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최초의 거물 신상옥③ > 영화하나 마음대로 못 만드는 이것도 나라냐?
<한국영화 최초의 거물 신상옥③ > 영화하나 마음대로 못 만드는 이것도 나라냐?
  • 황기성
  • 승인 200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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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은 가장 우뚝한 감독이고, 제작자였다. / 황기성

[인터뷰365 황기성] 내가 신상옥 감독 수하에서 떨어져 나온 지도 여러 해가 되었지만, 충무로 사람들은 여전히 나에 대해 ‘황아무개는 신상옥 부하(?)’ 라고 말했고, 나 역시 그들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70년대 후반, 활기 있고 젊은 T영화사에서 기획 전무로 일하고 있을 때다. 어느 날 오후 3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나 신감독인데, 세운상가 2 층, 00다방에 있으니 나오라”


나는 얼른 일어섰다. 얼마 전, 신필름 에 닥친 불행한 사건 때문에 나는 몹시 속이 상해 있던 터였다. 서울 스카라 극장에서 돌아가고 있는 신상옥 감독의 새 영화 <장미와 들개> 예고편이 검열에서 삭제된 ‘키스 씬 부분’을 일부 붙여서 상영했다는 이유로 정부가 <신필름>의 영화사 허가를 하루아침에 취소 해 버린 사건이 있었다.


당시의 유신영화법은, 영화를 제작 하거나 수입하는 일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업자만 할 수 있도록 엄격히 통제를 하던 때였고 이 잔인한 ‘신필름 허가취소’ 사건은 영화계는 물론 나라 안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영화계를 말할 때 ‘신필름’과 ‘충무로’로 구분할 만큼 ‘신필름’은 일찌감치 단순한 제작사 수준을 뛰어넘은 영화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예고편이란 것이, 2분 전후의 길이이고 그 중 고작 2~3초의 필름이 행정 지시를 어겼다 하더라도 그 죄가 국내 굴지의 영화사를 목자를 만큼의 큰 죄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는, 심한 검열 시대를 사는 생존 방법의 하나로 ‘짤린 필름’을 몰래 붙여 관객을 하나라도 끌어 들이려는 몸부림이 영화계에 예사로 있었다.)


개새끼들. 영화를 빼고는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신상옥인걸 다 알면서... 회사를 빼앗는 것은 신상옥의 목을 자른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러나 서슬이 퍼렇던 그 시대에 아무도 정부의 처사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나 단체가 있을 리 없었고, 신감독이 정권자의 눈에 거슬려 괘심 죄를 받았다는 풍문만 뒤로 돌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둠 컴컴하고 추라한 상가의 다방 저 쪽 구석에서 신감독이 웃으며 손을 흔든다. 테이블 위에선 벌써 8각형의 ‘조일성냥’ 한통이 다 목 잘려 나가 있었다. 신감독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유쾌하고 명랑했다. 그 간에 있었던 회사의 사건이나 신상의 문제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처럼, 나에게 한국 영화계 전반의 이런저런 얘기만 잡담처럼 늘어놓는다. 나는 이날따라 왕초의 이런 대범함이 밉다.


“무슨 일이 또 생겼습니까?” 껄껄껄 웃는 왕초에게 정색을 하며 물었다.

“급히 만들어야하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는데, 너의 회사에서 제작신고 좀 해 줄래?”

“제가 있는 T사의 이름을 빌려 ‘대명제작’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네가 있으니 - 계절에 못 찍고 지나면 올해도 넘어가고”

“감독님,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왕초를 앞에 두고 나는 푸념처럼 수많은 말들을 혼자서 쏟아냈다. 제자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 나는 죽으면 죽었지 그 일을 할 수 없다.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내 사장과 그런 상의를 하느냐?

당장 내일 아침에라도 K장관(공보부 장관)집에 가서 ‘고개 한번 숙이면’ 풀어질 문제인데, 감독님 자존심은 중요하고 나는 똥개가 되도 괜찮으냐? 울그락 불그락 하며 한참을 해댔다 싶었는데, 그런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신감독은 말한다.


“야. 그 작품 스토리가 이런 이야기인데 좀 들어 볼래?”

“지금 작품이 문제 입니까?”

“하.하.하. 개새끼.”


감독은 웃어대며 일어섰다. 벌서 세운상가 아랫길은 어둑어둑 해 있었다. 길은 비가 지나갔나 질척질척하다.


“야. 내 차타고 중간지점까지 가라!”

“운전은 언제 배우셨나요 ?”

”하,하,하,”


평생 처음으로 왕초는 내 팔짱을 정겹게 끼고 골목 저쪽에 세워진 낡은 지프차로 향했다. 생짜 초보 운전사인 왕초의 옆 자리 앉는다. 왕초는 연상 무슨 말을 하며 웃어대고 있지만, 나는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예술가가 숨 쉴 틈이 없고, 만들고 싶은 영화 하나 마음대로 만들 수 없는... 이것도 나라냐?


“감독님, 조심하세요.”

“오케이, 하, 하, 하”


그러고 2주 후, 신문과 방송은 <신상옥. 홍콩에서 평양으로 납치!!> 라고, 미친 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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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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