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 하이페츠의 연주와 음반들
야사 하이페츠의 연주와 음반들
  • 소혁조
  • 승인 200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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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질투하는 바이올리니스트 / 소혁조


[인터뷰365 소혁조] 앞서 언급한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비탈리의 샤콘느’라는 문구를 다시 살펴본다.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고 별 관심도 없는 이들까지도 혹하게 하고 하이페츠라는 인물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그 짧은 구절. 하이페츠가 연주하는 비탈리의 샤콘느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이 선정적인 문구를 보았을 때 정작 하이페츠의 연주를 아는 사람들 입장에선 쉽게 수긍하기 힘든 면이 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인 기교와 숨 넘어가는 스피드로 모든 이를 경악하게 하는 기교의 대명사이긴 했어도 그가 연주하는 그 어떤 곡에서 여유, 슬픔, 잔잔함과도 같은 네거티브한 감정을 느끼기엔 적합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연주는 대단히 빡빡하게 들리기도 했고 지나치게 빨랐다. 혹자는 그의 연주를 두고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치밀하고 빡빡한 연주’라고 표현했는데 제대로 적절한 표현이다.


이런 말도 있다.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약 1.5배 빠르기로 재생하면 하이페츠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이페츠의 생체시계는 다른 사람보다 1.5배는 빠르게 움직인다. 하이페츠의 연주를 접해보지 못했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의 연주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숨이 넘어가도록 완벽한지 실감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실제 그의 연주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느껴보고 싶다면 이번 기회에 한 번쯤 접해보시길 바란다. 모노 레코딩으로 매우 조악한 음질의 음반이라도 듣는 내내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페츠는 너무도 완벽한 기교를 갖춘 연주자였다. 이런 완벽함을 갖춘 그가 모든 이에게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연주를 했느냐에 대해선 항상 의견이 엇갈리는데 그의 연주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과연 하이페츠에게 흠잡을 곳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땐 선뜻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의 유일한 흠이라면 그저 너무 완벽하다는 것뿐이다. 완벽함만이 흠이 될 수 있는 사람. 그가 바로 하이페츠인 것이다.

하지만 다른 악기도 아닌 바이올린이란 악기의 특성상 너무 빠르고 빡빡한 연주는 감성을 느끼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내 개인적으로 다른 장르의 음악에선 느린 음악보다는 빠르고 직선적인 해석의 음반들을 즐겨 듣는 편인데 바이올린에선 예외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무엇보다 흐느끼는 맛을 느끼게 해주면서 인간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데 하이페츠의 연주에선 그런 흐느낌의 감성이 부족하다. 즉, 감탄은 할 수 있지만 감동을 하기엔 약간 부족한 연주.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에 하얗게 다린 빳빳한 와이셔츠, 목까지 꽉 채운 단추에 넥타이를 맨 신사의 모습. 말 한 마디도 항상 반듯하고 절도 있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공적으로 신뢰하고 좋아할지 몰라도 사적으로는 정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사적인 자리에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혀가 꼬인 소리로 농담도 하고 잘 웃을 줄도 알고 눈물도 흘릴 줄 아는 사람에게 인간적인 교감을 느끼며 더욱 좋아하게 된다. 하이페츠의 연주를 비유하자면 그에겐 빳빳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맨 신사의 모습은 있을지언정 사석에서의 나사가 반쯤 풀린 모습은 없었다.


하이페츠는 동시대를 살았던 연주자 중 가장 레퍼토리가 다양했다. 헨델, 바흐, 모차르트부터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를 넘어 20세기의 현대작곡가들까지 모두 연주하는 괴력을 선보였다. 특이할 점은 현대작곡가들의 곡을 아주 많이 다루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20세기 바이올린의 상징인 하이페츠가 곡을 연주했다는 것이야말로 그 곡의 예술성을 불어 넣은 것이며 그가 연주를 하였기에 바이올린을 위한 음악의 레퍼토리가 좀 더 다양해졌다는 면에서 그의 업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하이페츠의 명반

