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단 하나, 아르떼 어린이 예술창작학교 3개월의 기록
세상 단 하나, 아르떼 어린이 예술창작학교 3개월의 기록
  • 김우성
  • 승인 200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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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외지역 아이들 일류작가 데뷔하다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아에이오우'와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로 잘 알려진 가수 예민은 한동안 본업이던 가수활동을 뒤로 한 채 전국 구석구석의 분교를 찾아다녔다. 아무런 조건이나 목적 없이 그저 동심과 어우러져 노래하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교음악회 횟수가 점점 쌓여가고, 아이들과의 음악적 교감에서 예상치 못했던 성과를 얻어갈수록 그의 고민은 깊어갔다. 주입식 교육의 틀 안에 갇혀있을 대부분의 아이들에 대한 염려였다.


예민의 직함은 이제 '뮤뮤스쿨(Museum & Music School)' 예술총감독이다. 분교음악회의 경험이 적용된 뮤뮤스쿨은 음악을 통한 인류학, 고고학, 교육학 등에 근간을 둔 대안적 문화교육 프로그램이다. 이곳에 참여한 아이들은 가장 먼저 전 세계의 진귀한 민속 악기를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소리를 낸다. 음악 역시 공부라고 여겼던 아이들은 그렇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뮤뮤스쿨은 전국의 박물관을 다니며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고려인 아이들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에도 두 차례 다녀왔다. 그리고 1년여 전, 훗날 교육방향에 큰 전환점이 된 시도를 감행한다. 강원도 정선의 산골 아이들로 하여금 창작악기를 직접 만들어보게 했던 것이다. 기껏 종이 쪼가리나 수수깡 따위로 조잡하게 만들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보기에도 듣기에도 아름다운 신기한 악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악기들이었다.


1년 전의 성공적 경험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예민 감독은 20여명의 아이들과 경기도 양평의 산 속에 있었다. 이 날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지원하고 뮤뮤스쿨이 주관한 <아르떼 어린이 예술창작학교> 작품발표 캠프의 마지막 날이었다. 3개월 간 동고동락한 지도교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어린이작가들이 한 명씩 각자 정성들여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창작 악기를 소개했다.



"이 악기의 이름은 룸바라빠이고 소통하려는 대상은 땅입니다. 콘크리트 밑에서 숨이 막혔을 땅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한 아이가 자기 몸집만한 악기를 움직이자 속에서 작은 조약돌과 흙이 부대끼며 소리를 냈다. 이윽고 아이는 악기에 연결된 굵은 빨대를 입에 물었다. 힘껏 불자 제법 큰 물방울 소리가 보글보글하며 발표회장을 가득 채웠다. 관람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세상과 단절되었던 흙에 다시 자연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순간이었다.

타조가죽, 거북이 등껍질, 새의 깃털 등 아이들이 상상했던 모든 재료가 악기로 완성되어 있었다. 새피리(새소리를 흉내내는 악기)의 유리관 안에 물을 넣으면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해서 만들었다는 워터플룻은 친구들과의 대화를 위한 목소리였다. 음악의 본질을 도외시해온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기발하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문화소외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아르떼 어린이 예술창작학교>는 지난 9월 15일부터 거주지 주변 초등학교 및 사회복지단체의 추천을 받아 40여명의 예비 작가를 선발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학교와 학원만 오가던 아이들은 그때부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저녁 늦게까지 예민 감독을 비롯한 멘토 교사들과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우선 세계 악기부터 체험했다. 각종 동물의 뿔과 가죽, 심지어 사람의 뼈로 만든 악기를 접한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로 다음에는 현직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바이올린, 기타, 장구, 오카리나 등 악기를 해체했다. 악기에 대해 갖고 있던 막연한 거리감과 두려움도 서서히 해체되어갔다. 또 다음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청진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무와 땅, 의자, 건물 등 청진기를 대어가며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세상의 소리를 접했다. 모든 체험들이 활발한 토론을 통해 곱씹어졌다.

그러는 사이 창작악기 제작안이 마련되고 있었다. 아쉽게도 40여명의 아이들이 모두 끝까지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각자 소통하고 싶은 대상과 목적, 악기의 종류와 형태, 재료 등을 꼼꼼히 작성해 창작악기 제작안을 제출해야 했고, 몇 차례의 수정과 면담을 통해 최종 25명의 아이들이 선발됐다.



