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20)
추억의 영상소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20)
  • 임정진
  • 승인 200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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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 감독 이미연 주연의 80년대 히트작 / 임정진 작

이 영상소설은 1989년 개봉한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를 소설화한 것이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입시 현실에 찌들어 꿈을 잃어가는 80년대 십대들의 모습을 ‘자살’이라는 무거운 모티브로 극화해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황기성사단 제작, 김성홍 각본, 강우석 감독의 이 영화는 배우 이미연 김보성의 데뷔작이며 이덕화 최수지 등이 공연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이어 출판된 영상소설은 수십만 부가 팔려 역시 화제를 모았다.

본지에서는 80년대 대형 히트작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를 영화 스틸과 함께 격일 연재한다.-편집자


출연

이미연-이은주, 김보성(당시 이름 허석)-김봉구, 최수훈-안천재, 이덕화-박길호, 최수지-강선생, 전운-교장, 최주봉-담임, 정혜선-은주어머니, 이해룡-은주아버지


수상

제26회 백상예술대상(1990) 남녀 신인연기상(김보성, 이미연), 시나리오상(김성홍)



20. 커피병에 담긴 봉구의 일편단심


은주는 일요일인데도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일요일에는 어머니가 외출도 안하고 전화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었다. 자정이 넘어 새벽 1시가 넘자 은주는 몹시 피곤했다. 1시 반이 되자 너무 피곤하고 지겨워 책을 편 채 그 위에 그냥 엎드렸다. 소연이가 너무 앉아있어 엉덩이가 커질 거라고 한 얘기를 떠올리며 은주는 눈을 감았다.

은주 어머니는 두 시가 되자 달이던 한약을 짜서 그릇에 담았다. 은주의 방문이 열려 있어 어머니는 노크를 안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은주가 책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보자 언짢은 생각에 책상 가에 약 쟁반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런데도 은주는 깨지 않았다.

(아니, 이 시간에 약 달여 주는 엄마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분수가 있지.)

은주 어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야멸차게 은주의 어깨를 흔들었다. 은주는 깜짝 놀라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어머니가 손으로 약을 가리키자 은주는 미안한 표정으로 약을 마셨다. 약을 다 마시자 어머니는 약 사발 옆에 둔 젤리 과자 포장을 벗겨 은주에게 내밀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젤리를 받아 입 속에 넣었다. 젤리 맛이 어떤지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머니는 쟁반을 들고 나가면서 방문을 닫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일찍 봉구는, 도시락을 싸는 어머니 곁에서 보온병을 꺼내며 수선을 피웠다.

「얘, 겨울도 아닌데 웬 보온병이냐?」

「커피 좀 타가려구요.」

「그냥 자동 판매기에서 사 마셔. 가지고 다니다 괜히 까먹지 말고.」

「아냐, 엄마. 자동 판매기 커피는 비위생적이래. 프림에 막 곰팡이 피고 그 기계 안에서 바퀴벌레가 막 돌아다니구.」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위생을 따졌어? 속옷이나 제때 갈아입어」

어머니는 네 개의 도시락을 싸느라 바쁜데 봉구가 좁은 부엌에서 설치자 얼른 나가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봉구는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찾고 프림을 찾는다고 싱크대를 뒤졌다.

「알았어. 내가 타줄게. 가서 밥이나 먹어.」

「엄마, 맛있게 타야 해. 공부하다 졸리면 커피 마시고 공부할 거니까. 맛 없으면 잠이 오더라.」


누가 볼세라 보온병이 깨질세라, 봉구는 보온병을 가방 안에 집어넣고는 가방을 껴안고 학교로 왔다. 이제나저제나 은주에게 커피 줄 기회를 노리는데 마침 은주가 점심시간이 되자 도서관으로 가는 것이었다. 봉구는 얼른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내서 줄레줄레 은주 뒤를 따라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관 안은 언제나 이상한 열기와 차가운 공기가 혼합되어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 별로 와본 적이 없는 봉구는 자리마다 책이 놓여져 있는 걸 보고 가슴이 뜨끔했다,

(앗, 은주는 새벽에 일찍 와서 자릴 잡아 놓은 모양인데 난 자리가 없잖아.)

다행히도 점심 먹으로 나간 아이들이 있어 책만 있고 사람은 없는 자리에 엉거주춤 앉을 수가 있었다. 도서관까지 쫓아오긴 했지만 다가서려니 또 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봉구가 우물쭈물하며 몰래 은주의 눈치를 보는 동안 은주는 책을 좀 보더니 엎드려 자기 시작했다.

(어, 은주도 잘 때가 다 있네. 공부 잘하는 애도 자긴 자는구나. 근데 왜 시험을 보면 그렇게 하늘과 땅 차이지?)

