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에서 메이드인차이나까지
루이비통에서 메이드인차이나까지
  • 김경자
  • 승인 200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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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상품 국적을 문제삼는 것은 무의미 / 김경자



[인터뷰365 김경자] 지금 당장 주변을 둘러보라.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의 모든 가구와 장식품, 가전제품, 운동도구, 심지어 약품에 이르기까지 ‘Made in China’표시를 피해가기 힘든 시대다. 중국제의 범람은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오죽하면 미국에 사는 프리랜서 기자 Bongiorni가 2005년에 1년간 중국제 없이 버티기라는 실험을 하면서 겪는 난관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기까지 했을까? Bongiorni는 중국에서 원료를 수입했거나 중국에서 만들어졌거나 중국 브랜드를 달고 팔리는 상품이 아닌 것을 찾기 위해 남보다 서너 배 더 많이 돌아다니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인터넷을 뒤졌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1년이 지난 후 실험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중국제를 끊고 살기 위해서는 시간과 돈의 낭비가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시장에서 ‘중국산’이라는 표시가 곧 ‘낮은 품질’을 연상시킴에도 불구하고 중국제가 세계적으로 이처럼 보편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값싼 인건비를 기반으로 한 제품의 ‘낮은 가격’ 때문이다. 가격은 소득과 더불어 소비자의 선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날의 소비자는 값싼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찾는데 선수다. WTO와 FTA 등 다자간 자유무역거래를 촉진하기 위한 무역협정으로 각국의 시장이 개방되어 생산과 소비과정이 공개되고 시장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시장 경쟁 심화는 가격경쟁을 유도하고 이는 제품가격 하락을 가져온다. 인터넷에서는 소비자의 쇼핑을 도와주는 쇼핑 에이전트들이 상품가격과 품질에 대한 평가를 제공하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소비자를 24시간 내내 무료로 돕고 있다.
이 합리적인 소비자들이 때로는 아주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한다. 한달치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을 실생활에 별 필요도 없어 보이는 물건을 사는 데 펑펑 써버린다. 오늘날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70% 가량은 사람들이 실생활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임의소비재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학생들은 책값을 아껴 루이비통 지갑을 사고 주부들은 반찬값 몇 천 원을 아껴 샤넬화장품을 산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진정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가능한 한 최고의 상품을 소유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이런 trading up현상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나름대로 공통적으로 발생한다. 부자가 집을 꾸밀 이탈리안 대리석이나 최고급 벤츠를 산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대로 수준에 맞추어 고급 초콜릿이나 와인 한 병을 산다.



한미 FTA에 이어 일본, 중국, 그리고 유럽과의 무역협정까지 체결되고 무역거래가 활성화되어 소비세계에 국경이 없어지면 소비자들의 선택행동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루이비통을 선택하거나 메이드 인 차이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품의 국적을 문제삼거나 절약의 미덕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소비자트렌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사이다. 중국산 비단을 이탈리아에서 재단해서 프랑스에서 염색하고 미얀마에서 바느질하여 미국 브랜드로 옷을 파는 시대에 애국심에 대한 호소만으로 무언가를 지킬 수 있을까? 물자절약의 기치로 그것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 큰 오산이다. 자본주의의 네 바퀴 중 세 바퀴가 임의소비재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 이 시대에 물자절약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는 우려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사실상 ‘무언가를 반드시 사수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와 ‘꼭 지켜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돕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이 자신과 사회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것을 반영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추구하고 선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도처에서 수많은 루이비통과 메이드 인 차이나를 보게 될 것이다. 특히 FTA의 진전에 따라 눈에 보이는 유형의 상품보다 서비스 산업이 경제를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우리나라에서도 서비스 부분에서 수많은 루이비통과 메이드인 차이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서비스는 그 특성상 상품의 혜택이 훨씬 주관적이고 개별적이어서 소비자 혜택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루이비통급(級) 서비스와 메이드인 차이나급 서비스 사이에서 지금보다 훨씬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왕’이라지 않은가! 소비자는 금전투표(dollar vote)를 통해 시장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종류와 양, 그리고 생산방식을 결정할 권한을 지닌, 시장의 왕이다.
단, 왕이 되기 위해 시장은 경쟁적이어야 하고 소비자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완전한 정보와 충분한 구매력, 그리고 정보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판단력을 가져야 한다. FTA로 인한 세계적인 시장개방추세와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의 접근성 향상이 소비자의 권력연임을 지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지막 판단력은 온전히 소비자의 몫이다. 자신의 삶의 질과 사회의 성장에 기여할 올바른 제품을 골라낼 수 있는 혜안을 가지지 못한다면 소비하는 인간, ‘Homo-Consumens’는 어느 날 갑자기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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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자

소비자경제 전문가, 서울대 소비자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소비자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현 카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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