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불성 망년회는 일본문화다.
인사불성 망년회는 일본문화다.
  • 김세원
  • 승인 200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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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권주절이 아닌, 한 해를 돌아보는 성찰절로 바뀌길 / 김세원


[인터뷰365 김세원] 우리의 세시풍속은 입춘으로 시작해 대한으로 끝나는 24절기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바쁜 현대를 살아가기에는 24절기로는 모자랐던지 어느 사이엔가 연말에 명절 하나가 추가됐다. 양력으로 12월 22일 무렵에 드는 동지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쇠는 ‘권주절(勸酒節)’이 바로 새로 생겨난 절기다.


12월의 권주절


각종 동창회, 직장 망년회, 친지 모임, 향우회, 군대 동기회, 재수생 동기회 등 직장인들의 12월 탁상일기는 줄줄이 이어지는 모임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12월 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망년회 덕분에 매일 저녁 수많은 직장인들이 좋든 싫든 식당과 술집에서 주님(酒님)을 영접한다. 일년 술 소비량의 반 이상이 연말에 집중돼 있다는 통계에, 어느 주부는 계속되는 남편의 폭음과 밤늦은 귀가에 참다못해 남편회사의 웹사이트에 회식자리에서 폭탄주를 더 이상 권하지 말아달라는 글까지 올리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 수입한 망년회


‘그놈의 정 때문에’ 우리네 회식은 절대 1차로 끝나는 법이 없다. ‘딱 한 잔만 더 한다’는 2차가 3차 노래방, 4차 포장마차로 이어지기에 회식이 있는 날이면 미리부터 약이나 우유까지 먹어가며 만반의 대비를 한다. ‘빈 라덴’ ‘도미노’ ‘레인보우’ ‘금테주’'쌍끌이' ‘회오리’ 등 세월과 함께 발전한 폭탄주의 숱한 변종들이 일단 돌기 시작하면 그 대열에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술이 안 받는다거나 감기에 걸렸다며 열외를 주장하다간 그길로 눈총받는 낙오자가 되고 만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술잔을 받아 마시고, 나만 혼자 억울하게 취할 수 없어 다시 술잔을 상대에게 건네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할 말은 많은데 서로들 뻔히 아는 처지에 말을 꺼내기가 겸연쩍고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선지, 아니면 토론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선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다 같이 술을 들이키고는 필름이 끊기듯 산적한 문젯거리를 그저 잊는 것으로 한 해를 마감한다.


망년회는 사실 오랜 일본의 풍습이다. ‘망년’(忘年) 이라 하여 섣달 그믐께 친지들끼리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며 한 해의 어렵고 힘들었던 것을 모두 털거나 잊어버리는 세시 풍속이 일제강점기 때 한국으로 건너와 어느새 우리 풍속인양 뿌리내렸다.


권주절에서 성찰절로


원래 우리나라에는 수세(守歲)라 하여 섣달 그믐날이면 방 마루 부엌 마구간 측간까지 온 집안에 불을 켜놓고 조왕신의 하강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는 연말 풍습이 있었다. 부엌신인 조왕신은 1년 내내 그 집안사람들의 선악을 낱낱이 지켜보았다가 섣달 스무 나흘 날 승천하여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이날 밤에 하강한다고 한다. 따라서 연말 1주일은 일년동안 자신의 처신에 대한 하늘의 심판을 기다리는 시기였던 만큼 경건하게 보내야 했다.


어쩌다가 우리가 고유의 전통을 잊어버리고 지금은 본토에서도 사라져가는 일본의 구습을 가져다가 기리게 됐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전 국민이 일이 벌어지면 흥분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깡그리 잊고 마는 고질적인 건망증에 시달리고 있는 판에 망년회랍시고 서로들 술을 권하고 한 해를 잊기로 작심한다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한 해 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혹시 다른 사람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절(省察節)’이 한해를 마감하는 절기가 됐으면 좋겠다


기사 뒷 이야기와 제보 - 인터뷰365 편집실 (http://blog.naver.com/interview365)

김세원

동아일보 기사, 파리특파원, 고려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초빙교수 역임, 현 카톡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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