86년간 살면서 83년간 바이올린을 들고 있었고 60년 이상의 길고 긴 시간 동안 200마일이 넘는 장거리를 돌아다니며 연주를 했던 하이페츠. 그가 남긴 주옥 같은 명반들을 살펴본다. 사실 그가 남긴 음반들은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버릴 것이 역사적인 명반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 그가 남긴 명반들 중 협주곡부터 살펴본다. 그는 이른바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불리는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모두 너무도 완벽하게 연주했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가장 유명한 음반이 샤를르 뮌쉬와 함께 한 1955년 음반이 있다. 이 음반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추천 1순위라고 할 수 있는데 하이페츠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마저도 그의 완벽한, 숨이 막힐듯한 기교에 감탄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연 중의 명연이다. 이 곡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강한 기상, 패기를 하이페츠의 숨막히는 연주가 너무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와 더불어 1940년에 토스카니니와 함께 녹음한 음반도 초절정의 테크닉이 그대로 살아있다. 음질은 무척 좋지 않지만 어느 부분 하나 매끄럽지 않은 곳이 없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절정 고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 곡은 바이올린 협주곡 중 어렵기로 유명한 곡이고 1악장의 경우는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약 25분을 상회하는 연주시간을 갖는데 반해 하이페츠는 그 어렵다는 곡도 단 20분 남짓한 시간에 끝내버린다. 그저, 그저 감탄과 감탄을 거듭하며 듣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박수를 치게 된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또한 압권이다. 앞서 언급한 샤를르 뮌쉬의 음반과 함께 수록되어있는데 압권, 압도적이란 표현을 쓰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지만 너무 빠른 연주가 이 곡의 특성상 보편적인 공감을 형성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다른 어떤 연주자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협주곡이라면 시벨리우스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수많은 바이올린 협주곡 중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난곡 중의 난곡인데 하이페츠의 빛나는 테크닉은 여기에서도 전혀 빛을 잃지 않고 있다. 특히 이 곡의 특성상 북구 핀란드의 풍광이 느껴지는 차갑고 투명한 연주가 필수적인데 하이페츠는 마치 이 곡을 연주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곡의 매력을 너무도 잘 살리고 있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하이페츠 이상의 연주는 없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가 12살의 나이에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던 프리츠 크라이슬러를 경악, 한탄토록 한 곡이 바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이토록 완벽함 외엔 흠잡을 데가 없는 하이페츠의 여러 음반 중 미흡한 부분을 굳이 찾아낸다면 실내악 쪽이 아닐까 생각한다.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첼리스트 엠마누엘 포이어만(포이어만 사후엔 그레고르 피아티그로스키를 영입하였다)와 함께 조직한 백만 불 트리오라 불리는 실내악단이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는데 멤버 개개인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연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기엔 하이페츠의 지나치게 강하게 튀는 바이올린 소리가 한 몫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차가운 열정. 이는 모순된 표현이다. 차갑다는 말과 열정이라는 말은 도저히 병치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페츠의 바이올리니즘은 이 모순된 말을 모순되지 않게 한다. 대단히 차가운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열정의 핵이 있다. 그 뜨거운 열정을 바탕으로 완벽한 기교를 선보이며 전 세계 바이올린을 지배했던 대가 중의 대가.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에겐 넘을 수 없는 강박관념으로 군림했던 그 이름. 야사 하이페츠. 그가 태어난지 100년이 훨씬 넘은 이 시점에서도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기억한다. 그리고 다시 100년이 지난 후에도 그는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로 계속 기억될 것이다.


하이페츠가 나타나기 전까진 그 누구도 단독으로 넘버원이라 할 수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없었다. 기교적인 면에서도 어마어마한 양의 레코딩의 방대함과 수많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한 레퍼토리의 다양성에 있어서도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랄지 아르투르 그뤼미오, 나단 밀스타인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비교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기교적인 면에서 완벽함 그 자체라는 극찬을 받진 못했다.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었던 완벽함으로 20세기 전체를 지배한 바이올리니스트. 신이 질투할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경고 아닌 경고까지 받아야 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아마 몇 십 년, 혹은 몇 백 년 후에 하이페츠와 같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다시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나오게 된다면 그에겐 ‘하이페츠의 부활, 하이페츠의 재래(再來)라는 영광스러운 표현을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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