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오지마을에 나타난 하얀 옷의 산타들
필리핀 오지마을에 나타난 하얀 옷의 산타들
  • 김우성
  • 승인 200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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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낙후지역 찾은 한국 의료봉사단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한국에서 남쪽으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6시간 넘게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필리핀 최남단 '까가얀 데 오로'는 에머랄드빛 바다와 코코넛야자수가 절경인 해안도시다. 하지만 황금의 도시라는 별명과는 다르게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이곳은 환자가 발생해도 기본적인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산속 모슬렘 지역이나 군소 도서지역은 상황이 더욱 열악해, 환자나 보호자 모두 치료를 포기한 채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다. 필리핀의 병원비는 무료다. 문제는 약값과 치료를 위한 기구까지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모순된 구조에 있다. 심지어 차비가 없어 병원을 못가는 의료 혜택 무풍지대가 바로 까가얀 데 오로다.


화상으로 오그라든 손으로 겨우 자신의 이름을 힘겹게 써내려가는 아이 까를로는 정든 학교를 떠나야했다. 공을 제대로 움켜쥘 수 없는 양 손이 창피했고, 연필마저 제대로 가눌 수 없는 학교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까를로의 엄마와 아빠는 코코넛과 숯을 구워서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까를로는 그 불 주위에서 놀다가 화상을 입었고 제 때 치료를 하지 못해 손의 뼈와 살이 엉겨 붙어 형태를 완전히 잃었다. 한동안 까를로의 마음에는 덕지덕지 흉터가 나있었고, 자신을 부주의하게 내버려 둔 엄마가 원망스러웠던지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까를로는 얼마 전 처음으로 집이 있는 까미겐 섬에서 나왔다. 이국에서 온 진료팀을 만나기 위해 3시간 남짓 배를 타고 까가얀 데 오로로 향했다. 어린 소년에게 잃어버린 손을 되찾아주려는 백의의 산타클로스들은 한국의 의료봉사단이었다. 특성화된 화상센터로 명성이 높은 한강성심병원 소속 의료진은 오래 전부터 낙후지역 화상 환아들에 대한 무료진료 계획을 세웠고, 지난 11월 7일 필리핀으로 첫 의료봉사를 떠났다.

봉사단이 현지에서 만난 환자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교통사고로 온 몸에 화상 및 찰과상을 입은 어느 청년은 몸 구석구석 피부가 이미 없어진 전신화상 3도 수준으로, 그대로 둘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봉사단은 급히 피부 이식수술을 하려 했지만, 수술을 진행할 메스는 물론이고 치료기구 일체를 약국으로 뛰어다니며 준비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식수술이 진행됐고, 수술 다음 날 얼굴색이 달라진 청년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아픔 없는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봉사단은 현지에서 만난 환자들 중 수술치료가 필요한 13살 까를로와 14살 로나를 한국으로 초청했다. 까를로에게는 손을 펴고 화상 흉터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열 손가락 전부를 펴주는 수술이라, 피부 이식뿐 아니라 뼈의 형태를 잡아주는 수술까지 함께 진행됐다. 본인의 굳은 의지와 의료진의 정성이 합해져 까를로는 현재 굉장히 회복이 빠른 상태다. 정상적인 손의 기능을 되찾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제 까를로의 마음속에 원망은 간데없고 목회자가 되겠다는 꿈이 자라고 있다.

갓 돌이 지났을 무렵 끓인 왁스물에 얼굴과 목 배 부분 화상을 입은 로나는 13년이 넘도록 치료를 받지 못했다. 로나는 목과 배 부분으로 나누어 수술을 받았다. 여자 아이였기에 훗날 임신할 것을 대비해 피부 성장과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수술이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수 년 뒤에는 상처가 완전히 회복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섬마을 간호사인 로나의 엄마는 한국에 대한 감사인사와 함께 '한국에서 화상치료 기술을 배워가서 현지인들의 화상치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희망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의료봉사의 책임자였던 한강성심병원 화상성형센터 장영철 교수는 "다른 병도 마찬가지겠지만 현지 병원이나 환자들이 화상에 대해 너무 무감각했다"라며 "까를로만 하더라도 12년 동안 어떻게 아무런 치료도 받을 생각을 못했는지 의아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까를로와 로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구경했다. 수술을 마치고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 소년 소녀의 이야기는 25일(금)과 1월 1일(금) 밤 9시 50분에 EBS <명의> 신년특집 '필리핀 의료 봉사' 편을 통해 소개된다.



김우성 기자 ddoring2@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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