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황혼에 찾아 온 파스텔톤 사랑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황혼에 찾아 온 파스텔톤 사랑
  • 김우성
  • 승인 200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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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랑해도 될까요?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오래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고 있는 '이점순' 할머니의 집에 어느 날 노신사 한명이 짐을 싸들고 불쑥 찾아온다. 할머니가 세를 놓기 무섭게 '박봉만'이라는 할아버지가 방을 얻겠다며 찾아온 것. 할아버지의 능글능글한 태도에 할머니는 30만원이던 월세를 금세 40만원으로 올린다. 하지만 50만원이라도 좋다는 할아버지의 배짱에 할머니는 못이기는 척 셋방을 내어준다. 평소 할머니를 흠모해왔던 할아버지로서는 이만해도 다행이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다짜고짜 할아버지의 종교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한다. 그러한 할머니의 모습은 이제 막 교제를 시작하는 연인들의 그것과 살며시 겹쳐진다. 결국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살게 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장작불 타듯 따닥따닥 거리며 서로의 마음속에 불을 지펴간다. 다 큰 자식들 보기 민망하다며 결혼을 주저하던 두사람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결국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날들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할머니의 지병이 점점 악화되어 간다.


‘황혼의 사랑’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소재가 아니다. 얼핏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발상을 토대로 한 [늙은 부부 이야기]는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드라마틱한 구성이나 반전 없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물 흐르듯 평탄하게 전개되어간다. 극의 중반 즈음부터는 다가올 결말을 굳이 감추지 않고 아예 드러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평범한 이야기를 보러 소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은 끊일 줄을 모른다. 지난 2003년 초연된 이래 매년 캐스팅을 바꿔가며 관객들을 만나 온 [늙은 부부 이야기]가 이토록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자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늙은 부부 이야기]의 무대는 단순히 공간을 채우기 위한 배경을 뛰어넘어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흡입한다. 늙은 부부의 이야기가 벌어지는 주된 공간은 할머니의 집 마루이다. 이들의 만남에서 사랑, 작별과 회상까지 모든 것이 마루에서 일어난다. 부부가 외출을 위해 마루를 비우기는 해도 무대의 공간 자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기에 관객들은 공간은 그대로 둔 채 바뀌어가는 시간과 감정의 변화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된다. 후에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혼자 남게 된 할아버지가 마루 위에서 팔을 괴고 누워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도 관객들은 할머니의 빈자리를 여실히 느끼며 눈에 잡힐 듯 생생했던 두 사람의 일상들을 추억해낸다. 그만큼 마루는 두 사람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또한 세월이 묻어나는 마당 담벼락만 보고서도 담장 밖 마을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기도 하는 등 무대 구석구석이 하나의 배역을 맡아 역할을 해내는 느낌이다.


이렇게 공을 들인 무대는 따스한 파스텔톤 빛을 만나 관객들과 소통을 한다. [늙은 부부 이야기]의 조명은 배우들의 동선이 닿지 않는 평상 밑이나 수납장 안쪽까지 스며들어 노부부가 사는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그 빛은 같은 '대낮'이라도 색감과 그림자의 길이를 달리하며 오전과 오후를 구분해내는 세밀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밤이 되면 마냥 어두워지는 것이 아니라 담장 밖이 어슴푸레하게 보이도록 어두운대로의 빛도 있다. 그렇게 관객들은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재현된 무대를 통해 극중 제시된 시간과 일상을 자연스럽게 수용해가며 스스로 늙은 부부 자신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에 배우들은 관객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마치 인식하지 못하는 양 진지한 열연으로 화답을 한다.


[늙은 부부 이야기]는 계절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따뜻한 봄날에 찾아왔던 사랑은 무더운 여름이 되어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되자 어느 틈엔가 서로 작별을 준비하는 시간이 온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막이 오르내리는 걸 목격한 관객들은 서서히 자연의 섭리를 예감하며 가슴이 저미어 온다. 어김없이 겨울이 오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할아버지 앞으로 어느 날 소포 상자가 배달된다. 상자 안에는 할머니가 뜨다가 만 스웨터가 들어있었다. 할아버지와의 결혼을 반대하던 할머니의 막내딸이 스웨터를 마저 완성하여 보내온 것이다. 대물림 되어진 사랑을 확인한 관객들은 다시 따뜻한 봄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계절이 바뀌어 가며 이 늙은 부부의 담백한 이야기는 언제까지고 계속 될 것이다. 우리 모두 그들처럼 사랑하고 늙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2월 10일까지. 소극장 축제. 문의 02.741.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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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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