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기사 조치훈과 롯데 신격호 회장의 아름다운 만남
프로기사 조치훈과 롯데 신격호 회장의 아름다운 만남
  • 김두호
  • 승인 200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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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기사를 평생 후원한 대재벌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지금 일본에서 이름이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인이라면 일본의 대재벌이 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런타자 이승엽, 욘사마로 통하는 탤런트 배용준 등의 인물을 꼽을 수 있다.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까지 20여년간 일본에서 가장 출세한 인물 세 사람을 꼽게 되면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과 롯데 오리온즈의 안타제조기 장훈 선수, 그리고 일본 기단을 평정한 천재기사 조치훈이었다.


최근 조치훈 9단이 일본 기단의 최고 타이틀인 기성(棋聖) 도전자 결정전서 현재 일본의 최강자인 장쉬(27) 9단을 4집반 차이로 제압해 화제에 올랐다. 이로써 조 9단은 현 타이틀 보유자인 야마시타(29) 9단과 2008년 1월 12일부터 최종 7번기를 갖게된다. 1국은 브라질서 개최된다. 과거 8차례 기성위에 올랐던 그에게 이번 도전은 8년만이다. 올해 51살인 조 9단은 지난 40여 년간 통산 71개의 각종 바둑대회 타이틀을 획득, 일본에서 최다 우승기록을 세우며 어린 기사들이 활개치는 바둑계에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잠시 옛날로 돌아가 보자. 조치훈이 6살 나이로 형 조상연의 손목에 이끌려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난 것이 1962년의 일이다. 그 무렵 20살인 조상연은 동생에 앞서 일본에 건너가 하숙생활을 하며 힘겹게 바둑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린 동생을 데려오기로 결심했을 때 먹고 자는 문제와 바둑 수업료가 고민거리였다. 모국은 모두가 가난하게 살던 시절이라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동생의 장래를 생각하며 대책도 없이 일을 저질렀다.

후견인을 만나지 못하면 동생의 일본 체류가 어렵다고 생각하며 실망에 잠겨 있을 때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일본에 사는 동포들의 친목 모임에서 잠깐 소개를 받은 신격호 회장이었다. 나중에 대재벌 회장이 되었지만 그때는 검을 만드는 조그마한 회사의 사장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가 알고 있는 주변 사람 중 가장 부자로 생각됐다.


조상연은 무턱대고 신회장을 찾아갔다.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으니 체면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조상연도 일본말을 제대로 못할 때였고 일본에서 성장한 신회장도 모국어가 서툴 때였지만 두 사람은 눈빛과 마음만으로 금방 통하는 게 있었다. 신회장은 단 한번 본 조상연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동생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조상연의 딱한 처지를 눈치 채고 즉시 지갑에서 1만 엔을 꺼내준 뒤 매월 비서실에서 1만 엔을 받아가도록 말했다. 당시 1만 엔은 한 달 하숙비의 큰 돈이었다.


평소 바둑을 좋아하는 신회장은 바둑 유학이 일본에서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특히 그 무렵은 일본의 프로바둑이 세계 최강의 전성기를 이어가던 시대였다.


신회장의 도움과 함께 두 형제가 한동안 살던 하숙집의 아베 다께라는 할머니의 따뜻한 배려도 조치훈의 유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부모를 떠나 고생하는 어린 유학생에게 하숙비를 받을 수 없다고 사양하고 냉장고를 뒤지며 개구쟁이 짓을 해도 모두 자식처럼 받아들이며 뒷바라지를 해준 덕분에 조치훈은 눈치 보지 않고 형을 따라 바둑공부를 다닐 수 있었다. 후견인이 된 신회장은 제과회사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기업을 키워나갔고 생활지원비도 매년 올려주었다.

이윽고 조치훈은 11살에 입단하고 1975년 프로10걸전에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1980년 일본의 최강자 오타케 히데오를 무릎 꿇게 하고 대망의 명인 위를 차지한다. 그 순간 조상연 치훈 형제와 신격호 회장 사이에 재미있는 풍경이 발생했다. 최종 대국이 끝나는 순간 그 승전보를 가장 먼저 신격호 회장에게 전화로 알린 조상연은 신회장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나, 다 봤어. 축하해. 하하하” 신회장은 TV 실황중계로 대국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


조치훈은 승승장구, 1987년에 이르러 공식 7대 타이틀을 제패해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일본 바둑계는 ‘일본 역사상 가장 강한 기사’라는 칭호를 그에게 얹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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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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