봉구는 은주의 자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좀더 가까운 자리로 옮겨 앉았다. 은주의 얼굴은 평화로웠으나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10분밖에 남지 않자 봉구는 더 이상 망설일 수가 없었다. 은주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어깨를 두들겼다. 은주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은주가 그렇게까지 놀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봉수는 은주보다 더 당황했다.

「저... 이, 이건...」

봉구는 허둥대며 보온병을 내밀었다. 은주는 겁에 질린 표정에서 화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아무 말도 없이 책을 챙겨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운동장으로 나온 은주는 나무 옆에서 군것질을 하며 잡담을 하는 광경을 쳐다보았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려면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질러 금을 그려야 하는 좁은 운동장은 공을 차는 아이들 때문에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신나 보였다.

봉구는 은주 위에 와 섰다. 또 놀랄까 봐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미안해. 놀라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정말이야, 은주야.」

은주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봉구는 입이 바짝 말라 말이 잘 나오지 않으려 하는 자신이 너무나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 가길래 깨우려고 한 것뿐이야. 너 피곤해 보이더라. 그리고...」

봉구는 보온병의 뚜껑을 열었다.

「은주 네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 같길래 너 줄려고 집에서 준비해 온 거야. 나도 자동 판매기커피는 싫어해. 그건 비위생적이고 맛도 없고 그치?」

봉구는 커피를 뚜껑에 따랐다. 그러나 은주는 쳐다보지도 않고 매몰차게 말했다.

「고맙지만, 난 커피 같은 거 안 먹어. 위장에 나쁘니까.」

「그, 그럼 매일 마시는 건 뭐야? 코코아?」

「커피가 아니라 한약이야.」

봉구의 낭패스런 표정은 아랑곳없이 은주는 더욱 차갑게 말했다.

「그리도 너 제발 나 따라다니지 마. 우리 교회에 오지도 말구. 너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공부가 잘 안돼.」

말을 마친 은주는 또박또박 걸어서 현관으로 들어가 버렸다. 멍하니 섰던 봉구는 무너지듯 벤치에 앉았다. 보온병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땅에다 커피를 죄다 쏟아 버렸다.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도대체 여자들은 알 수가 없어, 어저께 교회에서 날 보고 웃었잖아. 근데 왜 하룻밤 새 맘이 변한 거야? 밤새 안녕이라더니 내 꼴을 두고 하는 말이었어. 젠장, 누가 공부하지 말래? 그냥 내가 타다 준 커피 마시고 공부하면 되잖아. 왜 이렇게 내 진심을 몰라 주냐? 으이, 죽어 버릴까부다. 그러면 은주는 날 위해 울어 줄까? 으이그. 살맛 안 나. 살맛 안 나.)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봉구는 별수 없이 터덜터덜 교실로 갔다. <미친 우먼> 시간이라 늦게 들어가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조마조마한 영어 시간이 끝나고는 신나는 체육 시간이었다. 박 선생은 커다란 카세트 라디오를 들고 나왔다. 아이들은 무슨 음악이 나올까 궁금하여 카세트 라디오를 둥글게 둘러쌌다.

「이렇게 붙어 있지들 말고, 좀 떨어져 서. 준비 운동을 해야지.」

카세트를 틀자 아이들은 모두 함성을 질렀다.

「우와! 조지 마이클이다.」

박 선생은 싱글싱글 웃으며 아이들이 신나게 몸을 흔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온갖 폼의 춤이 다 선보였다. 달중은 촉새와 리듬에 상관없이 지루박을 추느라 신이 나 있었다.

「앗싸 앗싸」

박 선생이 흥을 돋워 주자 둘은 더욱 신이 나 춤을 추었다. 팝송이 끝나자 다음번엔 사물놀이 음악이 나왔다. 아이들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곧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얼씨구-」

10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봉구네 반 아이들은 영어 시간의 긴장을 모두 잊고 즐거운 기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체력장 연습이 시작되었다. 십 여 명씩 조를 짜서 여기저기 흩어져서 매달리기, 100미터 달리기, 넓이뛰기, 공 던지기 등을 연습했다. 창수는 점심도 먹지 못한데다 새벽에 힘든 일을 했기 때문에 졸립고 기운도 없고 배도 고팠다. 운동장 구석에 앉아 멀거니 아이들이 운동하는 것을 구경했다. 창수는 잠시 구경하다 어지러워져서 어디 가서 눈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창수는 슬그머니 일어나 건물 뒤쪽의 수돗가로 갔다. 공 던지기를 하던 문도는 우연히 창수가 건물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새끼, 칠뜨기가 예뻐한다더니... 땡땡이치네, 겁도 없이)

창수는 문도가 자기를 본 줄도 모르고 수돗가로 가 물을 마셨다. 물을 꽤 많이 마셨는데도 배는 여전히 고팠다. 물로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뒤 창수는 동산으로 가 벤치에 누웠다. 햇살이 따가웠지만 피곤에 지친 창수는 곧 잠이 들어 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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