 먹고 가라고 내가 속으로 그랬어요.


죽은 개는 어디에 묻습니까?

너무 많아서 다 묻을 수가 없어서 화장해요.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저렇게 많아도 생각 외로 많이 죽지는 않아요. 또 개들이 산으로 뛰어다녀서 다리 힘이 만만치 않다고 수의사들이 얘기하더라고요.


오랜 시간 수천 마리의 개들을 키우다보면 이제는 표정만 봐도 어떤지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어디가 아픈지 쉽게 알아차리지요. 짖는 소리만 듣고도 ‘얘들이 싸우고 있구나’ 싶어요. 제가 싸움을 말려야 떨어지지 자원봉사자들이 말리면 떨어지지도 않아요.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봉사자들을 얕보는 거 있죠. 강아지들이 이곳에서 자기의 처지가 어떻게 됐다는 걸 여우같이 알아요. ‘내가 여기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죠.


사람들에 의해 버려지고 병든 개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자식같이 길렀다던 개를 암에 걸렸다고 보내온 사람도 있고, 자기 강아지인데 길에서 주웠다고 거짓말하고 데려온 사람도 있어요. 물론 저한테 데려다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만 주인하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걸 억지로 놓고 가는 사람들보면 너무 야박하단 생각이 들어요. 한번은 눈이 빠진 채로 용달차에 실려 온 개가 있었어요. 밥을 얻어먹다가 큰 개에게 눈을 물려서 피투성이였는데 너무 끔찍하더라고요. 그래도 배가 고픈지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데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는 게 너무 힘이 드는 것 같아요.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요?

제가 죽기 전까지 많은 강아지들이 뛰어놀 수 있는 땅이 생기는 거예요. 버림받고 말 못하는 생명들을 정부에서도 소중히 다뤄졌으면 좋겠어요.(공 원장은 이미 서울대에 사후 시신 기증을 약속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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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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