기자는 본격적인 악기 만들기가 시작된 10월 중순부터 예술창작학교에 참여해 제작발표 캠프까지 함께했다. 처음 작업장에 도착했을 때는 온통 톱밥가루가 자욱한 가운데 아이들 눈만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어른들이나 쓸 법한 전문 공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했다. 조그만 악기를 만들더라도 강도 높은 노동이 필요하다는 걸 그제야 처음 알았다. 만만치 않은 일이라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자신이 설계한 악기그림 아래에서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노동이 곧 놀이였고, 그 놀이는 곧 교육으로 연결되었다.

아이들은 누구의 힘도 빌리려하지 않았다. 구해올 수 없는 재료가 있다든지 부득이하게 실수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해결하려 했다. 이렇게 무언가를 혼자 구상하고 계획해서 만들어갔을 때에 느낄 성취감은 아이들이 컸을 때 값진 보석과도 같은 에너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 주에 접어들어 악기의 틀이 만들어지고 채색, 조율 등의 마무리작업이 이루어진 끝에 스물다섯 개의 작품이 탄생했다.


오랫동안 공들여 완성한 악기를 들고 아이들은 여행을 떠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예술중학교 입학을 포기한 6학년 예화도,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를 앓고 있던 5학년 성욱이도 거기에 있었다. 아이들은 달라져 있었다. 2박3일 내내 스스로 마늘과 양파를 까고, 빵을 굽고, 설거지를 했다. 춥다고 하는 친구가 있으면 자신의 이불을 내어줬고, 내 악기보다 다른 친구의 악기를 더 소중하게 다뤘다.


캠프 마지막 날 아침, 모두들 한가롭게 쉬며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예민 감독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창밖으로 부슬비가 뿌옇게 나리는 가운데 그의 1집 수록곡 <서울역>이 울려 퍼지자 아이들이 하나둘 피아노 앞으로 모여들었다. 예민 감독이 즉석에서 석별을 아쉬워하는 노래를 만들었고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최종 발표회 때 이 노래를 함께 선보였고 모든 선생님들이 눈물을 쏟으며 <아르떼 어린이 예술창작학교>의 여정은 끝났다.




▶ 예민 감독 짤막 인터뷰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고 평가하나.

섣불리 얘기할 수 없다. 이번에 참여한 대부분의 스텝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나 방법을 잘 모르고 시작했다. 강사들 중에 창작악기를 만들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최고의 예술교육을 받은 사람들조차 개념파악이 안 될 만큼 낯선 프로젝트였다.


아이들의 변화는 예사롭지 않은데...

그것도 이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한 거다. 프로젝트가 끝났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또 친구들을 만나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변화'를 경험했었다는 자체만으로 만족한다. 결국 학교 지역사회 종교 가정 모든 곳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과정을 지켜보면서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말이 떠오르더라.

창조적인 경험을 선물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만약 아이들에게 3개월간 피아노를 가르쳤으면 어땠을까. 노래를 가르쳤다면... 주변에 5~6년 피아노 치고 노래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오히려 패배감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의 손재주, 자기 생각의 가치와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창작, 창조밖에 없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아이들에게 상당한 공을 들이던데.

어떤 만남이든지 아이들에게는 항상 최고의 대접을 해주고 싶다. '무엇이 이루어졌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정성'은 필요조건이자 가장 기본조건일 뿐이다.



가수활동을 중단하면서까지 뮤뮤스쿨에 전념하는 이유가 뭔가.

지금 우리는 과거의 음악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와 있는가. 어떠한 이권도 없었을 음악과 인간의 가장 소박한 만남을 잊은 채 서양음악의 틀 안에서 맴돌고 있다. 과거의 음악이 듣기만 하는 음악이었나? 아니다. 할머니가 농사지으며 흥얼거리는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운 음악인가. 듣기만 하는 음악의 최대수혜자는 음악가라는 말이 있다.


뮤뮤스쿨의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나.

그간의 경험들을 사례집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어디 가서 뭘 더 하기보다는, 사례가 생기고 공유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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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성 기자 ddoring2@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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